사회를 바꾸는 소통과 교감의 예술 - 공공미술
미술이 삶 속으로 스며드는 세상, 그 세상이 결코 예술가 혼자만이 누리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대중이 참여하고 그들과 소통하며 궁극적으로는 삶과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세상이다.
‘미술’이란 말은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지만, 그리 가깝게 느껴지는 단어는 아니다. 미술 분야 종사자나 그림 애호가들은 미술을 그들 나름대로 해석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미술관의 문턱을 쉽게 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미술작품을 소유하거나 정기적으로 미술관을 방문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내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아직도 멀게만 느껴지는 화랑과 미술관의 제한된 공간성과 한정된 관객이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가 공공미술이다. 일상과 유리되어 있던 미술이라는 개념을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바로 공공미술인 것이다.
공공미술은‘ 공공성’에‘ 예술’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므로 다른 예술에 비해 계층·학력·나이·성별· 인종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또한 실험적이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젊은 작가들에겐 창작의욕을 북돋우고‘, 미술을 위한 미술’ 또는‘ 작가를 위한 미술’로 인식된 현대미술의 저변확대뿐 아니라 전업작가들에 대한 재정적 지원도 공공미술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여러 진화단계를 거친 오늘날의 공공미술은 삭막했던 도시공간을 재탄생시켜 이웃 간에 소통의 장을 열어주기도 하고, 일반 대중들에게는 미술을 더욱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다. 나아가, 소외지역의 환경개선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과를 보고 있다.
흥국금융그룹 앞 <해머링맨> 청계천 상징조형물 <스프링> 신세계백화점 본관 <세이크리드 하트>
랜드마크가 된 미술품
오늘날 굳이 화랑이나 미술관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쇼핑을 하다가 미술시장의 스타작가인 제프 쿤스(Jeff Koons)의 작품을 감상하고, 우연히 들어간 건물 로비에서 백남준의 작품을 보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특히 각종 문화시설이 밀집돼 있는 광화문 인근은 도시의‘ 랜드마크’라고 부를 수 있는 미술작품들이 넘쳐나‘ 생활 속 미술’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우선 세종문화회관 뒤뜰과 그 주변으로는 익살스러운 조각품들이 자리 잡고 있어 공연을 관람하러 온 관람객과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을 지나 새문안로에 이르면 흥국금융그룹 사옥이 있다. 그곳에서는 대중에게도 친숙한 22미터 높이에 무게 50톤이 넘는 거대 조각인 조나단 브로프스키(Jonathan Borofsky)의‘ 망치질하는 남자(Hammering Man)'를 볼 수 있다. 이 거대한 남자의 오른팔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한 번 왕복에 약 77초의 시간이 소요되며, 하루에 약 500번의 망치질을 하고 있다. 그의 망치질은 노동의 성실함과 신성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는 도시인의 고독함과 피곤함을 담고 있다.
이‘ 거대 남자’와 멀지 않은 곳에는 세계적인 팝아트 작가, 클래스 올덴버그(Claes Thure Oldenburg)의 작품‘ 스프링(Spring)'이 서있다. 일명 ’청계천 소라‘로 불리는 이 작품은 설치 당시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이었으나 지금은 지역의 랜드마크가 됐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서울시립미술관을 지나 경향신문사 앞 정동길은 그야말로 공공미술의 보고다. 담장에 그려진 벽화, LED 조명으로 꾸며진 거리와 예술 벤치들, 그리고 곳곳에 설치된 조각품들까지…. 공공장소에 예술이라는 새 옷을 입혀놓았다.
그러나 공공미술작품이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가 그러하듯, 관객의 주관적인 가치 판단을 어떻게 보편화할 것인가는 미술관을 박차고 나온 미술품이 지니는 숙명과도 같은 문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좋은 공공미술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 노력의 첫걸음은 건축주·자치단체·예술가 등 이해당사자들보다는 대중과의 소통과 공동체에 대한 이해가 우선시돼야 한다.
부산 감천동 문화마을
하늘공간 미술관 경산 하늘공간 미술관 경산
‘마을’과‘ 미술’의 만남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200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마을미술 프로젝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공미술 진흥사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을 공공미술로 가꾸는 사업이자, 낙후된 동네의 활성화, 지역주민의 공동체 참여문화 유도 및 자긍심 고취, 그리고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창작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마을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창조된 문화예술 공간은 매우 다양하다. 전북 완주의 폐교인 삼기초등학교는 미술 놀이터로, 제주 봉개동 농촌마을의 오래된 창고는 마을 갤러리로 변했다. 그리고 경북 경산시 서상동의 낙후된 시장골목은‘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변모되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또한 충북 보은의 갈목리 프로젝트는 보은군이 매년 개최하는 도깨비 페스티벌과 연계해 한국 도깨비의 원형을 유지한 조형물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사업 이후 마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범지역이 명소로 바뀌었으며, 피하고 싶도록 지저분하던 공간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니 누구보다 주민이 좋아했다. 이렇게 지역주민과의 소통과 교감을 근간으로 공공미술이 실현된 가장 대표적인 성공사례로는 부산의 감천동과 경산시 서상동 시장의 돼지골목을 꼽을 수 있다.
부산 사하구 감천 2동은 한국전쟁 당시 팔도에서 모여든 피난민들의 힘겨운 터전으로 민족의 근현대사적 기록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자 부산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한 곳이다. 2009년 사업공모에 당선된 이 지역은 ‘부산의 마추픽추’를 꿈꾸며 산복도로 일원에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했다. 또한 2010년도에는 빈집과 골목길에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하고 아카이브가 있는 전망대와 문화마당 광장을 만들어 주민들의 체력단련과 휴식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그 결과 2010년 부산 사하구에서 실시한 행복지수 설문조사에서 감천동이 1등을 하여 공공미술이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삶을 꿈꾸게 하였음을 보여주었다. 현재 감천동은 부산에서 가 볼만한 문화관광지가 되어 방문객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으며,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문화수업에 참여해 창작의 주체가 되고 있다. 또한 마을에서는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민과의 소통뿐 아니라 이곳을 찾는 이들과도 교감을 시도하고 있다.
2010년도 마을미술 프로젝트에 선정된 경산시 서상동 시장‘ 돼지골목’ 일대는 과거 가축도살장과 돼지국밥으로 유명했던 골목이었으며, 일명‘ 텍사스 골목’으로도 불리던 집창촌 지역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돼지 비린내와 빨간 조명으로 기억되던 그 공간이‘ 하늘공간, 미술관 경산’을 주제로 한 공공미술 거리로 대변신을 이루었다. 이 골목은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인근에 관공서들이 있어 경산에서 혼잡한 중심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들 관공서가 이전하고 시장도 옮겨가면서 급격히 쇠퇴해 청소년이 몰려와 나쁜 짓을 일삼는 우범지역이 됐다. 그러나 공공사업 이후에는 불량 청소년들이 사라지고, 담배꽁초와 오물로 가득 찼던 골목길은 예술가들의 벽화와 작품으로 채운 미술관으로 환골탈태했다. 골목 입구 양쪽에는 구름·비행기·별·꽃 등으로 하늘 공간을 연출했고, 벽의 위쪽 부분은 별자리를 부착해 각 집의 벽면을 미술작품으로 만들었다. 아울러 청소년 유해업소 건물은 달맞이꽃을 주제로 한 화사한 타일벽화로 꾸몄으며, 점집의 담벼락은 사다리를 놓고 별을 따러 올라가는 화목한 가족을 주제로 한 부조 입체벽화로 채웠다.
사업 초기, 마을에 들어온 예술가들을 뜨악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주민들이 지금은 밝아진 마을 골목에 행복해하며 마을 청소도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예전에는 낮에도 사람들이 오기 꺼리던 골목길이 이제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고 사진촬영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 주민들과 방문객간에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 이렇듯‘ 마을’과‘ 미술’이 만나 주민들에게는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작가들에게는 새로운 창작활동의 기회와 장소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공공프로젝트가 성공적인 가장 큰 이유는 주민과 작가의 교감으로 마을이 아름답게 변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공공미술 사례들은 그것이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하고 호흡하며, 주민과 관객에게 희망과 가능성의 메시지를 어떤 방법으로 전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본보기라 할 만하다. 미술이 삶 속으로 스며드는 세상, 그 세상이 결코 예술가 혼자만이 누리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대중이 참여하고 그들과 소통하며 궁극적으로는 삶과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세상, 그 세상으로 나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술이 먼저 대중에게 다가가 그들의 소리를 듣고 그들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 것이다.
이지성
gaminejs@naver.com
프랑스 IESA 학교에서 현대미술시장을 전공했다. 파리에서 큐레이터로 활동. 현재는 서울여대 강사와 아트디렉터로 활동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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