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2 : 상상력 발전소 - 0`→`1, `1`→`10, `10`→`100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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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력 발전소 
0`→`1, `1`→`10, `10`→`100

“개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나를 먹여 줘. 그러니까 그는 나의 신이야.’ 고양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나를먹여 줘. 그러니까 나는
그의 신이야.’”

창의성 혹은 상상력을 무엇이라고 개념화하거나 정의 내리려고 하지 말자. 그 대신 창의성이나 상상력을 요긴하게 바라는 나의 상황이 무엇인지를 먼저 식별하는 것이 좋겠다. 개념은 아무리 잘 빠져도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개념과 정의는 당장은 텅 빈 상자라도 이름을 달아서 여타의 것과 그 상자를 다르게 부를 수 있게 하려는 구실이다. 하여 창의성이다 혹은 상상력이다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부르게 되는 상황을 ‘아는 것’이 먼저다. 상황을 파악해두면 내가 취할 태도나 방법은 알아서 취할 수 있다.


파괴-실패의 도전 즐기기-자존심 버리기
대략 3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겠다. 하나는 0에서 1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제까지 보지 못하던 무언가를 발견하고 새로운 것을 개발하며 서로 상관없던 이것과 저것을 연결해서 전혀 다른 것을 창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때 필요한 창의성과 상상력은 ‘파괴’하는 용기와 압력에 비례한다. 기존의 성공적인 공식, 이미 익숙해진 문화, 모두가 따르는 습관, 가장 안정적인 관계 등을 파괴함으로써 공백이나 진공 상태를 만들어야 주변을 꽉 채우고 있는 자극들이 물밀듯이 들어올 수 있다. 

0→1의 창의성과 상상력 발동은 나를 쥐어짜거나 고요한 명상에서 솟아오르는 신비한 생산과정이 아니다. 나의 내부를 꽉 채우고 있던, 경험적으로 합리화되고 구조화되어있던, 나의 경계와 형태 그리고 내용물을 허물고 청소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그동안 옳다고, 유익하다고, 손해를 안 본다고, 안정적이라고 믿었던 기준을 스스로 비워내기가 쉽지 않다. 해서 의식적으로 파괴해야 한다. 일단 파괴하면 주변의 수많은 자극들이 무섭게 빈틈을 채운다. 요체는, 새로운 자극제를 찾지 못해서가 아니다. 내가 먼저 나의 내부를 파괴하지 않기 때문에 0→1의 창의성과 상상력이 발휘되지 않는 것이다.

다음은 1에서 10까지 만들어가는 상황이다. 1이라고 하는 원석을 더욱 쓸모 있게 만들고 아름답게 만들어 매력을 듬뿍 창출하는 상황이다. 원석을 보석으로 가공하는 과정이다. 이때 필요한 창의성과 상상력의 재료가 있다면, 그것은 여러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고 발상을 바꿔가며 계속 시도해보는 ‘도전정신’이다. 도전정신이라는 말도 때론 너무 진지하거나 위대하게 다가오기에 쉽게 할 수 없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1→10의 창의성과 상상력이 발휘되게 하는 도전정신은 그렇지 않다.
도전이란 쉬운 것이다. 도전은 실패할 수 있는 데도 하는 담대함이나,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는 불굴의 의지나, 될 때까지 계속 반복하는 인내력 같은 말과 동의어가 아니다. 도전하면 무조건 실패한다. 요체는, 빨리 실패하고 빨리 회복하는 과정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과정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다. 마음먹기와 체력 기르기로 버티는 것이 도전이 아니고 놀이처럼 재미있어야 하는 것이 도전이다. 하여 1→10의 창의성과 상상력은 높은 보상이나 뛰어난 기술이 주동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기 때문에 거듭되는 실패에도 계속 도전하는 몰입의 분위기 연출에 달려있다. 

끝으로 10→100까지 도달하는 상황이다. 쓸모 있고 아름다우며 매력 덩어리가 된 10을 보다 많은 이들이 여러 욕구에 의해 보다 자발적으로 사용하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만약 0→1은 개발이고 1→10은 생산이며 10→100은 마케팅과 영업이라고 비유한다면, 10→100에서 발휘할 창의성과 상상력은 소비자 관점에 의해서 가치를 다시 바라보고 사용자의 시선으로 미학을 새로 찾아내 자신을 빠르게 교정하고 맞추어나가는 속도전에 의해 좌우된다. 첫 책을 내고서 독자들의 반응을 빨리 파악해 개정판을 얼마나 빠르게 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10→100의 창의성과 상상력 발휘에 내적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은 자존심과 자만심이다. 자만심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자존심까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좀 억울해질 수 있겠다. 그러나 자존심을 버려야 속이 편해지고 귀가 넓어져서 주변의 많은 이들로부터의 충고를 잘 경청해 보다 나은 상태로 만들 수 있다. 10→100의 상황에서 속도전이 관건이라 했는데 이 속도는 늘 자존심과 반비례한다.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10→100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어정쩡한 지점에서 머뭇거리다가 창의성과 상상력은 실종된다.


에너지원은 자유-즐거움-속도전의 쾌감

이러한 과정을 굳이 유형화하면 파괴로부터 나오는 ‘창의성/상상력(0→1), 실패로부터 나오는 창의성/상상력(1→10), 자존심을 버림으로써 나오는 창의성/상상력(10→100)’정도로 불러도 좋겠다. 각각에 필요한 에너지원은 자유(0→1), 즐거움(1→10), 속도전의 쾌감(10→100)이라 봐도 좋겠고. 그나저나 창의성 혹은 상상력 그건 대체 뭔데? 하고 끝까지 묻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다. 나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심심해졌을 때나 너무 절실해졌을 때 그때 요긴하게 필요한 그 무엇에 우리가 임시로 붙여놓은 딱지가 창의성 또는 상상력이라고 해두자. 해서 구태여 3가지 상황론(유형론)을 떠올려본 것이다. 



김종휘
문화평론가 |  whee212@theseeds.asia

(사)seed:s 청년네트워크사업단 단장 및 사회적 기업 노리단 단장으로 활동하며 문화평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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