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2 : The Difference - 문화적 원형과 '차이'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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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fference
문화적 원형과 ‘차이’ 

개성적인 것, 과거와 차이가 나는 새로운 표현이나 제품이라고 하는 것들은 바로 남들이 미처 포착하지 못한 특정 제품과 관련된 문화적 코드 혹은 원형을 구현해낸 것이다.



고등학교 때 은사님 한 분은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세상에 인종이 많다 보니” 하며 혀를 끌끌 차시곤 했다.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다는 뜻인데, 맞는 말씀이다. TV 토론 프로그램을 보거나 인터넷 댓글들만 봐도 참으로 다양한 생각과 성격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욕구나 성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어서 ‘다른 것 같아도 사람 다 똑 같아’ 하는 말도 종종 듣는다. 다 다른 것 같아도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끼는 원리는 모두 동일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떤 말이 옳은 것일까? 아마 두 말 다 부분적으로 옳을 것이다.


체질별 특징(사상체질)


사람 본질은 동질, 표피적으론 차이
얼마 전 한의사 한 분과 만난 적이 있다. 평소 궁금해 하던 사상체질에 관해 질문을 했다. 필자의 체질을 자가진단해보면 소양의 체질로 보이기는 하지만, 어찌 보면 태양처럼 보이기도 하고 태음처럼 보이기도 해 헷갈렸기 때문이다. 한의사 왈. 네 개의 체질은 서로 다른 네 종류의 체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태양·태음·소양·소음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다. 그 가운데 어느 특징을 상대적으로 더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체질이 결정되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니 누구나 자신의 두드러진 체질 이외의 다른 체질의 특징도 어느 정도 갖고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체질이 이것 갖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한 것은 이 때문이다.
매우 다른 것 같아도 ‘사람 다 똑같다’고 하는 말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될 것 같다. 네 개의 기본 체질처럼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사고방식·인식방법 등은 너나 할 것 없이 동일하다. 그러나 각자가 주로 의지하는 사고방식이나 인식방법, 결핍을 느끼는 욕구는 조금씩 차이가 난다. 그리고 이런 차이가 살아가며 경험하는 것과 연계 작용 함으로써 성인이 되면 상당히 달라 보이는 각자의 신념·가치·태도를 만들어 내는 것일 게다.
이 말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인간의 본질적인 조건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사람 사이의 동질성은 커지며, 표피적이고 현상적인 특징으로 갈수록 차이점은 커진다고 할 수 있다.
말이 좀 어려워졌는데, ‘문화적 원형’이라는 것을 예로 들어 다시 생각해 보자. 융은 ‘문화적 원형’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문화적 원형이란 모든 세계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심상(Image)을 말하는 것이다. 오랜 인류 공통의 경험을 통해 마음속에 각인된 이 심상들은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공명을 마음속에 만들어 낸다. 대표적인 문화적 원형으로 융이 꼽는 것들은 원(圓)·영웅· 태모(太母)·늙은 현자· 아나미(여성성)·아니무스(남성성)·그림자 등이다. 이런 원형들은 각 민족의 신화 등에 동일한 구조와 성격으로 묘사되어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원형들에서 강한 정서적 공감과 감흥을 경험한다. 예컨대 태모를 형상화한 <매트릭스>의 오라클 할머니,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늙은 현자 간달프, <스피어나 노잉(Knowing)>에 나오는 외계인의 원형 우주선, 고난을 겪고 커서 아버지를 만나는 신화 속 영웅을 모사한 <스타워즈>의 주인공 루크 등이 관객들을 흡인한 힘이 그것이다.


<반지의 제왕> 중 늙은 현자 간달프                                     <스타워즈>의 주인공 루크


심연의 문화적 원형이 감성 움직여

그러나 문화적 원형은 이렇게 기본적인 몇 가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의 국면만큼 많은 원형이 존재하며 인류의 경험이 지속되면서 계속 수정되고 새롭게 탄생한다. 그래서 이 원형들을 보편성을 기준으로 위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앞서 융이 이야기했던 문화적 원형이 위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들이다. 그 깊이만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어 그 원형의 감성적 힘에는 너와 나의 차이가 없다.
그것보다 높은 곳에는 문화적 원형이라 하기에는 좀 과한, 그래서 끌로떼르 라파이유(Clotaire Rapaille) 같은 정신분석학자가 ‘문화적 코드’라고 명명하기도 한 원형들이 존재한다. 여기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문화적 코드’라고 하자.
이 문화적 코드에는 모든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성은 없다. 대신 작은 문화권 혹은 국가라고 할 만한 단위의 집단 속에서만 공유되는 문화적 원형이다. 라파이유의 저서 <컬처 코드>에서 예시한 랭글러 지프의 네모난 전조등 디자인이 유럽에서만 통했던 것은 유럽, 특히 서부 유럽인들이 겪었던 ‘나치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경험을 통해 형성된 지프의 원형이 작용한 결과다.
몇 해 전 국내 노트북 컴퓨터 광고 헤드라인으로 사용된 적 있는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단어는 노트북 컴퓨터를 통해 누리고 싶은 라이프스타일의 원형을 적시한 수작이었다. 이 경우는 그 원형이 한 국가보다 더 작은 젊은 세대 단위에서만 공유되고 있는, 위계상보다 표피에 있는 원형일 것이다.
이것보다 더 극적으로 작은, 그래서 개인마다 다를 수 있는 원형도 있다. 예컨대 필자는 어릴 적 <왈가닥 루시>와 같은 외국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책을 보며 군것질을 하는 광경을 인상 깊게 보았고, 이후 군것질을 할 때에는 반드시 동화책을 펼쳐보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식으로 필자만의 휴식에 대한 원형을 갖게 된 셈이다.
이렇게 원형 혹은 문화적 코드라고 하는 것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깊은 위계의 것에서부터 개인마다 차이가 나는 것까지 다양한 위계에 걸쳐 있다. 그런데 위계의 심연에 있는 문화적 원형일수록 인류의 깊고 보편적인 경험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랭글러 지프의 사각 헤드라이트                                         라파이유 저 <컬처 코드>         고승철 저 <CEO 인문학>


문화적 코드 통찰해야 ‘차이’ 비롯돼

이 대목에서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 하나있다. ‘남과 다른 것, 과거의 것과 다른 것, 개성적인 것’이라는 것의 의미 말이다. 이 글의 제목에도 들어 있는 소위, ‘차이(差異)’라는 것은 원형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특정 상황과 관련된 원형의 다름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시장과 관련해서 보면 그렇다. 원형은 쉽게 말해 한 사람이 특정 상황이나 사물에 대해 갖고 있는 전형적이고 이상적인 심상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심상을 지향한다. 예컨대 필자가 생각하고 있는 휴식의 원형(앞서 예시했던) 대로 쉬어야 제대로 휴식을 취한 것 같고, 젊은 세대는 디지털 유목민처럼 노트북을 갖고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인터넷을 해야 제대로 현대의 디지털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원형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욕구와 같은 것이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개성적인 것, 과거와 차이가 나는 새로운 표현이나 제품이라고 하는 것들은 바로 남들이 미처 포착하지 못한 특정 제품과 관련된 문화적 코드 혹은 원형을 구현해낸 것이다.
필자는 몇 해 전 서울에 거주하는 40, 50대 주부들을 인터뷰하면서 쇼핑이라는 행위 속에 세상과의 소통이라는 코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다. 이 소통이라는 코드를 포함할 수 있는 쇼핑의 원형을 찾아 낼 수 있다면 백화점의 마케팅에 요긴할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사람들 마음속에 ‘감성적 울림을 주지 못하는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많이 만난다. 바로 문화적 원형과 닿아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문학 읽는 CEO’라는 말이 유행이다. 그 인문학이 문화적 품격을 높이는 수준에만 머문다면 폼이야 나겠지만 경영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인문학은 인간, 특히 문화를 이해하는 공부다. 이 공부의 장점 중의 하나가 문화적 코드에 대한 통찰이 생기는 것이다. 문화적 코드에 대한 이해의 기반이 있어야 안정적으로 남과 차이가 나는 히트 상품, 디자인이 생산될 것이다. 인문학적 소양이 높은 CEO, 스티브 잡스의 성공신화가 계속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지상현
한성대 미디어디자인콘텐츠학부 교수 | psyjee@hansung.ac.kr

홍익대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지각심리학으로 학위를 받음. 심리학을 통해 디자인의 과학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디자인 유행분석에 필요한 여러 개념들과 척도 개발에 관심이 많다. <시각예술과 디자인의 심리학> <뇌-아름다움을 말하다> 등 8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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