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영감 종교가 있건 없건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은 종교예술과 일상을 함께한다. 테이크아웃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한적하게 거닐던 조계사에서도, 쇼핑을 하다가 들어간 명동성당에서도 그렇다. 2세기에 인도의 간다라와 미투라 지역에서 제작되던 불상이 긴 시간과 먼 거리를 돌아 조계사에 놓였으며, 12세기 프랑스 일 드 지방에 등장했던 고딕 양식은 대양과 산맥을 넘어 명동 가장자리에 도달했다. 뿐만 아니다. 퇴근 후 베란다에서 무심코 바라보는 야경 중에서 도드라지는 교회 첨탑과 붉은 십자가도 종교예술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인류를 위해 희생한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붉은 피가 무수한 십자가로 화해 서울 풍경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종교 예술의 스토리 라인
종교가 있건 없건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은 종교예술과 일상을 함께한다. 테이크아웃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한적하게 거닐던 조계사에서도, 쇼핑을 하다가 들어간 명동성당에서도 그렇다.
인류의 신념이 예술작품 속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온전히 믿고, 그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만큼 비현실적인 게 또 있을까? 하지만 인류는 보이지 않는 신을 믿어왔고, 그 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평생 금욕적인 삶을 살아가기도 했다. 그 뿐이랴. 신념을 위해 스스로 몸을 태우고 소신공양한 자가 있는가 하면, 믿지 않는 자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숨을 거둔 자도 있었다. 아마도 고독하고 처참한, 그리고 완성되지 않은 현세를 보상해줄 내세 혹은 윤회 등에 대한 믿음이 생에 대한 집착을 완화시켜준 것 같다. 몸이 따뜻한 체온을 지닌 육체에서 차가운 사물로 뒤바뀌는 사건, 즉 죽음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공포를 주는 엄청난 사건이다. 따라서 죽음 이후의 세계, 그것도 현세보다 더 나은 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처럼 완벽한 구원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과거 인류의 신념을 엿볼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확실한 것은 문헌과 예술작품이다. 고로 흔히 예술의 기원에 대해 말할 때 종교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엄밀히 말하자면, ‘종교’보다 ‘주술’이라 말하는 게 더 옳겠지만.
절대미·이상미로 완성된 고대 예술
종교와 결합한 시각예술은 거대한 몸집과 함께 등장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거대 석상이 그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당대 인류가 믿던 신과 그에 대한 정신적 가치가 너무도 거대했기에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때 제작된 시각예술 작품들은 과연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가에 대한 물음을 던질 만큼 크고 견고했다. 이처럼 인간들이 초월적 힘을 발휘하며 바위를 옮기고 쌓아올렸던 이유는 당시 집권자는 신과 동일한 존재였고, 그에 대한 절대 복종만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의 지침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고대 그리스를 위시하여 나타난 예술형식은 매우 세련되었으며, 이때 완성된 작품들은 절대미와 이상미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신은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완벽한 신체와 초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아프로디테나 디오니소스의 조각상에는 섬세하고 세심한 손길이 머무르며, 금방이라도 잠에서 깨어나 우리를 향해 이야기를 던질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사실적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은 새하얀 대리석으로만 남아있는 그 조각상들이 과거에는 화려한 색채를 띤 안료로 뒤덮여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공기 속으로 사라진 색들만큼 그 작품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상상력은 더욱 커진 것 같다.
‘프로파간다의 도구’ 역할도
중세시대에 이르러 종교예술은 가장 충실하게 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예술가의 이름이나 정보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중세시대에 이러한 익명성은 강조되었으며, 의도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표현형식도 디테일하거나 사실적인 것과 거리가 멀었다. 성상숭배 금지령과 함께 신적인 영역은 인간의 손으로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성스럽고 영적인 영역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이때 예술작품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많은 대중들이 보다 쉽고 편리하게 성경과 교리를 이해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마치 레닌 사후의 러시아 리얼리즘 미술이나 80년대 대한민국 민중미술과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예술은 프로파간다의 도구일 뿐이었다.
하지만 중세시대 종교예술이 고졸하고 형편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시대는 ‘암흑의 시대’로 불리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콘화들을 볼 때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금빛과 우아한 색채들이 등장했던 때였다. 이 금빛은 부의 상징이라기보다는 경건한 영혼의 상징이었으며, 연금술 또한 사실은 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라기 보다는 그 과정을 통해 보다 아름답고 고매한 영혼을 획득하고자 하는 데 그 의의가 있었다.
몽유도원도
중세 이콘화 노영 지상보살도
佛畵에서 읽는 스토리라인
이러한 서구 중세시대 미술에서는 우리나라 고려시대 불화와 비슷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형식보다 스토리 중심이라는 것이 그것이며, 금니와 천연재료 등을 이용해 화려하면서도 성스러운 색채를 완성했다는 게 두 번째이며, 작업을 하는 주체가 강조하고자 하는 대상을 다른 것들에 비해 두드러지게 표현했다는 것이 또한 그러하다.
불화는 그것을 완성하는 과정 자체가 수련이라고 불릴 만큼 굉장히 난이도 높은 작업을 요구한다.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운 과정을 통해 세상에 나온 만큼 그 작품들에 녹아있는 메시지는 더욱 견고하게 마련이다. 여기서 노영이라는 고려 화가의 <지장보살 담무갈보살 예배도>라는 작품에 대해 살펴보자. 이 작품은 나무판에 여러 번 흑색을 칠하고 그 위에 동물의 털 몇 오라기로 만든 세필로 금니 선을 그리며 완성한 작품으로, 그 안에 ‘지장보살’에게 기도하는 왕, 세상에 진리를 주고자 이 세계로 온 지장보살, 그리고 그들을 화폭에 담는 화가가 벌이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큰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지장보살이다. 개인적으론 그림 속에 머물러 있는 스토리라인이 특히 흥미롭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특징은 조선시대 초기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에서도 엿보인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들은 안견이 이를 화폭에 담으면서 완성한 작품으로, 도교 사상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그 꿈은 ‘안평대군이 험난한 산을 넘고 또 넘어 아름다운 복숭아밭으로 들어갔으며, 그곳에서 더 없는 행복감을 느꼈다’는 것으로, 작품을 보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도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구체적인 신 존재를 숭앙하지 않으며 스스로 유유자적한 삶을 추구하는 데 가치를 두고 있는 만큼 앞에서 말한 종교들과 맥락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고통스럽고 험난한 이생을 극복하기 위한 메시지이므로 그 근본적인 내용에서 합일점을 이루는 부분 또한 분명 존재한다.
사실 서구의 시각예술에서 기독교의 힘은 매우 막강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렘브란트나 밀레, 그후의 현대예술가들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들이 신을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것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 “신은 죽었다”고 한 니체의 말만큼 ‘신적 존재를 강하게 긍정’하는 것도 없으니 말이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에서 종교예술은 예술 전체의 일부로만 남아있다. 실제로 고려시대 이후 종교와 강하게 결합돼 있던 시각예술은 고상한 취미이거나 세상의 기록 역할을 하는 데 더 치중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예술에 내재되어 있는 모종의 희생과 열정은 테크놀로지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도 시사점이 큰 듯하다.
김지혜
큐레이터 | from.peru@gmail.com
김지혜 |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 미술사학과를 수료했다. 현재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동과 대중들에게 미술에 대해 알려주는 책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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