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2 : SUDDENBIRTH - 始原을 찾아 떠나는 여행,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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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DDENBIRTH
始原을 찾아 떠나는 여행, 다큐멘터리

다큐의 인기가 급상승한 이유는 ‘리얼 비슷한 리얼’이 아닌 ‘진짜 리얼’이 주는 생생한 감동, 그리고 힘든 현실이지만 현실을 차분하게 고찰하겠다는 대중의 의지에서 출발한다.



MBC <아마존의 눈물>과 <북극의 눈물> 극장판                                                   SBS <최후의 툰드라> 극장판

시청률 22.5%.’ 복수와 불륜이 난무하는 막장 드라마도 아니요, 자극적인 멘트와 몸짓으로 말초적 웃음을 선사하는 예능 프로그램도 아니다. 지난해 MBC에서 방송된 <아마존의 눈물>은 20%가 넘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다큐멘터리의 역사를 새로 썼다. 평균 10%만 넘겨도 대박이라며 어깨에 힘줄 수 있었던 과거와 비교해보면 이는 다큐멘터리사의 일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명품 다큐’라는 명예까지 얻은 <아마존의 눈물>은 TV 미방영분을 덤으로 얹어 영화로까지 개봉했는데, 아마존이 흘린 눈물 줄기를 따라 극장을 찾은 관객 수도 10만 명에 달했다.
아마존의 성공은 방송가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고, 방송사들은 서둘러 다큐 제작에 참여하며 다큐 전성시대를 열게 되었다. MBC는 2009년에 소개된 <북극의 눈물> 다시보기에 이어 올 1월 <아프리카의 눈물> 시리즈를 선보였고, 지구가 어찌나 서럽게 울어대는지 이제 <남극의 눈물>도 준비 중이다. SBS에서 방영한 <최후의 툰드라>도 시청률 14%를 기록하며 시청률 고공행진에 동참했고, 종교와 문명발달사 등 묵직한 주제를 주로 다루던 KBS에서도 대형 다큐 경쟁에 뛰어들어 <아무르 5부작> 방영을 시작했다.
비단 TV뿐이랴. 다큐의 인기는 스크린에서도 빛을 발했다. 관객 수 290만 명을 동원하며 다큐 영화의 돌풍을 몰고 왔던 <워낭소리>를 시작으로 지난해 개봉된 <위대한 침묵>·<울지마 톤즈>·<회복> 등 여러 다큐들도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소박한 흥행기록을 세웠다.
다큐는 특정 이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즐겨보던 장르다. 돌려 말하면 특정 이슈에 관심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장르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입에는 쓰지만 보신을 위해 꾹 참고 마시는 보약처럼, 큰 재미는 없지만 ‘교양보신’을 위해 꾹 참고 감상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 시청률을 중시하는 제작환경 속에서 다큐멘터리는 늘 소외되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2년 전부터 다큐가 대중의 관심을 모으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대중의 취향이 변덕스럽게 변한 탓일까, 아니면 지적 능력과 인식 수준이 갑자기 신장해 교양에 대한 갈증이 심화되기라도 했단 말인가.


‘진짜 리얼’의 힘
다큐의 인기가 이처럼 급상승한 이유는 ‘리얼 비슷한 리얼’이 아닌 ‘진짜 리얼’이 주는 생생한 감동에서 찾을 수 있다. <무한도전>을 시작으로 <1박 2일>·<패밀리가 떴다>·<런닝맨>·<남자의 자격> 등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최근 몇 년간 예능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인기비결은 바로 ‘리얼’의 힘이었다. 대중들은 프로그램 속에 투영된 연예인들의 일상을 훔쳐보는 데 열광했고, 이어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며 자신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동질의식에 즐거워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이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했다고는 하나 이 역시 각색되고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대중들이 차츰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한창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던 <패밀리가 떴다>의 대본이 유출되었을 당시 시청자들은 마치 믿고 있던 애인의 거짓을 알게 된 것처럼 드러내놓고 배신감을 표출하지 않았던가. 리얼로 포장된 모습이 알고 보니 거짓이고 판타지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아챈 시청자들, 그들은 이제 ‘진짜’를 원했다. 때마침 다큐는 진심이 묻어나는 영상으로 그들에게 다가섰고, 투박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감동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짜인 각본 없는 다큐가 때로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감동을 주기도 하니까.


영화 <워낭소리>

메가톤급 다큐의 부상
다큐의 진화도 대중의 시선을 끈 중요한 요소다. 초등학생 때 엄마 손잡고 놀러간 63빌딩의 아이맥스에서 대자연을 다룬 다큐를 처음 보았다(아이맥스에서 유일하게 상영하는 영화가 다큐여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대형 스크린의 웅장함과 생생한 화면에 온전하게 사로잡혀 스크린 크기만한 감동을 안고 돌아섰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후 간혹 TV에서 접한 다큐는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봤던 지루한 시청각자료를 떠오르게 했고, 결국 채널을 돌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큐도 그동안 많은 진화를 이루었다. 시간·제작비 등 다방면의 과감한 투자로 ‘명품’으로 거듭난 것이다. <최후의 툰드라>의 경우 1년 2개월의 사전제작, 300일의 현지 취재, 9억 원의 제작비가 소요되었고, <아프리카의 눈물>은 1년의 사전취재, 307일의 현지 취재, 총 12억 원의 제작비로 아프리카의 생생한 삶을 화면에 재현할 수 있었다. <아무르> 역시 6개월 사전취재, 230일 촬영, 제작비 9억 원을 들여 세계 최초로 아무르강 4,400Km 전체를 다루고 있다.
이처럼 스케일부터 남다른 메가톤급 다큐들을 영상 장인들이 한 장면 한 장면 정성스레 찍어 선보이니 그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디지털 TV의 보급으로 굳이 아이맥스까지 발걸음하지 않고도 편안하게 거실 소파에 누워 고화질의 영상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다큐 폐인을 양성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게다가 김남길·고현정·현빈 등 연예인들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들려주는 내레이션은 다큐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똑같은 설명도 현빈의 그윽한 목소리로 듣노라면 그와 함께 아프리카 여행을 떠났다는 착각에 마음껏 빠질 수 있으니 말이다.


KBS <아무르>                                                   KBS <1박2일>



영화 <아바타>



고단한 현실과 불안한 미래의 고찰
그러나 잘 짜인 구성과 생동감 넘치는 영상, 그 안에 내포된 진실성만으로 다큐의 인기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다큐 열풍의 가장 큰 배경은 바로 ‘현실의 고단함’ 때문이다. 현실은 고달프고 미래마저 불안할 때면 두 가지 행동 양상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하나는 불안정한 현실을 외면한 채 판타지 속으로 숨어버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현실을 회피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안으로 들어가 상황을 자근자근 씹어가며 그 속에서 해결점을 찾는 것이다. 판타지의 극한을 보여준 영화 <아바타>와 소박한 생활을 가감 없이 담은 <워낭소리> 같은 다큐 영화가 동시에 사랑을 받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힘든 현실이지만 차분하게 고찰하겠다는 의지에서 다큐에 대한 애정은 출발한다.
현실이 각박할 때면 저마다 마음의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는데, 다큐는 이런 사람들을 마음 속 고향, 즉 시원(始原)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아마존, 북극과 남극, 툰드라 등 태초의 자연을 간직한 곳을 소개하고, 그곳에서 문명을 접하지 않은 채 원시적인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 대중을 자극한다. 넉넉하지 않아도 현실에 만족하며 행복한 삶을 누리는 아마존 조에족 사람들의 해맑은 웃음이 코끝을 찡하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현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이 다큐가 건네는 메시지다. 인간의 내면 탐구를 다룬 다큐도 이와 마찬가지. 3부작으로 완성된 <SBS스페셜-짝>은 초반에 애정촌에서 벌어진 실험다큐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인간의 본성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며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화두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올해에도 환경과 대자연뿐 아니라 현대사 재조명·사회공헌·사회현상·인간탐구 등 주제가 더욱 다양해진 작품들로 다큐 열풍을 이어갈 전망이다. 다큐 속에 담긴 현실은 때론 매우 가혹하고 처참하다. 그래도 시선을 떼지 못하고 빠져드는 이유는 한 가지다. 아무리 가혹해도 진실은 진실이니까.



이상현
문화 칼럼니스트 | lunmi@naver.com 

<오뜨>, <럭셔리> 등의 잡지에서 피처 기자로 일하고, 현재는 사회 문화 관련 글을 쓰는 프리랜서.
입춘에 태어난 덕분에 따뜻하지 않으면 혹한에도 가출해버리는 병을 앓고 있으며, 물병자리인 이유로 적응력이 뛰어난, 그야말로 변온동물.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