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보스하르트의 책,
<소비의 미래>
|
|
루이 뷔통 광고
|
|
|
|
프라다 광고 시리즈
| |
이미지(image)는 현대사회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다. 그러나 누구나 잘 알고 있고 익숙한 이 용어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 언어로는 적당한 번역어가 없다. 굳이 한자로 표현하면 영상(映像)이나 심상쯤 될까. 그러나 이 또한 이미지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만큼 이미지의 정체가 포괄적이고 모호한 탓이다.
이미지의 어원은 모방, 죽음 등과 관계있다. 이는 특히 이미지와 관련된 회화나 사진 같은 예술 분야에서 드러나는데, 예술의 전통에는 묘사(재현, representation)와 영구불멸(immortality)이라는 인간의 욕망이 투영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현상계는 원형을 모방하는 것이라는 미메시스(mimesis)이론 주) 대로, 산을 보면 산을 그리고 토끼를 보면 토끼를 그리는 재현의 욕구와 더불어, 늙거나 죽더라도 영원히 현재를 간직하고자 하는 초상화의 전통이 함께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완전한 재현과 영원불멸은 불가능하지만, 사진과 영화의 발명 이후 이미지는 더 이상 재현의 임무가 아닌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면서 점점 진화하고 있다. 바야흐로 이미지가 실체를 앞서가는 시대, 실체없는 이미지가 실체가 되어가는 시뮬라시옹(simulation)의 시대인 것이다.
이미지의 중요성은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현대사회에서 더욱 증폭되고 있다. 뉴미디어의 발달과 감성의 확장으로 인해 이미지의 무한확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조합과 변형이 자유자재로 이루어지는 디지털 시대에 이미지는 새로운 상상력을 요구한다.
주) 미메시스: mimesis 그리스어. 모방 또는 재현적(再現的) 제시의 뜻.<흉내내다><비슷하게 하다>를 뜻하는 동사 mimeomai에서 연유된 말이다.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이 말을, 사람이 남의 모습을 흉내내는 경우와, 시인이 시를 쓸 때에 스스로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직분을 흉내내는 경우에 쓴 바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미메시스사상은 창작이나 추(追)체험으로서의 향수이념(享受理念) 또는 예술분류의 원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
이미지와 광고 커뮤니케이션 |
|
1990년 이후 우리나라 광고의 표현 양상은 이전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광고의 주요 타깃인 유스 마켓(youth market)에 영상세대가 등장하면서 그들의 감성에 어필할 수 있는 감성적이며 이미지 위주로 된 광고가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지 광고라 일컬어지는 이들 광고들의 특징은 현실과 허구의 뒤섞임, 서술구조의 해체, 공간과 시간의 해체, 예술장르의 혼합, 페미니즘적 시선, 카메라와 시청자간의 시선일치 파괴, 전통적 색채조화의 파괴 등 포스트 모던적인 양식을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
|
TTL광고로 대표되는 이미지 광고들은 기성세대에게는 충격을, 젊은 세대에게는 공감을 얻었다. 이미지조각들로 이루어진 이런 영상언어의 문법과 체계는 선형적인 문자언어의 문법과 체계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영상언어는 ‘자연화(naturalization)’된 내러티브로 편집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길들여진 문법에서 벗어난 이미지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지는 본질적으로 통합체와 계열체가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구성을 이루고 있으며, 또 불명료하다. 이 불명료함은 영상언어의 장점이자 단점이라 할 수 있는데, 얼마든지 다른 해석의 공간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장점도 있다.
사실 모든 이미지에는 나름대로의 내러티브가 있다. 문자언어가 그렇듯이 이미지를 구성하는 각각의 독특한 요소, 즉 플롯이 있으며, 이 플롯은 제작자가 의도한 대로 전달되는 경우도 있고 때로 제작자의 의도와 달리 해석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광고를 비롯한 대중예술에 나타난 이미지는 판매와 상업적 목표에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커머셜 메시지라는 것을 기억하자. 다시 말하면 그것은 혼자만의 예술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파격적이며 혁신적일지언정 동시대인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수준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대중매체의 메시지는 비교적 명백한 메시지인 경우가 많고, 영상세대인 젊은 소비자는 그것을 좀더 잘 읽을 줄 안다. 아울러 소비자의 변화는 상품과 광고에 새로운 표현양식을 요구한다. 미래의 마케팅은 ‘소비자의 감성을 이해하고 디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랜트 매크래켄(Grant McCraken)같은 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하나의 삶의 형태이고 문화 그 자체”라고 설파한 바 있다. 굳이 그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우리는 바야흐로 소비가 문화가 된 시대에 살고 있다.
또한 미디어의 발달 속에 하루하루 넓어지고 있는 직접, 간접의 체험 속에서 우리는 더 감성적이고 개성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 변화를 꾀한다. 무수한 과잉상품과 무수한 상품 정보 속에서 소비자의 수준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상품에 대한 지식과 정보, 이미지 독법과 감성이 계속 발달하는 탓이다. |
|
|
소비자 자신도 모르는 꿈의 세계를 풀어야 |
|
경제학자이자 유행분석가인 다비트 보스하르트(David Bosshart)의 이론을 빌면 현시대는 소비자 독해력(consumer literacy)과 미디어 독해력(media literacy)이 필수적인 능력으로 발달해가고 있는 사회다.
소비자 독해력이란 소비의 다양한 현상체계 속에서 소비의 의미를 읽어내는 능력, 소비가 보내는 메시지, 상징성, 기호를 읽어내는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미디어 독해력이란 일상을 뚫고 들어오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매체와 그것의 상징성 그리고 메시지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같은 소비자 독해력, 미디어 독해력을 갖춘 소비자는 상품과 광고의 어설픈 포장에 속지 않는다.
풍부한 상품, 범람하는 메시지, 다매체 환경 속에서 소비자는 이제 더 이상 구체적인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가치를 산다. 구체적인 상품을 구매할 때는 합리적인 가격을 찾아서 인터넷을 뒤지고 할인점을 찾아 보다 싼 가격에 좋은 물건을 구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추상적인 가치에 아낌없이 돈을 지불한다. 하나의 테마이자 메시지를 구매하는 것이다. 예컨대, 프라다(Prada), 루이 뷔통(Louis Vuitton), 질 샌더(Jil Sander)와 같은 고급브랜드에서의 소비는 그들이 표방하는 상류사회의 라이프스타일과 이미지를 구매하는 것이다.
또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테마 레스토랑 같이 공간과 인테리어에서조차 상품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다.
보스하르트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소비의 시대를 포스트모던 소비사회라고 규정한다. 상품을 아무 선택없이 받아들이고, 그 상품의 기호와 상징을 여과없이 수용해야만 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 소비자의 욕구가 생산과 직결되고 소비자의 성향에 맞게 상품이 만들어지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과잉시장에서는 고객의 욕구를 고객 자신보다 먼저 파악해서 거기에 맞는 상품세계를 창조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소비자의 욕구를 먼저 알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소비자 역시 자신의 욕구와 꿈을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미래의 기업은 단순히 좋은 상품을 고객에게 제공해 고객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 고객의 무의식과 꿈의 세계의 암호를 풀 수 있어야 한다.
|
|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세계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처럼 고객의 감성과 꿈, 비합리적인 영역, 고객 스스로도 말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세계를 미리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마케팅의 역할이고 광고가 수행해야하는 기능이다. 결국 소비자의 삶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감성을 디자인해서 고객을 이끄는 것이 미래 마케팅 성공의 관건인 것이다. |
|
문화와 꿈의 영역으로 옮겨갈 마케팅 전장 |
|
코펜하겐 미래학연구소의 롤프 옌센(Rolf Jensen)은 산업사회와 정보화사회를 거쳐 이후에 펼쳐질 사회는 ‘꿈의 사회’라고 한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후기자본주의사회에서는 기술만능주의적 입장은 더 이상 통하지 않으므로 감성의 영역에 더욱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을 꿈꾸게 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꿈, 단순하고 열광적인 신화, 놀이, 감정 세계 등, 고객이 관심을 보이는 가치와 연결된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상품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물질적인 가치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상품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이자 대리만족이기도 하고, 욕망의 실현이자 꿈의 추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을 타인과 구별하고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자기 정체성을 찾고, 나아가 자아실현을 이룬다. 때문에 상품에서 패션, 공간, 먹을거리에 이르기까지 미적 감성을 만족시키고 문화적 가치를 지닌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해진다.
새로 나타날 시장은 스릴과 흥분 그리고 폭력을 위한 시장, 고독과 명상 그리고 여유를 위한 시장, 과중한 욕구와 짐을 덜어주는 시장 등으로 꼽힌다. 이는 바로 인간의 무의식과 꿈의 영역이다. 이 무의식과 꿈의 영역에 가장 빨리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이미지다. 이제 마케팅과 광고의 전장은 문화와 꿈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으며, 소비사회의 가장 빠른 커뮤니케이션 전령은 바로 이미지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두려워할 일도, 비관론에 빠질 일도 아님을 다비트 보스하르트의 책 <소비의 미래> 서문 첫 구절은 시사하고 있다.
“우리는 마케팅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손님으로 초대한 주인이고, 광고가 그 진행을 맡은 다중매체 시대에 살고 있다. 소비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마케팅도 커뮤니케이션이고 광고도 커뮤니케이션이다. 상표도 커뮤니케이션이고 상거래도 커뮤니케이션이다. 우리가 살면서 어떤 문제에 부딪친다면 그것은 모두 커뮤니케이션에서 생긴 것이다. 결국 해결책도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