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02 : <아바타>가 우리를 설득하는 방식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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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아 |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 / eunap@daegu.ac.kr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같은 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다.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연구위원으로 일했으며, 2006년 가을부터 대구대학교 심리학과의 교수로 재직중. 문화에 따른 소비자심리의 차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소비자행동 등이 주요 연구분야이다.
 
 


애플 사의 아이팟·아이폰 같은 성공적인 혁신제품들의 공통점도 소비자가 설명서를 들춰볼 필요 없이 시각적으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인터페이스, 단순하고 화려하면서도 미학적인 디자인, 기존의 기능들을 새롭게 조합한 독창성`-`바로 아바타의 성공요인과 닮아 있다.

할리우드 3D 영화 <아바타>가 지난 최근 1,000만 관객 고지를 넘어섰다. 한국에서 개봉한 외화사상 최초로 천만 관객 동원 기록이다. 인터넷과 신문 등의 미디어에서는 연일 아바타에 관한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뉴스를 채운다. 그러면서 아바타에 등장하는 판도라 행성, 지구에서 판도라 행성으로 날아가는 우주선, 무서운 파워로 인간의 힘을 증폭시킨 쿼리치 대령의 로봇, 나비족과의 DNA 합성 복제를 통한 아바타 분신 등 영화 속의 각종 현상들에 관해 과학기술적 지식에 근거한 분석 자료를 제공하며 대중들의 지적 호기심과 과학적 상상력을 채워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누리꾼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펼치는 아바타에 관한 감상과 논쟁은 극찬에서부터 혹평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 한편의 영화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이토록 다양한 생각을 개진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까지 하다.

단순 낭만적인 플롯, 환상적인 실재감
아바타는 지구에서 4.4광년 떨어진 판도라 행성을 수탈하려는 지구인과 ‘나비족’이라는 이름의 원주민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이런 대결 구도의 스토리라인은 대부분의 SF영화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구조이지만, 아바타에는 기존의 영화들과는 차별화된 섬세한 변형이 구석구석 스며있다.
우선 아바타라는 ‘에이전트(Agent)’를 등장시킨 것이 그 첫 번째 독창성이다. 인터넷 공간의 삶의 방식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더 이상 ‘아바타’라는 존재는 낯설지 않다.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기도 하고 내 삶의 공간을 확장시켜주기도 하는 ‘귀여운 분신’이던 아바타. 그런데 카메론의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 제이크의 삶을 바꾸고, 나아가 지구의 운명을 바꾸는 ‘막강한’ 아바타로 변형되어서 영화를 보는 관객 모두가 자신의 능력이 확장된 분신으로서 아바타를 느끼도록 함으로써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듯한 몰입 경험을 하도록 한다. 게다가 주인공 제이크와 나비족의 공주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지구인과 외계인이라는 단순한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 적과 동지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단순한 플롯을 복잡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영화의 두 번째 독창성은 입체영상 기술을 통해 우주공간, 판도라 행성이라는 상상의 세계를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체험적인 영상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3D영상을 보고 난 관객들은 마치 자신이 판도라 행성에 실제 다녀온 것 같은 실재감(Presence)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최첨단 3D 기술로 영화를 제작함으로써 보는 내내 관객의 시선을 잠시도 놓아주지 않고 3시간 가까이 몰입하도록 만든 것이, 적어도 표면적 성공의 요인이다.
하지만 아바타의 진짜 성공요인은 이 두 가지 요소들에 있지 않다. 영화를 비판적으로 보면, 아바타에 등장한 많은 요소들은 이전에 본 어느 영화의 한 장면 혹은 어느 영화에 등장했던 모티브를 약간 변형했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아마존보다 몇 배 울창한 판도라 행성의 생태계는 마치 <쥐라기공원>에서 보았던 거대한 식물과 동물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판도라 행성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할렐루야 산과 그 중심에 존재하는 영혼의 나무는 <반지의 제왕>에 등장했던 신비로운 산과 닮아 있으며, 인간에게 나비족을 짓밟을 수 있는 무자비한 힘을 더해준 로봇은 과거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에 등장했던 로봇들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또한 주인공 제이크가 기계에 들어가 아바타와 교신하는 순간 가상의 세계로 진입하는 형식은 <매트릭스> 혹은 더 오래된 영화 <토탈리콜>과 다르지 않다. 나비족들이 공중을 자유자재로 유영하는 모습은 마치 해리포터가 마법의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것과 흡사하기도 하다.

뻔한(?) 모티브, 그러나 미학적 내레이션
그러나 아바타는 기존의 영화들에 등장했던 이런 요소들을 멋지게 진화시켜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미래 세계, 우주공간의 가상세계를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제시함으로써 관객을 압도하는 데 성공했다. 우선 아바타는 영상미학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영화가 제공할 수 있는 ‘보여주기의 절정’이라는 평가가 과장되지 않다.
인간은 외부세계의 정보의 약 80% 이상을 시각적으로 받아들인다. 즉 인간의 오감 중에서 시각정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인데, 이 영화의 경우는 특히나 그러하다. 나비족들이 “I see you" 라고 말하는 것은 흔히 미국인들의 대화에서 I know 대신 I see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여태껏 경험했던 SF영화는 공상과학의 세계에 나오는 장엄한 우주공간, 거대한 우주선이나 기술력이 집약된 첨단기계들이 보여주는 실버톤 혹은 푸른빛의 차가운 화면이 전부였다. 그런데 아바타는 다르게 표현했다. 거대 기술문명의 차가운 화면보다 판도라 행성의 대자연의 원시림을 노랑·빨강·초록·보라 등 자극적이며 원초적인 색감을 통해 풍요함과 싱그러움, 따뜻함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인간적인 생명력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 어느 영화에서보다 화려한 색의 향연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그런가하면 아바타의 모습은 어떠한가. 기존의 영화에 등장했던 외계인의 모습이란 터미네이터 같은 전형적인 로봇이거나 ET처럼 기형적이거나 아니면 반지의 제왕에 등장했던 골룸처럼 혐오스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바타의 나비족은 다르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은 브이(V)라인 얼굴, 3미터에 가까운 키와 늘씬한 다리를 가지고 있으며, 유려하게 뛰고 자유자재로 공중을 유영하는 모습은 마치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몸짓을 연상하도록 만든다. 평화로움과 청아한 느낌이 드는 푸른색의 피부에 길게 땋아 내린 머리카락과 길고 탄력 있는 꼬리는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초자연적 존재로서의 신비감을 극대화시켜 경외심까지 느끼도록 만들어준다. 게다가 아바타의 표정과 근육, 모공의 움직임까지 나타낸 이모션 캡쳐 기술은 아바타가 더 이상 외계인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동일한 또 하나의 인류라는 착각을 일으키며 그들과 감정적으로 동일시하도록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렇게 신비하고 강하며 아름다운 외계인, 아바타에게 관객들은 매료되었다. 즉 아바타의 진정한 성공요인은 ‘3D영상기술’과 ‘아바타’라는, 독창적이지만 친근한 모티브를 미학적으로 섬세하게 풀어낸 아름다운 내레이션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보고 느끼며 즉물적으로 공감되는 쉬운 게 필요해

 최근 또 하나의 작품이 방송 관련자들은 집중하게 만들었다.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이 21.5%라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시청자들에게 아마존의 원주민을 머리로 이해하도록 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원주민을 보여줌으로써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이해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즉 요즘의 시청자들은 누가 나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도록 하는 것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를 제시함으로써 스스로 느끼고 깨닫고 이해하기를 원한다.
<아마존의 눈물>이 소비자에게 지적인 설명보다 날것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줬다면, <아바타>는 ‘보여주기’의 압도적인 힘이 현실보다 더 강력하게 사람을 몰입시키는 하이퍼 리얼리티(Hyper-Reality)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증명했고, 그 정점에는 시각적 체험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입체영상(3D)기술과 분신(Avatar)이라는 매개체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보완한 섬세한 장치들이 아바타를 진정 빛나는 승자로 만들었다. 만일 아바타에 등장한 나비족의 모습이 지금보다 아름답지 않았다면, 초록과 노랑, 빨강의 원시적인 생명력을 표현한 찬란한 영상이 아니었다면, 쥐라기공원보다 더욱 울창하고 장엄한 판도라 행성의 자연이 시각적으로 표현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열광하도록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즉 소비자가 새로운 것을 원한다고 그것이 너무 생소해서 공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낯선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일일이 설명해 친절히 가르쳐 주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서도 안 되며, 보고 느끼며 즉물적으로 공감되는 쉬운 것을 전해줘야 한다.
애플 사의 아이팟·아이폰 같은 성공적인 혁신제품들의 공통점도 소비자가 설명서를 들춰볼 필요 없이 시각적으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인터페이스, 단순하고 화려하면서도 미학적인 디자인, 기존의 기능들을 새롭게 조합한 독창성, 바로 아바타의 성공요인과 닮아 있다.
광고표현에서도 이렇게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익숙한 새로움을 단순하고 화려한 심미감으로 표현할 때 소비자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설득당하지 않을까. 소비자는 익숙한 새로움을, 감각적인 충만감을, 누가 설득하기보다는 스스로 설득되기를 원한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