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02 : OB Lounge - 1981년 호남정유 CX-3 캠페인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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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인섭 | 전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객원교수 / insshin@freechal.com
지난 10년간 한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로서 주로 한국광고사, 국제광고론 강의를 했다. 20권 가까운 저서에는 <한국광고사>, (공저), <일본광고사>, <중국광고사>(공저) 등이 있다. 1978~1982년 희성산업에서 광고담당 이사를 역임.
 
 


광고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어제’는 없다. 내일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32년 전의 이야기는 몹시 고리타분한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한국의 공휴일 15일 가운데 3일 연휴는 설날과 추석인데, 모두 ‘2,500여 년 전 중국의 공자가 가르친’ 유교에서 비롯된다. 서론은 이만하자.

극비명령
HS애드는 전에 LG애드였고, 그전에는 희성(喜星)산업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캠페인은 1981년 6월 초에 런칭한 GS칼텍스(그 때는 호남정유)의 새 휘발유 ‘CX-3’이었다. 희성산업 역사상 가장 방대한 광고 캠페인이었다. CX-3는 이미 아시아 몇몇 나라에서 성공한 신제품이었다.
런칭 캠페인이 시작되기 두어 달쯤 전에 호남정유에서 연락이 왔다. 극비리에 CX-3 도입 캠페인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광고 담당 이사인 나와 김문웅 본부장(작고)이 몰래 계획을 세웠다. CX-3 캠페인 프레젠테이션에는 제품 도입에 성공한 싱가포르, 미국 칼텍스 본사와 광고회사 AE 등이 모두 참가했다. 아마도 희성산업이 한 최초, 최대의 다국적 프레젠테이션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IMC’였다
아직 IMC라는 컨셉트도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CX-3 도입은 IMC였다. 모든 일간지(29개), TV(2 채널). 라디오, BTL 매체, 그리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PR이 동원되었다. 한국 최초로 벌룬(기구)을 동원했는데, 하얀 바탕에 CX-3을 그린 것으로, 서울 하늘의 명물이었다 (다만 보안상 이유로 강남에만 사용이 허가되었다).
BTL 가운데는 주유대 스티커·장갑·휴지·주유공이 입을 셔츠, 제품 소개 기술설명서와 배부할 인쇄물 등이 빠짐없이 있었다. 광고(상단 CX-3 광고 참조)는 시범(Demonstration)으로 했다. 시범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더구나 제품이 휘발유여서 위험 요인이 있었다. 전국을 순회하며 대리점과 주유소 경영주를 대상으로 제품 설명회를 했다. 캠페인 개시 1주일 후 브랜드 인지도 조사에서는 타깃(운전자) 90%가 알고 있었다. 경쟁 업체인 석유공사와 경인에너지에서는 난리가 났다. CX-3의 ‘기습’을 얻어맞은 때문이었다. 몹시 유감스럽게도 이 캠페인은 두 주일로 끝났다. 당시 동력자원부는 1979년 겨울의 제2차 세계 석유위기 기억이 생생한데 정유회사들이 휘발유 판매전을 벌이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판단을 했다. 호남정유 재경 담당 이사(미국인)는 “Operation was a great success but the patient died”라며 웃었다.
희성산업이 광고회사로 출범이 늦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모든 분야에서 앞서 있었다. 당시 최고의 영예로 여기던 조일광고상(朝日廣告賞) 금상 수상자가 3명 있었다. 조사과가 발행하는 ‘홍보선전간행물’ 시리즈는 매우 앞선 자료였다.
희성이 발행한 책자는 대학 부교재로 사용되었다. <기업과 PR>이라는 책자는 미국 PR업계를 처음으로 소개한 한국 최초의 간행물(번역)이었다. 한국 기업의 국제광고 캠페인을 선도한 곳도 희성이었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