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광고는 타깃의 마음을 관통하기는커녕 그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할 때가 많다. 전혀 타깃팅하지 않았던 예상치 못한 곳으로 날아가 예기치 못한 계층을 움직이고 엉뚱한 문화를 만들어버리는 일도 흔하다.
여름 메이크업 광고를 위해 말도 못할 정도로 공을 들였던 적이 있었다. PPM에서 모델 선정 뿐 아니라 메이크업, 헤어스타일, 촬영장소, 그리고 비키니에, 하다못해 머리핀처럼 하찮은 것에 이르기까지 처음 광고를 기획할 때 고심의 과정 못지않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런데… 광고공세가 한창 기세를 올릴 무렵 의도했던 타깃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광고는 엉뚱하게도 바캉스 비키니를 준비하는 여성들의 마음을 관통했고, 광고에 등장했던 형광색 비키니가 유행을 일으키고 있었다.
속상하게도, 그해 여름 해변에는 유독 우리 광고에 등장하는 광고모델이 입었던 형광 비키니 차림을 한 젊은 여성들이 많았다.
광고가 만드는 우연의 일치
우리는 광고를 성공시키기 위해 시간과 자본, 조직과 인력, 전략과 전술, 이론과 경험 등 거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한다. 광고를 위해 과학과 예술까지 시녀로 만들어버리고, 또 인간의 무의식 영역까지 더듬어서 뭔가를 끄집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진을 빼서 만든 광고는 어떤 일이 있어도 타깃의 마음을 관통해 소비자의 몸을 움직이고 시장을 흔들어야 한다고,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광고는 타깃의 마음을 관통하기는커녕 그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할 때가 많다. 전혀 타깃팅하지 않았던 예상치 못한 곳으로 날아가 예기치 못한 계층을 움직이고 엉뚱한 문화를 만들어버리는 일도 흔하다.
그것은 참으로 속상한 일이다. 그런 일을 겪을 때면 꼭 광고주 때문이 아니라, 광고인으로서 존재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들 지경이다. 광고에서 정말 타깃팅이 가능한가? 광고전략은 기획서의 장식용인가? 크리에이티브는 새 날아가는 소리인가? 광고비는 헛돈이 아닌가? 내가 하는 광고 일은 진심으로 가치가 있는 일인가? 숱한 의문이 밀려온다.
생각을 바꿔서 좀 크게 보면 어떨까?
내가 아는 한 디자인 회사 사장은 대학원 과정의 마지막 종합시험에서 외국어시험 때문에 고민이 태산 같았다. 스스로 중학생 실력밖에 안 된다는 영어실력 때문에 자신이 없었던 거다. 영어 때문에 망신을 당할까? 아니면 여기서 그만둘까? 이럴 줄 알면서 대학원에 왜 왔는가? 극심한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상태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우연히 식당에서 본 신문광고 하나-‘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라는 지극히 평범한 카피의 광고가 그의 마음을 바꿔주었고, 결국 영어시험에 합격했으며 지금은 대학교수가 되었다.
요즘 세계를 무대로 그 주가가 하늘을 찌르는 디자이너 이상봉도 자신의 삶을 바꾼 광고의 우연의 일치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을 하곤 한다. 가난한 연극인의 삶을 벗어날 기회를 찾던 그에게 우연히 눈에 들어온 것은 패션디자인학원 광고였으며, 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은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골목길 가장 익숙한 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한글을 디자인 소재로 활용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탄생이 바로 광고 때문이었다.
<타임>지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된 세계적인 심장 전문의이자 심신의학을 창안자인 디팩초프라는 의학연구소의 연구원 일에 환멸을 느끼는 순간부터 한 광고가 계속해서 자신을 따라다녔다고 회상한다. 과연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며 연구소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전쟁터 같은 응급실 현장으로 나아갈지 고민할 때 자신을 따라다닌 그 작은 광고 하나가 연구소를 박차고 나와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Carl Gustav Jung의 동시성의 원리, 집단무의식
광고가 고민과 갈등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전환의 기회를 마련해준 사례는 끝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할 때 이상하게도 광고가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 같다고 말을 한다. 특히 어떤 문제로 인해 깊은 고민에 빠지거나 심각한 갈등 속에 있을 때면 자꾸 특정한 광고가 보인다고 한다.
가족 간의 갈등으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는 ‘가족이 희망입니다', ‘또 하나의 가족’등등 메시지들이 눈에 들어오고, 실패를 거듭하며 의기소침해 방에 숨어 텔레비전 시청으로 시간을 보내는 실패자에게는 ‘시작하세요!’, ‘Impossible is nothing!' 같은 메시지들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내면의 에고에 사로잡혀 근심·걱정·분노·증오·고뇌·번뇌로 허덕이다 잠깐 정신을 차려 바깥을 보면 어김없이 바로 앞에서 솔루션을 속삭여주는 광고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층을 뛰어넘어 ‘사랑해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같은 광고 메시지에 환호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왜, 누군가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광고는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의 주변을 맴도는 것일까? 그리고 왜 광고는 그렇게도 솔루션을 제공하려고 안달을 하는 착한 천사의 역할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정말 우연의 일치일까?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것도 광고산업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심리학은 오래 전부터 우연의 일치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이름만으로도 권위가 느껴지는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융은 ‘동시성(Synchronicity)’이라는 개념으로 우연의 일치를 설명한다. 동시성이란, 사건들의 의미 있는 비인과적인 동시발생, 즉 프레젠테이션 전날 아내의 동창회 부부동반 모임에 광고주 CEO와 동석을 한다든가, 회사를 그만두려는데 스카우트 제안이 온다든가, 셀레늄 식품 광고를 시작하는데 건강 관련 방송 프로그램에서 셀레늄의 효능을 대대적으로 다룬다든가 하는 우연의 일치가 모두 동시성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늘 바라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 마케팅도 동시성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광고의 의미
그 놀라운, ‘우연의 일치를 필연의 통로로 이끄는 힘’은, 더 놀랍게도 광고다. 광고는 상품을 팔지만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전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히 광고를 ‘세상을 진보와 발전으로 이끄는 힘’이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어떻게, 광고가 우연의 일치라는 기회를 만드는 것일까?
다시 칼융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칼융은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ness)이라는 가설을 내세워, 인간의 무의식에는 어떤 선험적인 앎이 내재되어 있으며, 이 절대적 지식의 작용으로 사람 사이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교감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참 어려운 말이지만….
정신의학자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집단무의식을 쉽게 설명하는 편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의식혁명>에서 인간 개개인의 마음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된 컴퓨터 터미널과 같으며, 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는 인류의 의식세계 자체이고, 우리 자신의 의식은 단지 모든 인류의 공통된 의식에 뿌리를 둔 데이터베이스의 개인적인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의 모든 희망과 욕망, 갈망은 ‘의식’이라는 하나의 데이터베이스 속에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희망, 욕망, 갈망을 자극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는 광고야말로 집단무의식 속 데이터들과의 접속이 아닐까? 광고를 통해 인간 의식의 데이터베이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희망과 욕망, 갈망에 접속하게 하는 순간 우연의 일치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업으로 삼는 광고의 거대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물론 작은 의미는 타깃의 마음을 관통해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넘어 광고주의 금전등록기를 쉴 틈 없이 두드리게 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어렵게 만든 광고가 혹시 오발탄이 되거나 산탄이 되거나 유탄이 되더라도 너무 실망하고, 더 나아가 자학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매일 누군가에게 인생 전환의 기회를 마련하고 또 인류의 진보와 발전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텔레비전이나 신문광고는 물론이고 전단, 포스터, 작은 POP 하나라고 해도 정말 소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