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럼 팬이라면 휴대폰을 바꿀 때 아무래도 풀럼 구단의 공식 스폰서인 LG 브랜드를 제일 먼저 고려해보지 않을까? 두터운 충성고객들(축구 팬들)을 보유한 구단들과 프리미어리그는 자사 브랜드를 구단의 충성고객들의 구매력과 결부시키려는 기업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전 세계적인 불황의 여파로 온 세계가 근심에 쌓여있다. 경제 악화가 미치는 파장은 어느 곳 하나 피해가지 않는다. 스포츠 역시 이러한 경제 악화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미 국내에서도 굴지의 대기업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해오던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의 타이틀 스폰서 후원을 중단하겠다는 발표로 양대 프로 스포츠계가 고민에 빠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세계적인 경기불황으로 경비절감이 불가피해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영국 역시 세계적인 경제 악화의 여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동유럽 국가들의 위기 여파에 실업률과 물가 또한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즉각적으로 부가가치세율을 인하하고 여러 가지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다. 이러한 글로벌 경기침체는 영국 스포츠 마케팅 시장에도 불어 닥쳤다. 영국 최고 스포츠 시장인 영국 프리미어리그(England Premier League) 역시 구단별 스폰서 기업이 도산하거나 후원활동 중단으로 인해 구단 재정 운영의 어려움을 나타내고 있다. 기업들이 예산 지출액을 급격히 줄이는 과정에서 마케팅 비용을 절감 대상 1순위로 올려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난히 극성인 영국 축구팬들의 열광적인 함성 때문일까? 아니면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라는 자부심 때문일까?
프리미어리그는 글로벌 위기에도 리그 운영에 전혀 문제가 없을 것임을 공표했고, 실제로 몇몇 구단주들은 팬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마케팅과 스폰서십에 관련하여 재정적, 기술적인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며 언론에 공식발표를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프리미어리그와 각 구단들이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자신감을 나타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리미어리그와 스폰서십
세계 4대 파이낸스 컨설팅 기업 중 하나인 딜로이트(Deloitte)의 Annual Review of Football Finance 2008년도 보고서에 따르면, 프리미어 리그의 구단 2007년 총 수입은 23억 유로, 우리 돈으로 약 4조 2천억여 원(09년 3월 환율 기준)이라고 발표했다, 이 수치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많은 총 수입을 가진 독일 분데스리가보다 무려 65%나 높은 규모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세 가지 주요 수입원을 중심으로 영국 프로리그 구단들의 총 수입을 산정했다. 경기장 수익, 중계권료, 그리고 광고수익이 바로 그것이다. 즉 경기장 수익, 중계권료와 더불어 스폰서십을 통한 광고수익이 구단경영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구단의 광고수익은 공식 유니폼 스폰서를 포함해 대부분 기업들의 스폰서십으로 이루어진다. 프리미어리그의 전 세계적인 인기는 물론 챔피언스리그와 UEFA컵 같은 유럽 대회까지 감안하면 브랜드 노출을 통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싶어 하는 기업들에게는 영국이나 유럽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좋은 마케팅 무대인 셈이다.
스포츠 스폰서십은 기본적으로는 기업이 현금이나 물품 또는 노하우, 조직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팀과 선수들 뿐 아니라 각종 이벤트, 조직연맹 등을 지원함으로써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여러 가지 목표를 달성할 목적으로 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따라서 타이틀 혹은 유니폼을 통한 독특한 브랜드 노출, 스포츠 팀 혹은 선수의 다이내믹한 이미지와 기업 이미지의 일치화, 스포츠 자체가 가지는 공익추구의 측면 강조, 시장의 국제성, 열광적인 축구 팬들을 기반으로 한 소비자들의 광고수요를 통해 기업의 상업적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프리미어리그의 경우 역시 축구가 가진 오락적 가치와 프리미어리그와 결합된 미디어 노출효과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매력이다. 따라서 많은 기업들은 이러한 장점을 취하기 위해 스폰서십 경쟁에 뛰어들고 있고, 실제로 많은 성공사례가 존재한다.
불황에 오히려 빛 발해
물론 프리미어리그에도 경기한파가 불어 닥쳤다. 몇몇 구단들의 후원기업들이 도산하거나 후원을 중단하겠다는 발표가 잇따른 것이다. 명문 구단 중 하나인 웨스트햄은 이번 2008/2009 시즌에서 유니폼 스폰서 없이 약 4개월 동안 경기를 가졌다. 2008년 말 유니폼에 이름을 새겨 넣던 ‘XL Leisure’라는 후원사가 도산했기 때문이다. 웨스트햄은 가까스로 SBOBET.com이라는 온라인 스포츠 도박회사를 새로운 스폰서로 1년 6개월 계약하는데 성공했지만, SBOBET.com은 지난해 FA 챔피언십 대회에서 승부조작의 스캔들에 휘말린 적이 있어 구단 이미지에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브랜드 가치가 높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시 공식 유니폼 스폰서가 후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해 이슈가 됐다. 현재 공식 스폰서를 맡고 있는 AIG는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파산설에 휩싸이면서 더 이상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들로 말미암아 프리미어리그 시장 전체의 수익감소 혹은 구단 재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주변의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어리그와 각 구단들은 구단 운영에는 큰 차질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더욱 공격적인 투자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언급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우도 스폰서 기업인 AIG가 후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이후에도 여유를 보이고 있다. 경제위기 속에서도 벌써부터 인도 재벌기업인 사하라 및 중동의 사우디텔레콤, 말레이시아항공 등 많은 기업들이 AIG의 빈자리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맨유는 오히려 아무하고나 계약을 맺지 않을 것이라며 여유를 보이고 있다. 또한 맨체스터 씨티의 경우 경제위기에는 아랑곳없이 구단주의 막강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선수 영입을 위한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2001년부터 프리미어리그의 타이틀 스폰서를 꾸준히 후원하고 있는 바클레이은행 역시 영국의 심각한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2010년까지 후원을 지속할 예정이다.
딜로이트는 경제한파와 소비심리 위축이 각 구단의 총 수입, 스폰서 계약 혹은 기존의 호화스러운 편의제공 서비스에는 약간의 영향을 미치겠지만, 기본적으로 충성스런 팬과 TV 중계권 수입, 그리고 안정적인 스폰서를 가진 프리미어 리그는 2013년까지는 문제없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난 풀럼 팬, 그러니까 휴대폰도 LG”
세계 최악이라는 경제불황 속에서도 프리미어리그의 이러한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왜 기업들은 프리미어리그를 통한 스포츠 마케팅에 투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일까?
앞서 언급한 일반적인 스포츠 스폰서십의 장점들 - 브랜드 이미지 제고, 공익 추구성 강조, 시장의 파급효과, 미디어 활용가치, 목표 고객집단 활용 등의 이점들을 취할 수 있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프리미어리그가 다른 스포츠 산업보다 상업적, 마케팅적 가치우위를 선점하고 특별하게 돋보이도록 하는 것은 축구팬들의 축구 사랑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축구에 대한 사랑이 유별나고 극성맞기로 소문난 영국 축구팬들이다. 태어나서부터 한 팀만을 응원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아들 손자까지 다 함께 본인의 지역 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축구문화는 그들에게는 아주 일상적이고 당연한 라이프스타일이다.
구단 입장에서는 그들이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충실히 구매해 주는 충성고객들인 것이다. 축구가 이미 일상이며 라이프스타일과 정확히 일치되는 축구팬들에게 자신이 응원하는 구단을 후원하는 기업과 그의 제품, 서비스,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선호하게 되는 현상은 당연한 것이다. 예를 들면 풀럼 팀을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팬이 있다면 휴대폰을 바꿀 때 아무래도 풀럼 구단 공식 스폰서인 LG 브랜드를 제일 먼저 고려해보지 않을까? 두터운 충성고객들(축구 팬들)을 보유한 구단들과 프리미어리그는 자사 브랜드를 구단의 충성고객들의 구매력과 결부시키려는 기업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또한 프리미어리그가 치열한 순위 다툼을 통해 챔피언스리그와 UEFA컵 대회로 1년 내내 이어지고 전 세계 202개 국가, 5억 7천만 명이 시청한다는 사실은 영국 내 마케팅 활동을 넘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브랜드 홍보 효과를 가늠케 해주고 있다. 이러한 강점 덕택에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수입을 창출하고 스폰서 기업들 역시 지속적인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축구팬 = 브랜드 충성 구매자
스포츠 스폰서십이 분명 브랜드 노출을 통한 브랜드 인지도 증가에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스폰서십을 통한 브랜드 노출/인지도 증가가 실제로 기업의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하지만 적어도 브랜드 파워를 가지는 것이 그렇지 못한 경우보다 마케팅 혹은 세일즈 전략을 펼치는 데에 더 많은 옵션과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미 구단에 대한 매우 높은 브랜드 충성도를 가진 고객들을 포함해 전 세계 축구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프리미어리그 구단에서의 스폰서십 활동은 분명 기업에게 환상적인 무대인 것은 분명하다. 기본적인 기업 이미지 제고 및 브랜드 강화의 이점뿐만 아니라 소비자(충성고객)와의 신뢰 구축의 용이성, 구단에 대한 충성도를 자사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까지로의 확장 효과까지 노릴 수 있다.
그런데 스포츠 스폰서십이 상당히 매력적인 수단인 것은 확실하지만 지나치게 매스 미디어에만 의존할 것보다는 좀 더 발전적인 마케팅 전략을 혼합, 활용해서 더욱 더 효과적인 마케팅 툴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국가 브랜드 홍보를 하던 말레이시아는 단순히 국가 브랜드명을 홍보할 뿐만 아니라 자국 항공사도 스폰서 활동에 전략적으로 함께 참가시켜 국가 브랜드 인지도 상승과 실질적인 매출 창출을 도모해 결과적으로 한 해 500만 명의 추가 관광객을 유치했다. 스폰서십을 하는 기업은 단순히 광고효과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어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목적을 달성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프리미어리그는 미디어 파워를 활용 단순한 브랜드 노출을 통한 인지도 상승의 효과뿐만 아니라 열광적인 축구 팬들과의 유대감을 지속시키고 자사 브랜드 충성고객으로의 확장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이것이 바로 프리미어리그가 전 세계 스포츠계의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원동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