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코엑스몰 바닥에는 육상경기장에서나 볼 수 있는 트랙이 그려져 있었다<그림 1>. ‘이곳에서 무슨 경기를 하나보다’하고 생각하며 그 트랙을 쭉 따라가 보았다. 그러나 결국 그곳에서는 아무 경기도 하지 않았으며, 그 트랙의 끝에는 나이키의 ‘Swoosh’ 로고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 트랙은 다름 아닌 ‘나이키의 올림픽 캠페인’ 장소였다. 약간의 허무함도 잠시, 곧이어 밀려오는 감탄에 머리가 띵했다. 또한 ‘역시 나이키답다’ ‘멋지다’ ‘기발하다’ 라는 등등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내가 굳이 귀를 쫑긋 세우지 않아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나이키는 이런 유의 광고를 많이 집행해왔다. 피트니스센터의 락커와 유리를 이용한 광고<그림 2>, 건물 외벽을 이용한 광고<그림 3>, 극장의 영화 포스터 게시판을 이용한 광고<그림 4> 등 광고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한 마디로 ‘Cool’한 OOH 광고를 많이 집행했다.
Ambient 미디어의 정의
이와 같이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 주변의 시설물을 활용해 집행한 옥외광고를 일컬어 ‘Ambient Media’라고 한다. 넓게 보면 OOH 미디어의 한 종류로 포함되지만, OOH 안에서 딱히 그 카테고리를 규정하기는 힘들다. ‘Ambient’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포위한’ ‘에워싼’이라는 뜻, 명사로는 ‘환경’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전적 의미로는 아무래도 뭔가 부족한 듯싶다. Ambient 미디어에 대한 Wikipedia(www.wikipedia.org)의 정의를 살펴보자.
‘Ambient 미디어는 영국의 미디어 업계에서 2002년 무렵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로, 지금은 광고업계 전반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이것은 OOH 미디어의 한 종류로 전통적인 미디어에 대한 반대 개념 또는 대안 미디어라는 뜻으로 정의된다. Ambient 미디어 광고는 기존의 다른 미디어 광고와 연계되어 집행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른 미디어 없이 단독으로 집행되기도 한다. Ambient 미디어를 활용한 광고의 성공 열쇠는 최적의 미디어 형태를 선택하고, 효과적으로 그 메시지를 녹여서 전달하는 것이다.’
위의 정의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단어는 ‘대안 미디어’라는 것이다. 기존의 옥외광고물로는 옥상 빌보드, 야립, 교통 광고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왔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기 쉽다. 이러한 이유로 기존의 전통적인 옥외광고의 효과가 예전만 못해지면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 찾은 것이 바로 Ambient 미디어다.
Ambient 미디어의 효과에 대한 조사
이러한 Ambient 미디어의 현황, 효과, 그리고 효율적인 적용 방안에 대해 오스트리아의MediaCom에서 조사를 실시, 지난 ESOMAR WM3에서 발표했다. 이 조사는 미국·영국·프랑스·일본·호주 등 전 세계 20개 도시에서 실시되었는데, 거리에서 랜덤으로 샘플링된 사람들의 개별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총 응답자는 일반인이 625명으로, 1개 도시당 30여 명이며, 추가로 각 도시마다 옥외광고 전문가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그 조사 결과 중 주요한 것 세 가지를 소개하기로 한다.
1. OOH의 클러터가 미치는 영향
뉴욕과 같이 광고물이 많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옥외광고의 양이 너무나 많다는 데에 모두 공감하고 있다. 특히 타임스퀘어 같은 곳에서는 너무나 많은 광고가 등장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알아 볼 수 없으며, 결국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와 반대로 미국의 오클랜드나 호주의 시드니처럼 빼어난 자연환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사람들은 오히려 더 많은 옥외광고물을 기억하고 있다. 심지어 라틴아메리카의 소비자들은 OOH 미디어가 꾀죄죄한 빌딩과 칙칙한 도시환경에 아름다움을 선사한다는 이유로 오히려 광고를 더 좋아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너무나 많은 OOH의 클러터는 결국 소비자를 짜증나게 할 수 있고, 이로 인해 광고물 자체에 대한 무시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Ambient 미디어는 기존의 광고 영역이 아닌 곳에 집행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발표자들은, 언젠가는 무책임하게 도시환경을 이용하는 광고들로 인해 OOH 광고에 대한 금지령이 내려질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2. 기술의 발전과 사생활 침해 가능성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옥외광고물에도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들이 나타났다. RFID는 제품이나 사람의 활동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트래킹할 수 있어, 실제로 리바이스에서 RFID 태그를 모든 옷에 심어서 그 옷의 이동경로를 추적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이것이 악용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만약에 RFID가 옷에 삽입되어 있고, 이것이 크레디트카드 정보와 연결된다면 이는 심각한 사생활 침해와 연결될 수 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를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톰 크루즈는 범죄 예상자로 분류되어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다. 도망가는 과정에서 GAP 매장에 들어서게 되고, 동공 확인을 한 매장에서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새로운 제품을 소개하려고 한다<그림 5>. 물론 영화에서 톰 크루즈는 안구 이식 수술을 받아 다른 사람으로 오인되지만, 자신의 이름을 노출시키기 꺼려하는 사람이나 자신이 갔던 장소를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심각한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기업이 첨단기술을 활용해 지나치게 개인화된 광고를 집행하고자 한다면 자칫 심각한 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3. 효과적인 Ambient 미디어의 활용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소비자가 광고를 무시하고 사생활 침해에의 위험까지 있다면 Ambient 미디어는 집행하지 말아야 할까? 정답은 당연히 ‘No’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잘 만들어지고,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는 광고가 도시환경을 개선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시드니 같은 곳에서 행해지는 Sky Writing(비행기가 지나가면서 하늘에 브랜드 로고나 이름 등을 새기는 것)에 대해 모두 멋지다고 대답했으며, ‘나타났다 사라지기’ 같은 특성으로 인해 전혀 소비자를 불편하게 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비자들은 ‘효과적인 Ambient 미디어의 활용’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조건을 충족하는 광고가 눈에 띄고, 거부감이 없는 좋은 Ambient 미디어 광고라고 말했다.
‘재미있는, 불가사의하지만 매력 있는, 짧은, 위트가 있는, 밝은, 다양한 컬러로 된, 독창적인, 유머가 있는/드라마틱한, 좋은 음악과 함께하는, 약간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집행된 광고에 있어 보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에 대한 기억과 광고에 대한 기억간의 좋은 관계가 형성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다. 응답자의 2/3가 좋은 광고의 조건으로 ‘유머’를 들었다. 이러한 유머는 소비자에게 브랜드와 관련해 긍정적인 기억을 제공하고, 결국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소비자들이 광고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되도록 시간과 장소를 잘 선택하여 마치 개인화되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한편 Ambient 미디어의 효과와 관련, 마케팅 전문가들은 개별 미디어의 효과를 측정하지 말고 전체 캠페인에 대한 효과를 측정하는 것이 낫다고 권고한다. 그리고 그들은 최고의 성공사례로 애플의 ‘아이팟(iPod)’을 든다<그림 6>. 다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나이키가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앞서 예를 든 일련의 캠페인을 통해 나이키의 ‘Young’하고 ‘Cool’한 이미지가 형성되지 않았을까?
아이팟은 그래픽과 음악에 초점을 둔 컨셉트를 바탕으로 심플한 디자인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 가를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는데, 아이팟 캠페인의 성공은 우리에게 한 가지 큰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바로 ‘소비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을 이해하라’는 점이다. 아이팟 캠페인은 칙칙하고 오래된 도시에 활력을 주었으며, 환경을 파괴하지도 않았고, 소비자들의 사생활을 침해하지도 않았다.
Ambient 미디어의 미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전통적인 미디어의 효과는 예전만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Ambient 미디어의 활용은 앞으로도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OOH 광고의 집행과 관련해서는 국가마다 법과 규제가 천차만별이기는 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많은 광고주들이 집행을 해오고 있다. 국내에서는 최근 들어 법의 테두리 내에서, 때로는 법의 테두리를 살짝 넘어가는 선에서 이와 같은 광고집행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Ambient 미디어가 모든 기존의 미디어를 대체할 만큼 효과적이고, 그 집행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Ambient 미디어는 공간적인 제약으로 인해 도달 범위를 넓히기에는 턱없이 미흡하다는 커다란 단점도 아울러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Ambient 미디어의 미래는 그 아이디어에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유사한 아이디어가 범람한다면 이 또한 쉽게 식상할 수 있다. 눈에 띄고자 하는 노력이 지나쳐 소비자들의 눈을 피로하게 한다면 오히려 브랜드에 대한 거부감만 키울 뿐이다. 결국 얼마나 참신한 아이디어로 소비자의 눈을 즐겁게 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에 따라 Ambient 미디어의 미래는 한없이 밝을 수도, 어두울 수도 있다.
Ambient 미디어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또 하나 중요한 것이 바로 ‘규제’라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OOH 광고에 대한 규제는 외국에 비하면 비교적 강력한 편이다. 다행히도 규제개혁위원회에서 ‘공사 현장의 가림막 광고 허용’, ‘교통수단이용 광고의 면적제한 완화’, ‘벽면 전면광고의 예외적 허용’ 등 20여 개의 규제에 대해 완화하려고 심사중이거나 이미 시행령을 공포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규제 완화의 분위기를 악용, 과도한 Ambient 미디어를 집행한다면 소비자의 반발을 살 수도 있고, 이로 인해 다시 강한 규제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규제개혁위원회의 고시로 옥외광고의 ‘주민 참여제도 도입’이 시행되고 있다. 규제는 풀어주되 판단은 국민에게 맡긴다는 정부의 의지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제도로 인해 Ambient 미디어 광고집행에 더욱 주의를 요하게 되는 가운데, Ambient 미디어의 미래에 빛을 밝혀줄 수도, 커튼을 내려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 다가온 셈이라 할 수 있겠다.
지난 몇 년간 TV와 인터넷을 활용한 ‘크로스미디어 캠페인’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러한 캠페인에 Ambient 미디어를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젊은 타깃을 대상으로 TV와 인터넷, 그리고 Ambient 미디어를 활용한 크로스 미디어 캠페인을 기획한다면 꽤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참신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찾아 길을 나서며, 이 글을 마친다.
* 사진 사용을 허가해주신 블로거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