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e Moment
한 5년 정도 되었던가? 누적된 보조금을 이용해 휴대폰을 바꿨다.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갔지만, 그래도 진열대에 펼쳐진 제품들을 보고, 꺼내서 만져보면서 너무나도 화려하게 자태를 뽐내는 다양한 제품들의 유혹에 잠깐이나마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역시 결정은, '당신의 가장 빛나는 순간… Shine Moment'라는 카피.
제품을 주섬주섬 챙기면서도 패키지에 적혀 있는 카피가 매우 신경 쓰였는데, 돌아오는 내내 내 인생에 그렇게 빛났던 순간은 언제였던가를 생각해 내려고 골몰하게 되었다.
결국 '아직 내 삶의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은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럼블피쉬의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면서 복잡하게 되살려 보았던 기억들이 정리되었지만, 마치 어릴 적 유치한 감상이 되살아난 것 같아 내심 부끄러워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래 아직은 아니지…… 더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이 분명 올 것이야'라는 생각과 함께.
'데카르트 신드롬'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휴대폰'하면 내장된 카메라 화소 수가 어느 정도고, MP3 기능과 그 저장용량은 어떻게 되느니 등등 복합기능과 관련된 이야기, 또는 디자인을 말하면서 얼마나 슬림한지, 얼마나 세련되었는지 정도가 관심사였다. 하지만 이제는 제품 고유의 이미지와 느낌을 비롯해 시각·청각·촉각을 자극하는 요소는 물론, 그로부터 상상되는 맛과 향까지 사람들의 오감 전체가 회자되고 있다.
이런 것이 바로 '데카르트(Tech+Art) 신드롬'의 정체임에 틀림없다. '데카르트'는 기술(Tech)과 예술(Art)를 합성한 신조어.
소비자들의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감성과 예술적 요소를 구현한 일련의 제품 경향을 일컫는 것으로, 기술과 실용적 요소들을 중시하던 가전제품 등의 시장에 일대 회오리를 몰고 오면서 거대한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초콜릿폰의 '감성 마케팅'
LG전자의 '샤인(Shine)'이라는 제품으로 이야기를 꺼냈지만, 이 '데카르트'라는 제품 트렌드의 개척자는 블랙라벨의 첫 작품인 초콜릿폰이 아닌가 싶다. 이미 누적 판매대수 500만 대를 넘어섰다는 이 제품의 위력은 그 탄생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피아노에서나 볼 수 있었던 소재가 휴대폰으로 깎여져 있었고, 수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초콜릿이라는 Pet Name(애칭)을 가지고 당당하게 소비자들 앞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휴대폰 기술의 일반화, 사용자 수준의 상향 평준화와 함께 국내 시장은 물론 세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특별히 차별된 프리미엄 제품과 이미지가 필요했다. 또한 이는 노키아나 모토롤라와
같이 다양한 제품 라인으로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필수적인 과제이기
도 했다.
블랙의 고급감에 레드의 임팩트가 더해져 시각적 자극을 극대화하고, 특이한 소재와 터치패드로 촉각을 새롭게 하는 등 독특한 외관과 다소 생소한 소재로 차별화한 디자인의 제품, 거기에 누구에게나 친숙한 '초콜릿'이라는 감성적 애칭을 붙여 오감 전체를 들썩이게 한 것은 물론, 특별한 사람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블랙라벨의 이미지화를 추구한 감성 마케팅이야말로 LG전자 모바일을 성공의 반열에 올려놓은 주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한 제품의 성공이라고만 하기엔 너무나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이어령 교수의, '편리하면서도 공허한 디지털에 인간의 숨결인 아날로그를 불어넣는 디지로그(Digilog; 디지털+아날로그)라는 개념을 통해 후기정보사회의 진정한 리더'가 되자는 취지의 주장을 확실히 증명한 사례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ITU텔레콤 월드
전 세계의 정보통신기술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ITU텔레콤월드'에서도 LG전자와 초콜릿폰의 인기는 대단했으니, 초콜릿폰의 명성이 결코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정보통신기술 분야의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세계 최대 정보통신 전문 전시회 및 포럼인 'ITU Telecom World 2006(이하 ITU텔레콤월드)'가 지난해 12월 4일부터 8일까지 홍콩에서 열렸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 International Telecom Union)의 주최로 3년마다 개최되는 ITU텔레콤월드는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700여 정보통신 관련 업체들이 참여해 저마다의 기술과 제품을 전시함으로써 향후 세계 모바일의 흐름과 동향을 미리 파악해 볼 수 있는 행사. 또 전시회와 같은 기간 진행되는 포럼에는 전 세계 160여 개국에서 정보통신 관련 부처 관료, 정책당국자, 기업 CEO 등 전문가들이 참석해 Keynote 연설을 통해 기술동향과 정보들을 파악하고 공유하는 값진 자리이기도 하다.
'Black Label Avenue'
우리는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곳에서 초콜릿폰의 세계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향후 지속적으로 출시될 LG전자 블랙라벨 시리즈의 'Better Technology, Better Entertainment, Better Life'를 이끄는 제품 이미지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전시관 구성의 방향을 잡았다.
홍콩은 누가 뭐래도 패션의 도시. 물론 밀라노나 뉴욕 같이 창조적인 작품이 발표되는 도시는 아니지만 전 세계 트렌드세터(Trendsetter)들이 주목하고 있어 세계적인 패션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트렌드 발상지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이에 착안, ITU텔레콤월드의 LG전자 전시관을 'Black Label Avenue'로 그려보고자 했다. 전시 관람객들이 마치 명품숍이 즐비한 홍콩의 어느 거리를 걷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할만큼 전시되는 하나 하나의 제품에 명품의 격을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첨단 기능과 기술의 과시뿐만 아니라 제품 곳곳에 묻어있는 감성가치들을 돋보이게 하고자 했던 것이다.
전시관 디자인의 핵심 포인트는 블랙라벨의 프리미엄을 전달하기 위한 미니멀리즘과 독특한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스타일리시. 이에 제품의 소재처럼 광택이 나는 블랙 톤의 전체적인 분위기, 그리고 강렬하게 조화되는 초콜릿폰의 로고, 그리고 트레이드마크인 Arrow는 전시 관람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손색이 없었다.
관람객들은 이러한 강렬함에 저절로 이끌리듯 들어와 진열된 쇼케이스 제품들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듣기도 하고, 갤러리 개념으로 형상화한 존에서는 세계적인 디자인 어워드 수상 제품들을 감상하기도 하며, 휴대폰을 통해 직접 영화와 음악을 보고 들으며 게임도 즐기면서 LG전자의 모바일 세계를 마음껏 체험했다. Black Label Avenue에서의 이런 체험은 아마도 세계시장을 주도해 나갈 LG전자의 능력을 인정하고 응원하게 되는 훌륭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이번 ITU텔레콤월드에서 빼놓을 수 또 하나의 이슈는 바로 LG전자관의 이벤트. 우리는 단순한 집객 유도형의 이벤트에서 탈피, LG전자의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는 행사를 고민했다. 그 대안의 하나로 떠오른 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한국 비보이(B-boy)들의 공연. 단순한 '춤'의 의미를 뛰어넘어 아트 퍼포몬스(Art Performance)를 지향하는 이들의 공연은 관람객들에게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한국 문화의 위상과 LG전자 브랜드의 이미지를 동시에 강화시킬 수 있을만한 훌륭한 공연이 되었다.
사실 ITU텔레콤월드에서 보여준 LG전자의 제품과 전시관, 행사가 단연 최고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삼성과 SK텔레콤, KT 등 우리나라 참가사들을 비롯해 엄청난 투자를 쏟아부은 중국 회사들, 그리고 NEC·HP·모토롤라 등 세계적 회사들의 전시관도 탄성이 절로 나올만한 멋진 모습들이었다. 또한 전자악기 연주와 모바일 패션쇼, 댄스공연 등 다채로운 이벤트로 전시장의 분위기를 한껏 돋우는 등 각각의 전시관들은 나름대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전시관 디자인부터 제품 진열, 이벤트, 그리고 도우미 유니폼에 이르기까지 명확하고 일관된 컨셉트로 통일되어 있는 LG전자관의 브랜드빌딩(Brand Building) 노력은 분명 남달랐다. 이는 특히 전략 방향을 선택하면서 여러 가지 위험성을 염려하다 보니 결국 밋밋한 내용을 도출하는 대부분의 경우와는 달리, '선택과 집중'으로 밀어붙이는 '용기'에 다름 아니므로 더욱 주목받아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미래를 앞서 내다보며 트렌드의 중심에 서서 시장을 주도해 나가려는 치열한 노력과 창의적인 몸부림 등의 열정이야말로 '디지로그 시대'에서 세계 정보통신 분야의 리더가 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초콜릿폰에 이은 샤인폰의 제품과 전시 크리에이티브가 세계무대에서 또 얼마나 파란을 일으킬지 한껏 기대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