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맺기
지난해 추석 즈음해서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본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메르세데스 광고를 담당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크리에이터들이 자동차에 적용될 새로운 기술과 신차에 대해 교육을 받는 자리였다. 영어로 진행되는 기술교육은 눈꺼풀을 무겁게 했지만, 점심때마다 일류 호텔에서나 볼 수 있는 긴 모자를 쓴 주방장이 직접 서빙해주는 풀코스의 식사가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또한 노르웨이에서 온 카피라이터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새로운 기술을 아이데이션하는 방법에 대해 그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한참을 웃었던 기억도 새삼스럽다.
나는 가끔 여자로서, 자동차 광고를 하는 짜릿함과 어려움을 함께 느끼곤 한다. 끊임없이 개발되는 새로운 기술들을 이해하고 몸으로 느끼기란 사실 만만치 않다.
그러나 웬만한 자동차 회사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만들 신기술들이 세상에 나와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온몸에 전율을 느낀다. 모든 광고가 그렇지만 특히 자동차의 신기술을 알리는 광고는 자동차와 ‘더 깊은 관계’에 빠져야 나온다는 게 나의 철학이다.
오르가슴을 느꼈는가?
얼마 전 우리 팀 모두는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새로 나온 로드스터 The New SLK 350을 시승할 기회를 가졌다. 집에서 청소하고 있던 부인을 불러내 인천공항까지 달린 모 부장님, 여자친구를 옆에 태우고 “멋있지” 하면서 열 번도 넘게 하드 탑을 열었다 닫았다 했을 우리의 카피라이터. ‘광고 일을 하면서 이런 재미도 있어야지’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던 시간이었다. 나 또한 일산을 오가며 SLK 350이 주는 환상의 코너워크, 주변의 차 사이를 약올리듯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민첩성, 순간 가속력, 최고 속도 260Km/h 등을 경험해 보았다. 특히 출발해서 100Km까지 속력을 내는데 5.5초 밖에 걸리지 않는 순간 가속력은 그야말로 짜릿함의 극치, 예술이었다.
자동차 기술을 소재로 한 광고를 한다는 것을 나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여자가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를 하며 오르가슴을 느끼느냐, 못 느끼고 섹스를 마치느냐의 차이’라고…. 물론 가짜 오르가슴 또한 자동차를 잘 아는 매니아들에게 단번에 들통이 나버린다.
테크닉만으로는 안 된다
자동차 광고 중 기술을 소재로 한 광고들이 많이 있다. 그 중 어설픈 테크닉에 의존하지 않고 깊이 자동차를 사랑한, 그래서 오르가슴에 도달한 광고 몇 편을 모아 보았다.
최고 속력, 그리고 0부터 100km까지 이르는 데 걸리는 시간, 즉 ‘zero 100’을 내세운 지면광고를 살펴보기로 하자.
<광고 1>. 얼마나 출발이 빨랐는지 톨게이트의 돈 받는 사람이 건네주는 동전이 손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자동차는 어느새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내용이다. 100km/hr에 이르는 데 8.5초 걸린다는 걸 이렇게 재미있는 과장으로 표현했다.
<광고 2>. 얼마나 속력이 빠른지 운전석 앞에 매달아놓은 묵주에서 예수님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광고 3>. ‘속도’ 하면 결코 질 수 없는 오토바이족의 머리를 한바탕 뒤집어 놓은 자동차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이번에는 미츠비시(三菱)의 사륜구동 광고이다.
4륜구동의 원리는 바퀴 4개가 도로에서 갑자기 생기는 돌발상황에 대응하여 제각기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 분담을 한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의 두 발, 두 다리가 그렇듯이.
<광고 4, 5, 6>. 지면광고는 4륜구동을 ‘Life is 4x4’라고 아주 쉽게, 설명이 필요 없게 풀어 놓았다.
이제 메르세데스-벤츠의 7G- Tronic TV 광고를 살펴보자.
<광고 7>. 파티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 중년의 부부이다.
아내는 차에 타자마자 립스틱을 꺼내 바르기 시작하고, 남편은 차를 운전해서 집을 빠져나가 달리기 시작하는데, 아내가 한마디 한다. “왜 아직 출발하지 않으세요?”
7G-Tronic은 메르세데스-벤츠만이 가지고 있는 자동 7단 변속기로, 변속기어 작동을 더 부드럽게 해주어 탁월한 주행감을 가져온 신기술이다. 그런데 사실 재작년에 우리 팀에서도 7G-Tronic을 소재로 광고를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헤드라인이 ‘시속 170Km/hr, 아내가 립스틱을 꺼내 들었다’였다. 집행은 되지 않았지만 광고주가 좋아했던 헤드라인이었다. 독일의 크리에이터들도 우리처럼 비슷한 고민의 과정을 거쳐 그 느낌에 도달했으리라 생각하니 재미있다.
당신도 느꼈는가?
그렇다. 자동차 광고는 재미있다. 신기술을 소재로 한 광고는 더더욱 재미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경우 같은 기술을 놓고 세계의 크리에이터들이 어떻게 고민하는지 한눈에 비교해보고 감탄하는 재미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술개발에 밤을 지새울 메르세데스 본사의 연구원들. 그 열정에 동참할 수 있어 기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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