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7-08 : Culture Club - 가학적 공연’의 안과 밖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Culture Club - 가학적 공연’의 안과 밖
 
  가까이, 너무 가까이 다가온 폭력의 관음증  
정 성 욱 대리 | 영상사업팀
swchung@lgad.lg.co.kr

무대에 한 남자가 서 있다. 그의 이름은 맷 크로울리, 별명은 튜브. 그의 별명처럼 그의 코로부터 몸 안으로 비닐 튜브가 삽입되어 있다. 그 한쪽 끝에는 2리터짜리 대용량 주사기가 달려 있고, 다른 쪽 끝은 아마도 그의 위장에 닿아 있을 것이었다. 주사기 안에 맥주 여섯 캔, 허쉬 초코시럽 한 병, 타바스코 소스 한 병, 그리고 펩토 비스몰1)한 병이 들어간다. 기괴한 간호사 복장을 한 진행 도우미가 주사기의 피스톤을 끼우고 천천히 그 피스톤을 밀어 넣자 주사기 안의 혼합주가 그 남자의 위장으로 들어간다. 깡마른 그의 배가 눈에 띄게 불러오고 있다. 잠시 후 끝까지 들어간 피스톤이 다시 잡아당겨지기 시작하고, 그의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주사기는 아주 수상한 액체로 가득 찬다. 그 액체 안에 떠있는 이물질을 보면서 사회자는 그 남자에게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 묻는다. 남자는 태연하게 ‘치킨 엔칠라다’2)라고 대답한다. 잠시 후 주사기에 가득 찬 액체(와 조금의 고체들)는 작은 컵에 나눠 담기고, 사회자는 관객들을 향해 “누가 이 ‘튜브’ 특제 칵테일을 마시겠느냐”고 외친다. 곧 이어 무대는 자진해서 뛰어 올라온 관중들로 가득 차고 컵을 하나씩 나누어 든 이들은 높이 잔을 들어 축배를 즐긴다.

‘자학 페스티벌’에 열광하는 사람들
악(惡)취미적인 상상처럼만 느껴지는 이 장면은 사실 90년대를 풍미했던 얼터너티브 서커스, <짐 로즈의 서커스(Jim Rose’s Circus)> 공연의 클라이맥스다. 다른 서커스들이 보여주는 것이 ‘곡예’라면, 이들의 화두는 ‘고통’이었다. 무대 위에서 위 세척을 하지 않나, 성기에 쇳덩이를 매달아 끌고, 각목에다 혓바닥을 못 박고, 날아오는 대포알을 1미터 앞에서 뱃살로 받아내고, 온 몸을 100개가 넘는 핀으로 장식하는 등 인간이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견뎌내는 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살을 찢어가며 구도를 하던 요가수행자들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물론 일반 관객이 경험한 것은 그런 구도적인 측면이 아니라 ‘고통의 목격’, 혹은 ‘고통의 간접체험’이 주는 극도의 자극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 쇼는 젊은 미국 관객들을 중심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세계 공연도 여러 차례 성공적으로 치러낸 바 있다(한국에는 심의 문제로 들어오지 못했다).
세기가 바뀌고, 이러한 고통의 기행(奇行)은 MTV를 통해 대중과 만나게 된다. 2002년부터 미국에 방영된 ‘재캐스(Jackass)’는 MTV가 자랑하는 수많은 리얼리티 쇼 중 하나다. 제목인 ‘재캐스(멍청이)’답게, 그야말로 고정 패널들이 일상생활을 무대로 무모하고 멍청한 짓을 벌이는 것을 보여준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일부러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기도 하고, 자기 몸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팬티만 입고 춤을 추기도 하는 등 자기학대를 감행하는 재캐스의 출연자들은 엑스트림 스포츠와 스트리트 스턴트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다. 이 쇼가 유명해지면서 2002년에는 극장용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TV 방영분보다 훨씬 더 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극장판’은 우리나라에서 개봉되기도 했다. 위생용품 가게에 전시되어 있는 변기에 대변을 보고 온다든지, 고환에 전기충격기를 연결한다든지, 오줌범벅이 된 눈을 먹는다든지 하는 충격적인 내용 때문에 국내 상영은 심야상영으로 제한되었기에 개봉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2004년 봄, 유니버설 코리아에서 이 영화의 한국판 DVD가 출시되었을 때는 공개 축하파티가 열릴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한국 관객을 만나게 된 해외산 ‘자학 페스티벌’은 재캐스 외에도 또 있다. 2004년 6월말에 한국을 찾은 ‘도쿄쇼크보이스(Tokyo Shock Boys 일본명: 전격네트워크)’라는 일본의 퍼포먼스 그룹 역시 위의 팀들에게 뒤지지 않는 엄청난 엽기쇼를 무대에서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살벌하게 가시가 돋은 선인장을 팬티 뒤에 끼우고 엉덩이로 부러뜨린다든지, 끓는 파라핀 통에 얼굴을 집어넣었다 찬물에 담가서 즉석 양초가면을 만든다든지, 주방세제를 청량음료처럼 들이키고 드라이아이스를 씹어 먹는가 하면, 입안에서 화약을 터뜨리고, 금속절삭기에서 튀어나오는 불꽃에 얼굴을 들이대고 담뱃불을 붙이는 등의,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짓을 태연하게 해내는 이들의 공연을 보고 있자면 놀라움을 넘어서 안쓰러움과 존경이 뒤섞인 묘한 감정까지 우러난다.
신세대 마술사, 혹은 거리의 마술사로 잘 알려진 데이빗 블레인(David Blaine) 역시 이러한 ‘자학’을 자신의 레퍼토리에 도입하고 있다. 원래 길거리를 걸으며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동전 물어뜯기나 신기한 카드마술을 공연하는 것으로 유명해진 블레인은 1999년 그의 관심을 ‘길거리 마술’에서 후디니(Harry Houdini, 1874-1926)3)스타일의 차력 쪽으로 옮겼다. ‘Buried Alive’라는 공연에서 그는 2미터 아래의 땅속에 스스로를 매장시키고 일주일간 하루 물 한 모금으로 버티는 기행을 보였다. 그가 들어가 있던 강화유리관 위에는 4,000파운드의 물이 들어 있는 강화유리탱크가 있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 이듬해 11월, 블레인은 이번엔 바지 한 벌만 걸치고 맨해튼의 타임즈 스퀘어에 설치된 6톤짜리 얼음덩어리 안에 자신을 가두고 60여 시간을 버티더니, 2003년에는 런던 템즈강 위에 크레인으로 매달린 유리상자에 자신을 가두고 44일간 단식을 하는, 그야말로 초인적인 ‘고행’을 해내는 데 성공한다. 아무래도 블레인에겐 자유의 여신상을 없애는 정도는 시시해 보였음에 틀림없다.

‘No Emotion, Only Entertainment’
혹자는 이러한 공연에 대해 ‘자극을 추구하는 지난 세기말의 정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류문명의 오점’이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남의 고통을 목격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역사는 희랍의 극장문화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이 심적 고통이든 육체적 고통이든, 가학이란 어쩌면 공연문화의 본질일 수도 있다. 찰리 채플린(Charles S. Chaplin)과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이 넘어지고 두드려 맞는 슬랩스틱으로 20세기의 초·중반을 수놓았고, 톰과 제리 같은 만화의 주인공들은 폭탄과 모루로 서로를 괴롭히며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줬다. 연예인들이 얼굴에 물대포를 맞고, 겁에 질려 공원 놀이기구를 타는 우리나라의 주말 오후 TV프로그램들은 이런 ‘폭력의 관음’이 우리와 얼마나 가까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공연에 대해 지나치게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요즘 인간들 참으로 잔인하다’는 식의, 되도 않는 회의를 품는 것은 윤리적 허영심 이외에는 아무 것도 채울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No Emotion, Only Entertainment’라는 도쿄쇼크보이스의 모토처럼 가끔은 ‘그저 즐기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 최소한 그것이 무대 위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그들에 대한 예의임에는 틀림없으니까…


1) 딸기맛 나는 현탁제(懸濁劑) 위장약
2) 고추로 양념한 멕시코 요리의 일종
3) 헝가리 출신의 전설적인 탈출 마법사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