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1-02 : Culture Club - '웹상에서의 '탈권력 실험',블로그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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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상에서의 ‘탈권력 실험’, 블로그
 
 
블로그
정 성 욱 대리 | 영상사업팀
swchung@lgad.lg.co.kr



“In the future everybody will be famous for 15 minutes.
(미래에는, 모든 사람들이 15분 동안은 유명해질 것이다.)” -앤디 워홀(Andy Warhol)-

아마도 어떤 분들은 이 말을 ‘15분 안에 유명해진다’라고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사실은 그건 모 평론가의 잘못된 번역과 전치사에 약한 우리나라 영어교육에 기인한 와전이다. ‘(with)in 15 minutes’가 아니라 ‘for’니까 말이다.
워홀이 이 말을 한 후 지난 35년간, 마치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매스미디어는 변혁을 이끌어왔다. 뉴스에서 시작된 ‘길거리 인터뷰’는 TV의 여러 프로그램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척 배리스(Chuck Barris) 같은 선구자(?)들은 망신 주는 것을 목적으로 일반인들을 TV에 출연시키기 시작했는데, 이 쇼들은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오프라’나 ‘도나휴’ 같은 그나마 점잖은 프로그램부터 <제리 스프링어 쇼>나 <헤랄도> 같은 센세이션 지향의 토크쇼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태어나 인기를 얻었다. 거기에 90년대 MTV의 악명 높은 <Real World>로부터 시작된, <Survivor>나 <Temptation Island> 같은 ‘실제상황(reality) TV’의 기세는 이제 바람피우는 애인을 TV카메라가 덮치게 하는 <Cheaters>라는 극악무도한 프로그램으로까지 진화해버렸다. 그러므로 어느 순간 TV카메라가 당신을 기습하면? “웃어라. 당신의 15분은 그렇게 찾아오는 거니까”.
그렇다. 워홀이 ‘15분 이야기’를 했을 때는 사실 이런 식의 TV의 ‘참여와 개방’을 둘러싼 종적, 횡적 확장과 변이에 대한 예측이었을 것이다(혹은 약에 반쯤 취한 헛소리였든지). 그런데 90년대 초반, 매스미디어 자체의 지축이 통째로 흔들리는 변화가 발생한다. 바로 인터넷의 출현이다. 그리고 그 변화로 인해 워홀의 ‘15분 이야기’는 워홀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더 큰소리로 ‘진실의 종’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출현’이 지니는 여러 특징 중에서도 ‘접근 용이한 권력’이라는 점은 기존의 어떤 미디어에도 없었던 것이다. 기존 미디어에서 메시지의 파급력 혹은 권력은 돈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고, 덕분에 힘과 돈이 고이게 마련인 자본주의 지형에서 그 힘은 기득권이 되어 일부의 전유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반면 인터넷은 그야말로 자신의 능력 여하에 따라서 노출이나 파급, 즉 메시지의 권위가 결정된다.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힘’이 비교적 평등하게 주어지는, 이런 매우 ‘사회주의적’인 미디어의 출현에 기존의 미디어는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아직도 인터넷과 ‘길고 긴 싸움’이나 ‘겉으로 만의 타협’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개인적 일상으로 형성하는 ‘현대적 유대’

이번에 이야기하려는 블로그도 인터넷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많은 방법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블로그(blog)라 함은 인터넷을 의미하는 ‘Web’과 ‘기록·일기·저널’을 의미하는 ‘log’가 합쳐진 조어다(앞의 we-는 그냥 빠졌다고 보면 된다). 블로그에서는 마치 일기장처럼 그냥 끄적거릴 수도 있고, 사진을 붙일 수도 있다. 인터넷이라는 특성상 당연히 다른 사용자들과의 소통도 가능하다는 점은 일반 일기와는 다른 점이자, 블로그라는 미디어의 매력 중 하나다. 그러니까 ‘남들이 평을 달아주는 공개일기’쯤 되는 셈이랄까.
블로그의 출현은 ‘접근 용이한 권력’ 혹은 ‘탈권력적 권위’라는 인터넷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인터넷이란 윤전기가 없어도, 방송설비가 없어도 자신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노출시킬 수 있는 공간이긴 하지만 여기에도 기술의 장벽은 존재한다. 자신만의 ‘홈페이지’를 구축한다는 것은 관련 지식이 확실히 필요한 일이고, 여기에 미학적으로 탁월해지기까지 하려면 관련 소양까지 들먹여야 한다. 거기에 여러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방문하게 하기 위해서는 컨텐츠라는 측면까지 생각해줘야 한다.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인터넷이라지만, 사실 홈페이지를 유지한다는 것이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블로그는 홈페이지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이런 장벽을 최소화시킨다. 서비스 제공자는 그냥 개인에게 그 사람만이 쓸 수 있고 공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게시판(web board)을 제공한다.
물론 스크래치부터 만들어나가는 홈페이지에 비하면 개인만의 개성을 드러낼 여지가 적어 보이기 때문에, 초창기에 개인에게 쉽게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게 도와줬던 여러 웹 솔루션과 그다지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범용적이고 일반적인 틀은 단지 그 틀을 꾸며나가는 이들의 개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조연들에 지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서로 같은 디자인들 때문에 오히려 안의 내용들이 더욱 차이가 나 보인다는 이야기다.
어떤 사람들은 육아일기를 여기에 올린다. 아이가 커가는 매일의 모습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고 그날마다의 감상 혹은 성장 상황을 중계하듯 적어 놓아 다른 사람들이 보게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애완동물에 대해서 올리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빼어난 용모를 자랑하며 아이돌 행세를 하기도 한다. 요리를 배우는 어떤 사람은 자신이 만든 요리를 찍어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나눈다. 또 수집가들은 자신의 수집품을 자랑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블로그의 컨텐츠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이라는 말이다.
유명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팬페이지나 특정 취미를 다루는 동호회(혹은 카페)와는 달리 블로그의 컨텐츠는 뭔가 같이 나누고 싶어서 밖에서 끌어온 이야기보다는 나누든 말든 상관없는,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렇게 블로그를 통해 일상을 나누는 모습은 사뭇 예전의 가까운 이웃들의 유대와도 흡사해 보인다. 설령 얼굴을 맞대지 않았더라도, 감기에 걸려 눈이 빨개져 콧물을 흘리고 있는 아이의 사진을 올리면 거기에 쾌유를 기원하는 댓글을 달아주곤 하는 모습이나, “머리 새로 했어요”라면서 자신의 사진을 찍어 올리면 “지난 번 머리가 훨씬 좋았어요”라며 애정 어린 평을 해주는 모습은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는 감정적 거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사실 블로그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한 가지뿐이다. ‘백독불여일행(百讀不如一行)’, 백 번 듣느니 한번 해보는 게 낫다는 이야기다. 이 말은 사실 모든 문화현상에 해당되는 말이기는 하지만, 블로그는 실제로 체험해 보지 않고는 모를 구석도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컴퓨터만 다룰 수 있다면 블로그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지금 당장 하나를 만들어 자신의 일상을 남들과 나누면서 새로운 방식의 유대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블로그 만드는 법: 주요 검색엔진에서 ‘블로그’라고 쳐보세요.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