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1-02 : Global Report - 영국 / 보딩톤 맥주 광고 캠페인의 영욕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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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The Cream of Manchester’ 캠페인에서 쇠락의 길까지
 
 
영국 - 보딩톤 맥주 광고 캠페인의 영욕
이 대 의 | University of Lancaster
석사과정
daram1@hotmail.com
 
‘영국의 문화’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펍(Pub) 문화’를 떠올린다.
익히 알고 있듯, 펍은 영국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담긴 곳이라 할만큼 친근하다. 일과가 끝낸 남자들이 펍에서 어울려 맥주 한잔을 들이키며 하루 일과와 축구 이야기를 나누는 건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영국 사람들은 단지 시설만으로 그 펍의 명성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정말 전통 있는 펍들은 몇 백 년이 흘러도 그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꾸준히 단골손님들이 찾아오게끔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에는 매년 책으로 출간되는 펍 랭킹까지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 랭킹을 매기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가 바로 ‘맥주 맛’이다. 맥주 배럴에서 연결되는 파이프라인의 신선도까지 체크하면서 따질 정도라면, 맥주가 영국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맥주회사가 펍을 자사의 브랜드 마케팅이나 광고의 배경으로 즐겨 이용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에 이번에는 영국 북서부 맨체스터(Manchester)에서 1700년대 후반부터 맥주 주조를 시작한 ‘보딩톤(Boddingtons)’이라는 브랜드의 광고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맥주’와 ‘크림’의 절묘한 앙상블

3년 전, 필자는 영국 내 알코올 음료시장에 대한 마케팅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마케팅 리서치를 하기 위해서는 설문조사 자료 정리와 함께 브랜드 이미지 조사 자료를 참고해야 했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이 하나 있었다. ‘리커트척도(likert scale)’ 질문 항목 중에 ‘각각의 맥주 브랜드가 북부 이미지(northern image)나 남부 이미지(southern image)를 얼마나 지니고 있느냐’ 하는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맥주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이미지 조사를 하는데 어떻게 ‘남부 이미지냐 북부 이미지냐’ 하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나라의 경우 맥주가 동일한 공장에서 주조되어 전국적으로 배달되기 때문에 이러한 지역 이미지가 별 의미가 없지만, 영국에서는 그것이 브랜드 이미지를 결정하는 데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보딩톤에 다가가 보자. 보딩톤의 역사는 산업혁명 당시 영국 북서부 맨체스터 지방의 급속한 발전과 그 맥을 같이한다. 1832년 헨리 보딩톤(Henry Boddington)은 설립된 지 50년이 조금 더 된 한 주조공장을 우연히 방문하고 그곳에서 특별한 영감을 받는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1853년, 그는 ‘Strangeways’라는 이름의 이 공장을 인수하여 본격적인 맥주 생산에 돌입하고, 1886년 회사 이름을 ‘보딩톤 브로이(Boddingtons Breweries)’로 바꾸고, 맨체스터 내의 가장 큰 맥주 생산공장으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맥주 배럴이 그려진 보딩톤의 로고도 그 당시에 만들어진 것이니, 로고의 역사만도 100년이 훨씬 넘는 셈이다. 보딩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영국 북서부에위치한 맨체스터 태생의 맥주라는 점. 따라서 보딩톤의 광고 캠페인을 담당한 BBH (Bartle Bogle Hegarty)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 역시 맨체스터를 기반으로 한 북부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전국구 브랜드’로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전국구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맨체스터를 기반으로 한 북부 이미지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 그렇다고 이 로컬 이미지를 무작정 버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특히 그 동안 여러 로컬 브랜드들이 전국적인 마켓으로 런칭을 하다가 자칫 그 지방색을 잃어버리면서 실패했던 경우가 비일비재하여 BBH로서는 더욱 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당시 BBH의 CEO였던 마틴 스미스(Martin Smith)는 “우리의 광고 전략은 그 동안 보딩톤이 쌓아온 전통을 유지하고 정통성을 지키며, 동시에 전국의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전략이 밑받침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광고주와 BBH 모두 맨체스터의 펍들에 대한 마케팅 리서치부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어떤 소비자들이 이 오래된 북부 스타일의 맥주 브랜드를 좋아하는지부터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러던 중 보딩톤 같은 북부 스타일의 맥주는 두꺼운 거품이 마치 크림처럼 부드럽게 일어나는 반면, 남부 스타일은 거품이 얇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울러 남부의 맥주 이미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품이 얇은 걸 즐긴다는 사실도 찾아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고무적인 사실은 보딩톤은 생맥주가 아닌 캔으로 출시하더라도 이 크림 같은 거품을 많이 일게 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 결과에 따라 광고 캠페인의 메인 컨셉트는 ‘크리미니스(creaminess)’로 정해지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잊은 점이 있었다. 다른 맥주회사들도 똑같은 크리미 맥주를 생산할 수 있었기에, ‘크림 같은 거품’이라는 것이 결코 보딩톤만의 경쟁우위 요소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마침 다른 경쟁사들은 제품 자체의 컨셉트를 무시하고, 단지 남성주의의 섹슈얼 이미지나 축구 같은 것을 앞세운 광고전략을 구사하는 상황. BBH는 바로 이 점을 중시하여 이윽고 ‘owning creaminess’로 전개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린다.

비주얼과 말장난(?) 놀이

이렇듯 맥주 자체의 컨셉트를 중심으로 하는 캠페인 전략을 수립한 BBH는 실제 광고 제작에 있어서도 경쟁사들이 사용해왔던 기존 이미지와는 달리 ‘크림’이라는 단어를 여러 모양과 형태로 바꾸어서 비주얼로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단순히 ‘크리미’라는 의미만으로 사람들에게 충분히 어필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었다.
이에 BBH의 크리에이티브팀은 재빨리 크림의 이미지와 연결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찾기에 골몰했는데…… 그 최종작품이 바로 영국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긋는 “The Cream of Manchester”라는 간결한 카피를 앞세운 작품. ‘크리미’라는 제품 컨셉트에 충실하면서도 제품이 맨체스터로부터 왔다는 것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한 카피였던 것이다.
그러나 BBH는 아직까지도 ‘크리미니스’가 단지 문장으로서 의미를 전달할 뿐 비주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다시 아이디어를 짜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맥주를 아이스크림 콘으로 비유하며 아이스크림을 크림으로 비유하거나, 또는 이를 면도용 크림으로 바꾸는 것과 같은 아이디어들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BBH의 CEO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 광고시안들을 보았을 때 이런 크리에이티브들은 비주얼적인 말장난에 불과하고, 솔직히 그 맛을 연상시켜보면 역겨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누가 딸기 위에 얹은 크림 같은 맥주를 먹고자 하겠는가? 또 소비자들에게 쉐이빙 크림으로서의 맥주를 보여준다면, 거기서 비누거품 같은 맛을 연상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BBH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존 헤가티(John Hegarty)의 의견은 달랐다. 그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마도 소비자들은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고, 단지 이를 광고 속의 하나의 조그마한 게임 정도로 받아들일 것” 이라고 주장했는데, 광고 결과는 그의 생각에 가까운 것이었다.
‘마치 새로운 비주얼 언어를 창조한 것과 같다’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이었는데, 무엇보다 딱딱한 사진이나 일러스트레이션이 아닌 아주 고급스럽고 사실적인 이미지를 사용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곁들여졌다. 특히 검정색 바탕의 배경 화면은 더욱 드라마틱한 이미지를 연출하기에 최상의 조건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크림’을 빼놓고 말했더니…

그러나 대략 작업이 끝나갈 무렵 비주얼이 광고적이라기보다는 흡사 길거리의 포스터 같은 느낌이 든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또다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많은 아이디어 도출됐는데, 그 중 하나가 매주 일요일마다 발간되는 각 신문의 특보판 뒷 표지에 계속 광고를 실어, 매주 다른 이미지를 보이게 하자는 의견이었다. 그러면 독자들은 부엌 식탁이나 카페에서 신문을 보며 마치 퍼즐 맞추기 같은 놀이를 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 결과 1992년, ‘Cream of Manchester’ 캠페인이 시작된 지 18개월 만에 보딩톤은 ‘지방 맥주’의 이미지를 벗고 드디어 영국의 톱 맥주 브랜드로 자리잡게 되었다. 더 나아가 보딩톤 캠페인은 하나의 대중 예술문화로까지 받아들여졌는데, 광고 이미지 속에 나오는 크림들은 아직까지도 그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소비자들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미지의 과제로 남겨지고 있을 정도다.
그 후 보딩톤은 신문 지면 속의 정지된 이미지에서 탈피, 익히 볼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방식으로 표현한 TV광고를 1993년에 첫 방영했다. 글래머러스한 여성 모델이 보딩톤 맥주 위에 있는 크림을 찍어서 얼굴에 바른다. 그리고 광고 끝 부분에서는 턱시도를 입은 남편이 그녀를 살포시 껴안으면서 ‘코크니(cockney; 런던 사투리의 일종) 억양으로 “By’eck you smell so gorgeous”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정서로 보면 전혀 코믹한 상황이 아니지만, 영국 사람들은 코크니 액센트로 이 맨체스터 맥주를 감탄하는 대사를 들으면서 결코 웃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데….

물론 보딩톤은 TV광고 캠페인에서도 고유의 크리미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갔다. 1994년에 선보인 ‘선크림(sun cream)’편에서 여성 모델이 보딩톤 맥주 위에 있는 크림을 찍어 바르며, 마치 자외선 차단(선블록) 크림처럼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그러한 맥락의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그 이후에 보딩톤은 ‘그레이엄(Graham)’이라는 젖소 만화 캐릭터를 소재로 “It’s a bit gorgeous”라는 새로운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사우스파크(south park> 같은 성인용 애니메이션처럼, 25세~35세 사이의 남성 맥주 소비자를 대상으로 섹슈얼 스토리로 전개되었다. 이를 통해 과거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Cream of Manchester’ 캠페인에서 벗어나 리포지셔닝을 꾀한 것인데, 이는 ‘스미노프 아이스(smirnoff ice) 등과 같은 젊은층대상의 알코올 드링크류의 등장이 보딩톤에게도 위험 요소로 대두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보딩톤의 시장 점유율은 점차 하락했고, ‘크리미니스’라는 고유의 테마를 버린 보딩톤 캠페인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잇따라 제기되었다. 물론 ‘그라함’이라는 젖소 만화 캐릭터를 이용한 접근법이 30세 전후의 남성층에게 효과가 있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동안 보딩톤의 성장 동력이 되었던 크림이라는 컨셉트, 그리고 브랜드가 가진 강력한 고유 이미지 자체를 무시해서는 곤란한 것이 아닌가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90년대 후반까지 보딩톤의 캠페인은 그대로 영국 맥주업계의 신화적 전설이었다. 84%의 소비자들이 로고나 브랜드 이름을 보지 않고도 단숨에 보딩톤 광고임을 알 수 있었다는 조사 결과는 보딩톤의 인지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말해주고도 남는다. 이렇듯 90년대 영국 광고계를 빛냈던 보딩톤 캠페인이지만, 그 이후 점차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크림’이라는 컨셉트 이후 시대의 흐름과 소비자의 변화를 따라가는 데 필요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라는 분석을 남기면서.

종종 크리에이티브팀에서는 새로운 소재나 기법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앱솔루트 보드카(Absoult Vodka) 캠페인처럼 일관된 크리에이티브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는 또 다른 케이스가 바로 보딩톤이 아닌가 싶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