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끝이 시큰해지는 걸 보니, 바야흐로 캠핑의 계절이 왔습니다.
캠핑은 참 묘한 취미입니다. 편안한 집을 두고 굳이 자연으로 나가 잠을 자고, 짐을 줄이기 위해 비싼 장비를 사고, 장비를 몇 시간씩 펼치고 정리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번거로움을 기꺼이 즐기는, 조금 비합리적인 유희입니다. 어쩌면 그 모든 번거로움을 감수할 만큼, 자연 속에 머무는 감각이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런 걸 낭만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여기, 그 낭만에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두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산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자신에게 필요한 장비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까지 만들어낸 사람들입니다.
01. 몽벨 창업자 다쓰노 이사무 | 경량의 미학 - 화장지 심지까지 빼고 산에 올랐다.

“불필요한 것은 1그램도 가져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몽벨 창업자 다쓰노 이사무가 1969년 당시 기준 세계 최연소로 스위스 아이거 북벽 등반을 회상하며 남긴 말입니다. 그는 장비의 무게를 줄이려고 화장지의 종이 심지까지 제거할 만큼 철저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가벼워야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산에서 속도는 곧 안전과 직결되거든요.
오스트리아 등반가 하인리히 하러의 책 ‘하얀거미’를 읽고 등반가를 꿈꾸는 소년은 고등학교 16세부터 암벽등반에 빠져들었던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등산용품점에서 일을 합니다. 그리고 21살에 아이거 북벽과 마터호른 등반을 경험하죠. 여기서 싼 장갑 탓에 심한 동상을 입고 장비의 중요성을 실감합니다.
그는 1975년 오사카에서 두 동료와 함께 몽벨을 설립합니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여덟 살이었습니다. 출발점은 단순했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만든다’ 자신들의 등반 경험을 바탕으로 ‘진짜 필요한’ 아웃도어 장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그램의 헛된 무게도 용납하지 않는다.
몽벨에는 두 개의 명제가 있습니다. 'Light & Fast(가볍고 빠르게)'와 'Function is Beauty(기능이 곧 아름다움)' 그저 멋진 브랜드 언어보다는 산에서 직접 체득한 생존의 원칙이자 몽벨을 지탱하는 정신에 가깝습니다.
몽벨의 초기 대표 제품은 침낭이었습니다. 1976년 개발한 침낭에는 듀폰의 첨단 충전재 '데이크론 홀로필'이 적용됩니다. 섬유 내부에 공기를 머금는 중공 구조 덕분에 적은 충전재로도 보온성을 확보할 수 있었죠. 몽벨은 이렇게 제품의 목적에 가장 잘 맞는 첨단 소재를 찾고, 이를 실제 장비에 적용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기존 소재를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기술과 구조를 개발하며 제품의 성능을 끌어올립니다. 뛰어난 방수·투습 성능을 가진 고어텍스를 의류에 적용하는 한편, 자체 방수·투습 소재인 드라이텍(DRY-TEC)도 개발했습니다. 이미 좋은 소재가 있더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기능과 무게, 가격을 구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찾기도 합니다.

이러한 집요함은 오늘날 몽벨의 대표적인 초경량 다운재킷에서도 이어집니다. 몽벨의 패딩을 살펴보면 유독 눈에 들어오는 숫자들이 있습니다. 다운이 얼마나 풍성하게 부풀어 오르는지 복원력을 나타내는 필파워(Fill Power)와 제품의 무게를 나타내는 그램(g)입니다. 필파워를 강조하는 이유는 다운의 복원력이 높을수록 공기를 많이 가둬 체온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적은 양의 솜털로도 높은 보온성을 낼 수 있거든요.
대표 제품 '플라즈마 1000'은 1000필파워 다운과 무게 130g의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초경량 제품이죠. 비슷해 보이는 패딩도 이 숫자를 비교하다 보면 제품마다 다른 기술과 설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몇 그램의 차이지만, 몽벨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그 몇 그램을 비교하는 맛이 있거든요.
몽벨의 제품은 대체로 화려하지 않습니다. 대신 실제로 필요한 기능을 집요하게 고민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기능이 곧 아름다움'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무엇이 팔릴지가 아니라 ‘무엇이 필요한가’로 시작합니다.
- 다쓰노 이사무, 오사카관광국 인터뷰 중
몽벨의 개발 철학이 잘 드러나는 또 다른 제품은 태양광 충전기인데요. 다쓰노는 티베트와 네팔에서 본인이 직접 겪은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태양광 충전기를 만들려고 결심합니다. 사업성을 따져보니 연간 판매량은 100개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최소 생산 수량은 2,000개였습니다. 모두 판매하는 데 20년이 걸릴 수도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다쓰노는 개발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만드는 것이 메이커로서의 묘미입니다. 상품의 가치는 팔리는 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만드는 것에 의해, 살아남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 제조의 원점입니다".
– 오사카 관광국의 다쓰노 인터뷰
그래서 1년에 수회 열리는 몽벨의 제품 기획회의에는 기획부서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의 직원들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 직원 대부분이 아웃도어 애호가라 각자의 경험에서 비롯된 ‘갖고 싶은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을테니까요.

02. 파타고니아 | 창업자 이본 쉬나드
오늘날 파타고니아는 친환경 브랜드의 대명사입니다. 창업자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는 사업가보다 애초에 환경운동가 혹은 암벽등반가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구글에 그를 검색하면 미국 환경운동가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14살의 쉬나드는 캘리포니아 남부의 매사냥 동호회 회원이었습니다. 매 둥지를 찾아다니는 걸 좋아했는데, 문제는 매들이 절벽에 둥지를 짓는 것이었죠. 동호회 리더에게 절벽을 로프로 내려가는 방법인 라펠링을 배우는 계가로 암벽 등반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 시기 미국 요세미티에는 독특한 암벽등반 문화가 형성됩니다. 새로운 등반 루트를 개척하고, 한계를 시험하고,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이었죠. 쉬나드에게 암벽 등반은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어떻게 시간을 쓰고, 어떤 삶을 살지 결정하는 기준이었습니다.
1957년, 그는 중고 화덕과 모루, 망치를 구입해 독학으로 대장기술을 익혀 직접 등반 장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몽벨을 다쓰노 이사무와 일치합니다. 자신과 친구들이 사용할 더 좋은 암벽등반 장비가 필요했기 때문이죠. 대표적인 제품이 바위틈에 박아 등반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금속 장비 '피톤(Piton)'이었습니다. 쉬나드가 만든 피톤은 튼튼하고 재사용하기 좋아 인기를 얻었고, 이것은 '쉬나드 이큅먼트(Chouinard Equipment)'라는 파타고니아의 전신인 장비업체를 탄생시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등반가들이 피톤을 반복해서 박고 빼면서 암벽이 훼손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자연을 자신이 만든 제품이 망가뜨리고 있었던 거죠. 쉬나드는 주력 제품이던 피톤 사업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바위에 박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는 알루미늄 초크(Chock)를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1972년 카탈로그에는 무려 14쪽에 걸쳐 새로운 장비의 사용법을 설명했습니다. 가장 잘 팔리던 제품을 그만 쓰라고 고객에게 권한 셈이죠.
놀랍게도 이 선택은 새로운 시장을 열었습니다. 초크는 생산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 빠르게 팔려나갔고, 암벽의 훼손을 줄이는 등반 방식도 확산됐습니다.
버려진 페트병으로 만든 플리스
자연을 지키겠다는 고민은 의류 사업에서도 이어졌습니다.
1993년, 파타고니아는 아웃도어 의류업체 최초로 버려진 플라스틱 음료수병을 재활용한 폴리에스터 플리스를 선보였습니다. 지금은 흔한 재활용 소재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초기 재활용 플리스의 색깔입니다. 당시 기술로는 원료가 된 음료수병의 색을 완전히 제거하기 어려워 제품이 초록빛을 띠었습니다. 이른바 'Soda-bottle Green', 말 그대로 음료수병 녹색이었습니다. 소재를 개발했던 폴라텍에도 당시 개발된 플리스를 Soda-bottle Green 색상이라고 기록하고 있죠.
1993년 폐플라스틱병을 플리스로 재탄생시킨 파타고니아의 시도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파타고니아의 대표 제품인 신칠라 스냅티는 원단에 사용되는 폴리에스터의 95~100%를 재활용 소재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업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2022년, 이본 쉬나드는 또 한 번 독특한 결정을 내립니다. 그 결정을 위해 이본 쉬나드가 써 내려간 편지의 첫 문장이 바로 사업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는 말인데요. 우연 같았던 성공에 대한 말이라면 수준 높은 거드름이겠으나 그는 파타고니아의 소유권 이전을 발표합니다.
(전문은 https://www.patagonia.com/ownership/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밖에 없습니다”
이본 쉬나드는 전체 주식을 의결권 주식 2%와 비의결권 주식 98%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파타고니아의 의결권 주식은 기업의 철학을 보호하는 '파타고니아 퍼포스 트러스트(Patagonia Purpose Trust)'에, 비의결권 주식은 환경보호 활동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홀드패스트 컬렉티브(Holdfast Collective)'에 이전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회사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파타고니아 퍼포스 트러스트에, 회사가 벌어들인 돈, 배당금을 받을 비중 98%는 환경 단체 홀드페스트 컬렉티브가 갖도록 분리한 것입니다. 이렇게 쓰면 2%의 지분으로 기업의 경영 방향은 100% 통제할 수 있고, 98%의 지분을 통해 발생하는 이익은 환경보호에 활용되는 구조가 됩니다.
환경을 위해 노력해도 제품을 생산하는 이상 자연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이 성장할수록 지켜야 할 가치와 사업적 책임도 커집니다. 전 세계에 있는 파타고니아의 직원들의 삶도 환경만큼 중요한 것이니까요. 그가 내놓은 해법은 회사의 소유 구조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창업자가 세상을 떠나거나, 자녀가 회사를 물려받거나, 새로운 투자자가 들어오면 기업의 방향이 바뀌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창업자의 개인적인 신념을 회사의 지배구조를 환경 철학에 맞춰 바꾼 것입니다.
파타고니아를 만들고, 소유권을 이전하기까지 모든 이본 쉬나드의 선택들을 돌아보면 환경보호는 어느 날 만들어낸 그럴듯한 마케팅 문구도, 보여주기식의 ESG도 아니었습니다. 파타고니아가 만들어온 것은 옷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믿는 방식으로 사업을 해보려는 오랜 시도이자, 사업이 목표가 아닌 수단이 될 수 있는 증명을 해보인 게 아닐까요.

Outro. 괴짜들이 만든 진심
두 브랜드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음에도 두 회사는 모두 비상장기업입니다. 몽벨은 창업자의 철학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경영을 이어가고 있고, 파타고니아는 아예 소유 구조를 바꿔 기업의 목적을 지키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는 많지만, 사업이 커진 뒤에도 그 시작의 이유를 지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오래 좋아한다는 건 생각보다 대단한 일입니다. 더 잘하고 싶어 끊임없이 고민하고, 때로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선택도 기꺼이 하게 되니까요.
몽벨과 파타고니아는 이제 너무나 유명하고 익숙한 브랜드지만 그 안에 여전히 창업자의 별난 고집과 낭만이 남아 있기에, 이 오래된 브랜드들의 다음 행보가 계속 궁금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Snack Story. 알고 보니, 이 산악인 둘은 서로 아는 사이였습니다.

1980년 독일 뮌헨의 한 파티. 일본인 다쓰노 이사무에게 누군가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바로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였습니다. 산악인으로서 비슷한 철학을 공유했던 두 사람은 금세 가까워졌고, 1982년에는 미국에서 함께 카약을 타기도 했습니다. 이후 두 회사는 기술·판매 제휴를 맺어 몽벨이 개발한 방수 소재를 파타고니아 제품에 적용하고, 몽벨은 파타고니아 제품을 일본에 판매했습니다. 제휴는 사업적으로도 성공적이었습니다. 당시 몽벨 전체 매출의 약 25%를 파타고니아 제품 판매가 차지할 정도였으니까요.
흥미롭게도 이 인연은 영원한 사업적 동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다쓰노는 다른 브랜드에 매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은 남의 제품을 잘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장비를 직접 만드는 일이었으니까요. 1987년 몽벨은 자체 브랜드에 집중하기 위해 파타고니아와의 제휴를 종료합니다. 함께할 때도, 각자의 길을 선택할 때도, 두 사람의 중심에는 자신이 믿는 방식으로 사업을 하겠다는 철학이 있었습니다.
'애드이야기 > 구태경의 비즈니스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비즈니스 심리학] 감각의 시장 : 쓸모보다 오래 남는 것 (1) | 2026.08.28 |
|---|---|
| [비즈니스 심리학] 불안 경제 : 우리는 무엇을 원해서 무엇이 두려워 돈을 쓸까? (1) | 2026.06.29 |
| [비즈니스 심리학] The AI Paradox : 정답이 흔해지면, 어느새부터 정답은 안멋져. (0) | 2026.04.2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