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심리학] 불안 경제 : 우리는 무엇을 원해서 무엇이 두려워 돈을 쓸까?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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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지 않은 거. 그냥 불안하지만 않으면 돼, 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에서 잘 나가는 영화업계 지인들 사이에서 20년째 영화감독 준비만 하는 주인공 황동만을 답답해하던 형이 윽박지르며 묻습니다.

 

진짜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데뷔야? 성공이야?”

 

주인공 황동만은 흔들리는 감정을 삼키며 몇 초의 침묵 뒤에 말합니다.

 

“불안하지 않은 거. 그냥 불안하지만 않으면 돼, 난” / 출처: JTBC 공식 홈페이지/ 드라마『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우리는 찌질하기만 한 주인공 황동만을 미워하면서도, 곧 내 안의 황동만을 발견합니다. 실제로 우리 역시 성공을 추구하듯 말하지만, 사실은 흔들리지 않는 삶을 더 갈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성공은 확률적으로 거기에 가까운 모습일 뿐이죠. 특히 타인의 삶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고, 경쟁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 같은 투명함으로 불안을 말하는 황동만의 대사는 개인의 고백처럼 들리지만, 사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이고, 모두의 독백이자, 이 시대의 집단적 심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안경제 #1] 벼락부자를 꿈꾸기보다 벼락거지를 두려워하는 마음에 대하여

 

나락보다 무서운 FOMO’

 

최근 코스피가 연일 치솟던 어느 날의 기사 헤드라인이었습니다. FOMO(Fear of Missing Out)는 원래 유행이나 관계에서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의미했는데 최근에는 투자시장의 영광에서 소외되는 두려움을 뜻하는 대표적인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한때 투자자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손실이었습니다. 주가가 떨어질까 봐, 원금을 잃을까 봐 시장을 두려워했다면 지금 투자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면 분위기가 조금 다릅니다.

 

"지금이라도 들어가야 하나?", "다들 돈 버는데 나만 없는 거 아니야?", "더 들어가야 하나?"

 

출처: AI 자체 제작 이미지

 

흥미로운 점은 질문 어디에도 손실에 대한 걱정이 없습니다. 주가가 하락할까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주가가 더 오를까 불안해합니다. 최근 국내 증시의 개인투자자 자금은 AI 반도체 관련 종목과 ETF로 집중되고 있죠. AI가 앞으로 주도할 산업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만 투자자들의 행동은 산업의 기대 수준에 대한 확신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기업의 실적과 기술의 분석보다 주변사람들의 수익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2020년 동학개미와 비교되는 2026년 AI 랠리의 매수 패턴

 

구분 2020 코로나 불장 2026 AI 랠리
신용거래융자 약 10조 > 25조원 약 38조원 (역대 최고 수준)
증가 배경 유동성 FOMO AI FOMO
특징 개인투자자 신규 투자 확대 기존 투자자 레버지리 확대
핵심 패턴 폭락장에서 저점 매수
"지금이 바닥 아닐까?"
상승장에서 추가 매수
"지금이라도 들어가야 하나?"
심리의 본질 미래 회복에 대한 베팅 뒤처지지 않기 위한 베팅

 

2020년에도 물론 사람들은 FOMO로 투자했지만 지금의 FOMO는 정교하게 진화한 모양을 보입니다. 빨라진 정보의 속도+ 타인의 수익 노출 + 알고리즘이 증폭시키는 비교 심리가 결합되어 상승 기대가 시장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단기간에 변동폭을 확대시켰습니다. 2026 6월 레버리지 투자라고 말해지는 국내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38조 원 수준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갱신했는데 이는 2020년 코로나 불장 대비 50% 이상 증가한 규모입니다.

 

AI에 투자해서 이득을 보려는 욕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산격차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두려움일지도 모릅니다. 노동소득보다 자산가격이 빠르게 상승하고, AI가 생산성 격차를 확대하며, 실시간 정보 환경이 타인의 성공을 끊임없이 노출시키는 시대가 만들어낸 증폭된 심리입니다.

 

[불안경제 #2] 불황에 ‘작은 사치’ 대신 ‘작은 안전장치’를 사고 싶은 마음에 대하여

 

불황기에 립스틱 효과(Lipstick Effect)는 소비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프레임으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명품과 같은 고가 소비보다 부담이 적은 사치품을 구매하며 심리적 만족을 얻는다는 이론입니다. 001 9·11 테러 이후 경기 침체 국면에서 미국의 립스틱 판매량이 증가하자 당시 에스티로더 회장이었던 Leonard Lauder가 경제 지표로 언급하며 대중화지만, 그 현상은 훨씬 이전부터 관찰되었습니다. 1929년 경제대공황 당시에도 여성들의 고가소비는 줄었지만 립스틱, 파우치 같은 저가화장품 소비는 증가하는 현상이 업계에 보고되었습니다.

 

출처: 실제 기사 기반 AI로 제작한 이미지

 

작은 사치패턴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불황기 소비 패턴이지만, 현재의 불확실성을 대하는 소비의 방향은 조금 달라지고 있습니다. 일회성 도파민을 주는 작은 사치에서 불안한 삶에 작은 확신을 사는 소비 심리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산업으로 영양제와 건강기능식품, 건강검진, 피부과 시술, 운동 프로그램, 자기 계발 서비스, 생성형 AI 구독 서비스 등이 있습니다. 모두 다른 산업이지만 불안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묶입니다. 영양제는 건강에 대한 불안을, 건강검진은 질병에 대한 불안을, 시술은 노화에 대한 불안을, 자기 계발은 경쟁력 상실에 대한 불안을, AI 구독은 생산성 저하와 기술 변화에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을 줄여줍니다.

 

출처: 자체 AI제작 이미지

 

물론 이러한 관리형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을 단순히 불안 심리 하나로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기술의 발전, 평균 수명의 증가, 웰니스 트렌드의 확산, 노동시장의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더욱 흥미로운 변화입니다.

 

무언가를 잃지 않기 위해하는 지출은 더 이상 소비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현재의 즐거움을 위한 소비가 아니라 미래의 손실을 막기 위한 투자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런 지출에는 죄책감이 거의 없습니다. 건강관리, 자산관리, 커리어관리처럼 관리라는 이름으로 붙어 지출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조금 덜 불안한 내일을 위하여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 황동만은 이런 말을 합니다.

 

"불안은 인간의 기본값 아닌가요?"

 

맞는 말입니다. 인간은 원래 불안한 존재였습니다. 미래를 걱정했고, 실패를 두려워했으며, 더 나은 삶을 갈망해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불안 자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The Scream, 1893)> / “뭉크의 절규는 미술사에서 현대인의 불안을 상징하는 대표작으로 해석된다. 이 작품은 인간의 불안이 '시대정신'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근대의 상징적인 이미지다. 이렇듯 불안은 우리곁에 항상 존재해왔다”

 

불안은 늘 존재했지만 지금은 불안을 끊임없이 증폭시키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 줄 무언가를 끊임없이 판매하고 소비하죠. 정보의 상당수도 불안을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손가락 스냅 한 번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뒤처질 수 있다는 신호를 마주합니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는다', 'AI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 '상위 1%만 하고 있던 투자비법.' 같은 썸네일을 앞세운 자기 계발 콘텐츠와 자기 PR과 자랑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한 SNS 경험담, 인증글, 조언은 유익함을 앞세워 나의 불안에도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킵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 최근에 읽게 된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 떠올랐습니다.

 

정확히는 그 책을 집어 들었던 제 선택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먼저 제목을 소비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장은 언제나 사람들의 심리적 결핍을 강력한 원동력으로 사용합니다. 이번 불안 경제에 대한 고찰은 지금 시대를 개탄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경제는 수많은 선택이 쌓여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늘 자신의 선택이 논리적이라고 믿지만, 행동경제학은 감정이 우리의 선택을 움직인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더 나은 선택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욕망을 경계하듯, 불안도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시장이 원하는 소비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선택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에 불안이 내 선택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경제에 균형점을 만드는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구태경의 비즈니스 심리학 2026.06

 

Posted by HSAD공식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