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ro.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를 분명히 하려고 합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시장을 ‘사라지지 않는 아날로그’로 해석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기술의 시대에도 아날로그가 살아남았어!”식의 신구문물의 대결 구도로 바라보면, 앞으로 등장할 현상들은 ‘낡은 것의 뜻밖의 생존’쯤으로 읽힐 테니까요. 그러니 이 글의 중심에 있는 것은 아날로그의 생존이 아니라 ‘인간이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감각’입니다.
[LP의 부활] 재생의 도구에서 감상의 경험으로

LP시장은 두 번에 걸쳐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습니다. 바야흐로 워크맨과 카세트테이프 시대가 쇠퇴의 시작을 알렸고, CD가 음악 소비의 중심이 되면서 산업의 몰락으로 접어듭니다. 2006년 미국 LP의 판매량은 100만 장 아래까지 떨어졌습니다. 1970년대 전성기 시절에는 3억 장은 넘게 팔았으니, 전성기의 99.7%가 사라진 수치입니다. 거의 산업이 소멸 직전까지 간 수준이죠. 음질, 보관, 재생의 편리함 등 모든 측면에서 CD에 밀린 LP는 낡고 불편한 음반일 뿐이었습니다.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던 이 시장이 조금씩 회복세를 찍기 시작합니다. 역설적으로 LP 시장이 다시 커지기 시작한 것은 음악이 음반으로 완전히 벗어나기 시작한 뒤였습니다. 다운로드를 거쳐 스트리밍이 확산되던 2007년부터 반등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렇게 2025년까지 19년 연속 성장했고, 2025년 미국 내 LP 판매량은 4,680만 장에 달합니다. 물론 다시 주류가 될 수는 없지만(2025년 미국 음악 스트리밍 매출은 220억 달러, 한화 약 30조 시장) 사실상 사라졌던 시장이 수십 배 규모로 재건됩니다. 빈티지 취향 아래 조용히 자리를 지킨 마이너 시장이 아닌 사실상 소멸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 시장인 거죠.

CD 시절의 LP는 같은 기능을 더 불편하게 수행하는 저장매체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스트리밍은 저장매체 자체를 없앴습니다. 음악을 소유하지 않아도 모든 곡을 들을 수 있게 되자, LP는 더 이상 편리한 재생 기술과 경쟁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역설적으로 완전한 디지털화가 되고 나니 LP는 문화행위이자 별도의 음악 경험시장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스트리밍이 음악 시장의 저변을 넓히면서 음악을 즐기는 방식도 다양해졌고 LP는 저장매체가 아닌 하나의 음악을 위한 리추얼로서 다시 쓸모를 가지게 됩니다.
LP를 듣는 데는 여전히 손이 갑니다. 앨범을 고르고, 재킷에서 판을 꺼내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내립니다. 한쪽 면이 끝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판도 뒤집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이제 결함이 아니게 됩니다. 한 장의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게 만드는 집중과 감상의 경험만 남습니다.


요즘 가수들은 컬러 바이닐로 한정판 LP를 발매합니다. 음악을 재생하던 매체가 취향과 팬심을 드러내는 소장품이 되기도 하죠. 기술이 기존의 기능을 완벽하게 해결하는 순간, 인간적인 결핍을 중심으로 취향, 정체성, 소유의 시장으로 새롭게 성장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종의 감각 회복에 가깝습니다. 많은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세계에서 나의 감각과 선택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경험. 기능의 결함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세상에 참여하는 방식이기도 했으니까요. 바이닐의 재성장은 ‘아날로그의 귀환’이 아니라 편리함이 밀어낸 감각이 욕망으로 재발견된 것으로 보입니다.
[종이책의 물성] 읽는 책에는 무게의 감각이 있다.
전자책이 등장했을 때, 종이책 시대의 종말, 못해도 쇠퇴에 대한 이야기가 빈번히 언급되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책을 수 권 내려받고, 글자크기까지 조절이 가능하니 효율의 관점에서 종이책은 낡아버린 시대의 산물이 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종이책에는 무게와 부피가 있습니다. 읽은 만큼 페이지가 왼쪽으로 넘어가고, 문장은 어느 페이지의 위쪽이나 아래쪽에 자리합니다. 한 권의 책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읽은 사람의 시간과 범위만큼 책은 말랑해지고 손때가 남습니다.
손에 잡히는 진도, 한정된 범위 안에 머무는 집중, 책마다 묘하게 다른 종이의 냄새, 시간을 들인 만큼 책에 난 흔적들, 종이책은 독서와 함께 존재했던 물성의 감각을 간직합니다. 이렇듯 전자책은 책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지만 ‘독서’의 모든 감각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이책 산업은 독서 시장의 중심에서 밀려난 적도 없습니다. 애초에 기능만으로 정의되지 않는 시장이었기에 기술이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웹툰과 웹소설로 사랑받은 이야기는 단행본과 소장판으로 출간되고, 온라인 캐릭터는 화보집과 아트북이 되어 다시 책장에 꽂힙니다. 디지털 IP는 종이책을 밀어내는 대신, 만지고 펼치고 진열할 수 있는 물성을 얻으며 다시 확장되고 있습니다.
종이책 시장은 기능을 대체하는 것과 경험을 대체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시장입니다. 기술은 대개 기능부터 가져가지만 인간은 기능만 소비하지 않으니까요.

Outro. 쓸모가 빠져나간 뒤에 보이는 것들
기술은 제품에서 가장 먼저 ‘쓸모’를 떼어갑니다. 음악은 음반 없이 흐르고, 문장은 책 없이 읽힙니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필요했던 수많은 과정이 점점 짧아지고, 마침내는 사라집니다.
그리고 기능이 빠져나간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감각들이 있습니다. 앨범을 고르고 판을 뒤집는 시간, 책장을 넘기며 읽은 자리를 기억하는 감각처럼 한때는 기능에 딸려 있던 경험들입니다. 물론 모든 것이 그렇게 남지는 않습니다. 어떤 시장은 그 과정에서 기능을 잃는 순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집니다. 어떤 시장은 남겨진 경험을 중심으로 다시 설계되고, 또 어떤 시장은 기능과 경험이 분리되지 않은 채 자리를 지킵니다. 앞으로 살펴봐야 할 것은 ‘무엇이 살아남을까’보다 기술이 대신한 것과 남겨진 자리에 남을 인간의 감각, 끝내 대신하지 못할 인간의 감각은 무엇인가 일 것입니다.

무용(無用)하다는 것은 쓸모가 없다는 뜻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어떤 목적에도 얽매이지 않는 완전한 자유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쓸모가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행동이 비로소 인간의 선택이 된다는 뜻인지도 모릅니다.
음악을 듣기 위해 반드시 판을 뒤집을 필요가 없고, 글을 읽기 위해 꼭 종이를 넘길 필요도 없는 시대에 사람은 다시 그것을 선택합니다. 필요해서 하던 행동을 필요가 없어진 뒤에도 계속한다면, 우리가 원했던 것은 결과만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 과정에 머무는 시간과 몸의 감각, 스스로 속도를 정한다는 감각까지 함께 원했던 것 아닐까요. 그렇게 지금도 감각의 시장은 살아내거나 생겨가고 있습니다.
구태경의 비즈니스 심리학 20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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