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자(필자)
네. 긴급하게 연결했습니다. 10월 초 현재, 지금 한중일 극장가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중심에는 작고, 하얗고, 동그랗고, 말랑말랑하게 생긴 생명체들이 있습니다. 이름은 치이카와, なんか小さくてかわいいやつ(난카 치이사쿠테 카와이이 야츠)의 줄임말로, ‘뭔가 작고 귀여운 녀석’이라는 번역을 줄여서, 한국에는 <먼작귀>로 소개가 되었습니다. <극장판 치이카와 : 인어 섬의 비밀>은 이미 일본에서 <오디세이>, <스파이더맨>을 누르고 1천만 명이 넘는 흥행기록을 세웠습니다.
중국에서는 반일정서마저 무력하게 만들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구요. 결국 한국에 상륙하여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1위를 차지하는 것은 이제 드문 일은 아닙니다.
진행자 : 하지만 이 열풍 속에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온 아이들이 이상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하는데요,
“귀여워!”
“힐링된다!”
“엄마, 나 이거 꼭 보여주세요!!”
이런 기대를 안고 극장에 들어간 어린이 관객들이 나오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
“……이게 무슨 이야기야?”
“……엄마, 잘 모르겠는데 무서워…”
그리고 일부 관객은 집에 돌아가 치이카와 인형을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치이카와 인형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사태를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 오늘의 대담을 마련했습니다. 오늘 자리해 주신 분들 먼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세계적인 인기스타라 정말 섭외하기 힘들었습니다. <먼작귀> 시리즈의 치이카와 3인방과 <타코피의 원죄>의 타코피를 모시겠습니다.


진행자 : 먼저 오늘 사태의 핵심 인물. 치이카와. 작고 하얀 생명체입니다. 말수가 적습니다. 아주 적습니다. 사실 거의 없습니다. 이래서는 대담을 진행할 수가 없겠지요.
치이카와: 우웅……
진행자 : 네. 방금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통역 패널을 함께 모셨습니다. 치이카와의 친구이자, 이 자리에서 가장 정상적으로 말을 할 수 있는 분. 하치와레 씨,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치와레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이렇게 두 분만 모시면 뭔가 좀 허전하죠. 항상 세 분이 함께 다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말을 하기는 하는데, 제가 알아듣는 것보다 우사기 본인이 알아듣는 비율이 더 높은 것 같은 분. 우사기 씨도 모십니다.
우사기 : 야하!
진행자 :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패널. 오늘 굳이 이분까지 모신 이유가 있습니다. 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면서 귀여운 외계인으로 등장해서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줘 놓고서.. 어른들까지 시청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만든 장본인이죠. 저도 아무것도 모른 채 보고 나서 몸에 병이 걸리는 줄 알았습니다...
해피별 출신. 동그란 머리. 문어처럼 생긴 몸. 말끝마다 “삐”. 타코피 씨를 모셨습니다.
타코피 : 안녕하세요삐! 이렇게 여러 친구들과 함께 있으니 오늘도 행복해질 거 같다삐!
진행자 : 반갑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하나만 당부드릴 내용이 있는데요, 당신의 해피 도구들은 제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저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어떠한 도구 사용도 금지하겠습니다.
타코피 : 삐?!


1.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진행자 : 하치와레 씨. 우선 치이카와가 뭡니까?
하치와레 : 작고 귀여운 친구들이야!
진행자 : 세상에 작고 귀여운 캐릭터는 너무나 많죠. 보통 뭘 하시는 캐릭터인가요?
하치와레 : 맛있는 걸 먹고, 같이 놀기도 하고—
타코피 : 그럼, 해피별이랑 비슷하네삐! 내가 좋아하는 뽀로로와 친구들도 그렇게 지내던데삐!
진행자 : 치이카와들은 좀 다르던데요? 일단 일을 열심히 합니다. 일하느라 녹초가 된 모습도 자주 보이구요. 보통 귀여운 캐릭터들은 잘 놀기만 하면 될 거 같은데 말이죠.
하치와레 : 일 해야 해. 돈을 벌어야 하니까
진행자 : 아.. 그럼 돈을 벌기 위해 주로 무슨 일을 하시나요?
하치와레 : 몬스터와 싸워야 해. 지난번에는 몬스터의 침에 갇혀서 죽을 뻔했어
진행자 : 생각보다 위험한 일을 하고 계시네요. 그런데 치이카와 씨는 아까부터 대담에 참여하지 않고 책을 보고 계신데요. 무슨 책을 보고 계시는 건가요?
치이카와: 아…
하치와레 : 제초 자격 5급 시험을 위한 책이야. 지난번 시험에 떨어졌거든
진행자 : 캐릭터가 시험도 보나요? 시험은 왜 보나요?
하치와레 : 자격증이 있어야 보수를 많이 받을 수 있어! 그리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기분 좋게 사케를 마시고, 사케 캔에 오뎅 국물을 넣어서 마시려면, 음주 자격증을 따야해!
진행자 : 사케 캔에 오뎅 국물이라니… 원래부터 애들이 보면 안 되는 애니메이션 아닌가요? 치이카와 씨도 동의하십니까?
치이카와 : 우웅……
하치와레 : 응.
진행자 : 통역 감사합니다.
2. 이번 극장판은 왜 이렇게 난리입니까?
진행자 : 원래도 좀 아슬아슬한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이번 극장판은 더 이슈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극장판의 핵심 사건은 간단합니다. 치이카와, 하치와레, 우사기와 친구들이 100배의 보수를 준다는 말을 듣고 섬에 갑니다.
하치와레 : 100배!
우사기 : 야하!
진행자 : 네. 둘은 상당히 현실적인 이유로 움직입니다. 아름다운 섬으로 가는 여행의 목적은 관광이 아닙니다 힐링도 아닙니다. 돈입니다.
하치와레 : 돈 중요해! 하지만 스승님은 그 섬만의 특제 라면이랑 디저트 때문에 가자고 하신듯해!
진행자 : 맞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조건이 지나치게 좋은 것 같은데…? 좀 의심이 가지 않으셨나요?
하치와레 : 사람들은 친절했어! 음식도 맛있었어!
진행자 : 하지만 사기를 당하신 거죠. 섬 주민들이 하나씩 없어지고 있었고, 그 원인을 찾아 토벌해야 하는 임무를 받으셨습니다. 보수라고는 섬 특산품 선물세트 밖에 없었구요.
치이카와 : 우웅…
진행자 : 그리고 당신은 곧 진상을 알게 되죠. 거대인어 세이렌이 마을 주민을 하나씩 먹어치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타코피 : 뭐라고? 그렇게 나쁜 인어가 삐!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해피 카메라로 찍어놓았더라면,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삐!
치이카와 : (고개를 흔들며) 웅웅…!!
하치와레 : 맞아. 세이렌도 이유가 있어! 친구 인어를 누가 잡아가서, 그 범인을 찾을 때까지 한 명씩 데려갔던 거야!
타코피 : 아 그랬던 거삐? 그러면 내 화해리본으로 서로 새끼손가락을 묶어서 화해하면 되는데삐! 잡아간 인어도 돌려주고삐…
진행자 :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진상을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치와레, 우사기 씨는 잠깐 귀를 막아주시기 바랍니다. <극장판 치이카와> 영화를 보실 분들도 여기서부터는 대담 내용을 보지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우사기 : 오하! (자신의 귀로 하치와레의 귀까지 막는다)
진행자 : 이제 사건의 진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범인은 당신들이 처음 이 섬에 도착했을 때 친절하게 도와줬던 두 아이입니다. 그렇죠? 그 아이들의 책장에서 환상의 동물도감을 보았죠. 그리고 당신은 ‘인어를 먹으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치이카와 : 웅…
진행자 : 세이렌은 친구 인어들과 놀다가 의도치 않게 두 아이의 배를 침몰시키게 되고, 한 아이는 혼수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남은 아이는 동물도감의 내용을 기억해 내고, 친구를 살리기 위해 인어를 납치하여… 인어로 만든 요리를 친구에게 먹이게 됩니다.
치이카와 : 웅…
진행자 : 그렇게 살아난 친구는 진상을 깨닫고 영원히 혼자가 된다는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를 살려준 친구에게도 인어를 먹이게 되구요. 두 아이는 영생을 얻게 되었지만, 자신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한 명씩 인어에게 잡아먹히는 걸 보게 됩니다.
치이카와 : 웅…
진행자 : 세이렌은 두 아이의 몸에 건전지가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고 이 사실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당신도 그 모습을 보고 사건의 진상을 깨닫지 않았나요?
치이카와 : 웅…
진행자 : 그런데 왜 침묵하셨습니까?
치이카와 : 우웅…
진행자 : 즐거워하는 친구들 속에서 침묵하는 당신을 보고 있는데, ‘영원한 우정’에 대한 동요가 흘러나오더군요. 저는 아직까지 그 노래가 계속 기억납니다. 너무나 씁쓸한 기억으로요. 치이카와 씨, 아직도 할 말이 없으십니까?
치이카와 : 우…
3. 여기서 타코피의 등장
타코피 : 이럴수가삐! 치이카와는 왜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나삐! 나라면 바로 해피도구를 써서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줄거다삐!
진행자 : 그렇습니다. 이제 타코피의 얘기를 들어볼까요? 타코피는 해피별에서 왔습니다. 목적은 하나입니다.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 그래서 지구에 내려옵니다. 그리고 한 소녀를 만납니다. 시즈카. 그런데 시즈카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타코피 : 그래서 제가 웃게 해주려고 했어요삐!
진행자 : 맞습니다. 문제는… 왜 웃지 않는지를 몰랐다는 겁니다. 왜 시즈카의 얼굴에 매일 피가 묻어있고, 매일 똑같은 책받침을 사러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요?
타코피 : 삐…
진행자 : 타코피에게 행복은 단순합니다. 웃는다. 친구가 있다. 좋은 일이 생긴다. 그러면 행복하다. 그래서 해피도구로 시즈카를 행복하게만 해주면 된다… 그런데 시즈카의 문제는— 도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타코피 : 그래도 저는 도와주고 싶었어요삐.
진행자 : 당신의 바람과 달리 해피 도구들은 시즈카를 전혀 행복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하늘을 날게 해주는 해피 날개가 있지만, 시즈카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잠깐 하늘을 난다고 해서 이 불행한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으니까요.
타코피:삐…
진행자: 당신은 변신 팔레트로 시즈카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대신 화해를 해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괴롭힘에 대한 당신의 천진난만한 대응은 더 큰 폭력을 불러일으켰지요?
타코피:삐…
진행자: 시즈카를 유일하게 지탱해 주던 친구, 반려견 차피까지 빼앗긴 날, 타코피는 서로 손가락을 묶으면 바로 화해를 하게 되는 해피 리본을 시즈카에서 선물합니다. 그 이후 돌아오지 않는 시즈카가 궁금하여 시즈카의 집으로 간 타코피. 거기에서 해피 리본으로 목을 멘 시즈카를 발견합니다…
타코피:난 정말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삐…
4. 악의 없는 비극, 그게 더 끔찍해
진행자 :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 아픈 겁니다. 당신은 악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선의는 악의보다 더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타코피 : ……삐.
진행자 : 당신은 사진을 찍은 시간으로 돌아가는 해피카메라의 능력으로 시즈카를 다시 살려내고, 다시 죽음으로 몰아넣기를 수십 번 반복합니다.
타코피 : ㅃ…
진행자 : 사실 저는 이 시점부터, 당신이 위기에 처하고, 고통을 받을 때,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마리나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시즈카를 구하기 위해, 해피카메라로 마리나를 때려죽였습니다.
타코피 : 그… 그것도 다시 되돌리고 싶었는데, 해피카메라가 고장 나 더 이상 시간도 되돌릴 수 없게 되어 버린거다삐…
진행자 : 그렇죠. 저는 그 순간에도, 시즈카가 당신이 만든 고통의 루프에서 탈출한 것 자체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전히 무너져버린 시즈카가 돌덩이로 당신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솔직히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좀만 더 세게 때려서 제발 타코피가 터져 죽었으면 좋겠다…’


5. 비극은 해결되지 않고, 지워진다.
진행자 : 하지만 당신은 결국 이 비극을 해결했습니다. 두 소녀가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타코피 : 제 존재를 지웠어요삐.
진행자 : 맞습니다. 당신이라는 존재가 지워져서 결국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마치 치키카와 씨가 비극의 진상을 끝까지 침묵해서 평화를 지켜낸 것처럼요.
치이카와 : 웅…
진행자 : 아, 계속 거기 계셨었군요. 친구분들은 이미 집에 가셨나요..?
타코피 : 그래도 난 마지막에 웃었다삐. 치이카와도 친구들과 즐겁게 보내지 않았냐삐?
치이카와 : 우…
진행자 : 그렇습니다. 웃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처음에 웃었을 때는 꽤 귀여웠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여러분이 웃을 때는… 슬펐습니다. 같은 얼굴입니다. 같은 미소입니다. 그런데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귀여움 이상의 의미를 담게 된 캐릭터 굿즈
진행자 : 자, 그럼 이제 대담을 마무리해 볼까요. 제가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핵심은 이겁니다. 치이카와와 타코피는 정말 귀엽습니다. 사실 이런 캐릭터들은 굉장히 소비하기 좋은 형태입니다. 작습니다. 단순합니다. 표정이 강합니다. 굿즈로 만들기 좋습니다. SNS에서 쓰기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굉장히 무거운 이야기를 집어넣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본 사람들은 이제 그 굿즈를 볼 때 귀여움과 함께 또 다른 느낌을 느끼게 됩니다. 단순히 소비되기 좋은 캐릭터처럼 보였던 존재가, 오히려 너무 입체적인 깊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그런 캐릭터들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더 많이 이야기되고, 더 화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치이카와를 보고 힐링한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귀엽고 웃깁니다. 따뜻한 순간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 세계에는 노동도 있고, 불안도 있고, 죽음도 있고, 상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힐링’이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됩니다. 힐링이란 아무런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고통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잠시 누군가와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긴급대담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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