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캐릭터는 지적 재산권(IP)으로서 영상물, 굿즈, 전시, 공연, 2차 창작물 등 다양하게 활용됩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저작권을 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회사는 당연히 디즈니 스튜디오입니다. 디즈니의 캐릭터는 미키 마우스나 도널드 덕에 그치지 않습니다. 젊은 세대도 열광하는 마블이나 픽사의 다양한 캐릭터들 또한 디즈니 스튜디오 산하에 있습니다.
‘무인도에서 구조받으려면, 해변에 미키 마우스를 그려야 한다(그러면 디즈니에서 잡으러 올 테니까)’ 디즈니의 엄격한 저작권 관리를 빗댄 농담은 유명하다. 미국의 저작권 인정 기한은 미키 마우스의 나이에 맞춰 95년까지 계속 연장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는 함부로 무인도에 가지 말자. 2024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미키 마우스의 저작권 기한은 만료되었다.
일본으로 한정하자면,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 캐릭터 IP를 보유하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에반게리온, 원피스, 건담 등 다양한 작품이 떠오르지만, 저는 스튜디오 지브리(이하 ‘지브리’)를 꼽고 싶습니다.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와 제작자 스즈키 토시오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제작한 이후, 대담한 주제 의식과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를 추구하며 지브리를 만들었습니다. 지브리의 작품이 유수의 칸과 베를린 같은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아카데미 상을 여러 번 수상하는 것은 놀랍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지브리의 작품에 대중이 열광한다는 점이 놀랍게 느껴집니다. 기본적으로 잔잔하고, 다소 난해하기까지 한 지브리의 작품들이 일본 영화 흥행 순위 10위 내에 아직도 여러 개 남아있습니다. 일본은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전국 각지의 지브리 샵을 필수적으로 방문합니다. 도쿄 인근 미타케의 지브리 박물관과 나고야 인근에 새로 개장한 지브리 파크는 몇 달 전에 예약하지 않을 경우, 입장조차 어렵습니다. 대중들을 왜 지브리에 돈과 시간을 쓸까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지브리가 만들어낸 매력적인 캐릭터들에 있습니다. 예, 지금 생각하고 계시는 토토로, 바로 그거요!!
2년 전 지브리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만화적 상상력이 충만한 전시 방식 자체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만, 일체의 실내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내용을 소개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개장한 지브리 파크의 경우, 대부분의 스팟에서 사진 촬영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지브리 파크의 인기 캐릭터들을 직접 취재하여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편집자님! 저 이거 취재하느라 그간 받은 원고료 다 썼습니다…!
지브리 파크 인기 캐릭터 best 5
지브리 파크는 나고야 인근의 아이치 엑스포 기념 공원 내에 조성된 여러 개의 시설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존 공원 환경과 잘 어우러지게 군데군데 자리 잡은 모습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공원의 언덕 부지에는 ‘귀를 기울이면’에 등장하는 언덕 위 바이올린 공방이 있습니다. 나무가 울창한 부지에는 ‘토토로’가 있는 숲이 있습니다.
가장 큰 실내 전시 공간인 ‘지브리의 대창고’도 기존의 아이스링크 시설물을 개조한 것입니다. 띄엄띄엄 있는 지브리 시설물을 찾아가는 시간도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되기 위해 굿즈를 장착하거나 아예 코스프레까지 하고 있는 전 세계 지브리 팬들을 보는 것도 파크의 또 다른 재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현장에서 느낀, 지브리 인기 캐릭터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5위. <마루 밑 아리에티>의 아리에티
<마루 밑 아리에티>는 조금 생소하실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도 이번에 지브리 파크 내에 아리에티 존이 잘 구성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준비 차원에서 부랴부랴 <마루 밑 아리에티>를 보았습니다. 엄지공주를 연상시키는 설정이 다소 뻔해 보이기도 합니다만, 지브리답게 마냥 동화 같은 이야기로 풀어내지 않아서 꽤 볼만했습니다.
소문답게 아리에티의 소인국 설정이 세트로 잘 재현되어 있습니다. 물고기 모양 회 간장 통을 물통으로 쓴다든가, 스테이플러 침으로 계단을 만든다든가 하는 재미있는 요소들도 깨알같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다소 생소한 캐릭터를 5위로 꼽은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파크 내에서 머리가 어느 정도 자란 여자아이들은 모두 아리에티처럼 빨래집게로 머리를 묶고 있었습니다. ‘아리에티 머리 집게’가 파크 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굿즈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4위. <이웃의 토토로>의 토토로
다음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토토로입니다. 토토로는 그 생김새도 너무 귀엽지만, 그 쿨한 성격이 더 마음에 드는 캐릭터입니다. 딱히, 아이들을 위해서 뭘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엄마를 걱정하는 두 자매의 마음을 치유해 줍니다. 고양이 버스 또한 매우 사랑받는 캐릭터로, 지브리 파크 내에서는 실제로 고양이 버스를 운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취재비가 모자라서 타지 못했지만, 여러분은 꼭 타 보시기 바랍니다.
지브리 캐릭터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토토로가 4위라니! 사실 토토로는 꼭 지브리 파크가 아니어도 세계 각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현지에서의 열기는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친구입니다. 특히 돈토코 숲의 토토로는 아이들이 직접 안에 들어가서 놀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제 모습 뒤로 보이는 토토로 속 아이의 즐거운 얼굴 덕분에 더욱 기분이 좋습니다.
3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작 <모노노케 히메>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비해 아쉽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흥행했고, 히사이시 죠의 OST <인생의 회전목마>는 뛰어난 지브리 OST 중에서도 최고로 꼽힙니다. 작품 내 다양한 감초 캐릭터들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브리 파크에서도 불의 악마 ‘캘시퍼’와 통통 뛰어다니는 허수아비 ‘카브’를 가방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바닥을 쓸고 다니는 강아지 ‘힌’의 인형은 스팟마다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있었고, 저도 구매 직전에 겨우 참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돈을 쓰고 만 굿즈가 있었는데, 바로 ‘움직이는 성’의 형태를 차용한 모자입니다. 솔직히 전 이 작품을 본 지 너무 오래되었고, 솔직히 주인공인 ‘소피’와 ‘하울’의 얼굴은 잘 기억나질 않습니다. 그럼에도 2D 감성으로 육중하게 움직이는 ‘성’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명확하게 남아 있습니다. 자아가 없는 건축물도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저처럼 완고한 팬들의 주머니까지 털어가는 것이 바로 메인 캐릭터입니다.
2위. <천공의 성 라퓨타>의 ‘로봇’
<천공의 성 라퓨타>는 스튜디오 지브리 최초의 작품입니다. 그만큼 오래된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쓸쓸한 느낌이 남아있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 홀로 남겨진 로봇의 모습. 이 로봇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거신병의 모습을 축소시킨 형태로, ‘지브리’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메카닉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봇은 비슷해 보이지만 용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생겼습니다. 지브리 파크에는 라퓨타와 함께 녹슬어가는 일꾼 로봇, 시타를 잡고 있는 전투로봇 두 가지 모두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둘과 사진을 찍으려면 각각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두 가지 다 놓칠 수 없습니다.
1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가오나시
지브리의 대표작을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역사적인 흥행 기록과 수상 기록 모두를 가지고 있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그야말로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으로, 놀라운 상상력으로 구현된 캐릭터들이 가득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는 바로 ‘가오나시’입니다. 지브리 파크에서도 가오나시와 전차를 타는 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가장 긴 대기 시간을 감수해야 합니다.
가오나시는 소심해 보이는 외관도 매력적이지만, 캐릭터 자체가 지브리의 성향을 완벽히 반영합니다. 가오나시는 ‘빌런’이라는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철없는 어린아이에 가까운 캐릭터입니다. 친구를 갖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으로 큰 소동을 일으키지만, 극 후반부에는 오히려 주인공과 함께 여정을 같이하는 다소 친근한 캐릭터가 되어 버립니다. 지브리는 환경, 전쟁, 전통 보존 등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편향적인 시선을 극도로 경계합니다. 전 세상을 흑백으로 나누는 소년만화보다는 지브리의 고민이 들어간 작품을 제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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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조 단위의 비용으로 지브리의 작품들을 모두 구매해 준 덕에, 이제는 이 유명한 작품들을 모두 합법적으로 간편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상물을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 꼭 좋은 것만 같지는 않습니다. 쉽게 볼 수 있는 만큼 쉽게 휘발된다고 할까요. 특히, 일본 문화가 아직 개방되지 않았던 시절, 불법적인 방식으로 처음 접했던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아직도 저에게 마법 같은 순간들로 남아 있습니다.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고 불만만 많던 고등학교 시절, 저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친구 손에 이끌려 한 대학교의 애니메이션 동아리 상영회를 찾았습니다. 그때 처음 본 작품이 바로 지브리의 역사적인 걸작 <모노노케 히메(당시 ‘원령공주’)>입니다. 제대로 된 영화 한 편 본 적이 없었던 제가 그때 느낀 경이로움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런 순간을 선물해 준 것 자체로, 지브리는 제 인생의 행복을 더해 준 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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