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에 다녀왔다. 구미에 일이 있어 갈 때마다 김홍란을 만난다. 그가 구미에 살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에 갈 때 자연스레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 꼬박꼬박 만나는 것은 내 쪽에서는 매번 벅차고 기쁜 일이지만 과연 상대쪽에서도 같은 마음일지 은근한 조바심이 든다. 귀찮거나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다행히 김홍란도 내가 구미에 갈 때마다 연락하는 것을 (아직까지는) 지겨워하지 않는 것 같다. 김홍란에 대해서는 내 책에서 몇 번 소개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내 책을 꼼꼼하게 읽은 사람들 중에는 내가 어쩌다 ‘제 친구 중에 김홍란이라고 있는데...’ 라고 운을 떼면 ‘아, 알아요. 책에서 봤어요. 좀 이상하신 분’ 하고 아는체를 해오는 경우가 잦았다. 김홍란은 2022년이 되면서 어떤 해답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전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보면 우주의 모든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이 42랬어. 올해 우리 42살이니까 해답을 찾아보자. 못찾으면 만 나이를 말하나보다 하고 내년에 또 찾고.”
나는 그가 말하는 해답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아서 물어보지 않았다. 이 글을 읽는 분 가운데 김홍란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는 분들은 이 에피소드를 통해 그에 대한 짐작이 대충 가능해지셨으면 한다.
그는 현재 직장 때문에 원주에 살고 있는데 월차를 내고 구미로 내려왔다. 나는 나대로 일을 마치자 밤 열 시가 훌쩍 넘었다. 매번 구미에서 우리만의 시간은 주로 이렇게 밤부터 시작하는데, 그렇다보니 구미에서 만날 때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잘 준비이다. 구미에서 가장 유서깊은 숙소인 금오산 호텔에 체크인하는 것, 그리고 거기서 와인을 마시다 잠드는 것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우리의 첫 스케줄이다.
다음날 아침부터 우리가 한 일은 김홍란이 10년 가까이 다니고 있다는 마사지 샵에 간 것이다. 처음 홍란에게서 이 제안을 들었을 땐 조금 당황했지만 나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때만해도 나는 우리 둘이 탈의한채 나란히 누워서 속닥거리며 마사지 받는 그림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그 가게는 한 명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럼 나 마사지 받는 동안 너는 뭐하게?”
내가 묻자 김홍란이 대답했다.
“너 넣어놓고 나는 본가에 가 있으려고. 바로 코앞이야.”
‘넣어놓고’ 라는 말 속에서 어마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더불어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에게서만 풍기는 여유로운 권력도...
김홍란의 말에 의하면 원장님은 굉장한 분이라고 했다. 그에게 마사지를 받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온다고, 교육을 받기 위해 찾아오기도 한다고. 스스로도 안주하지 않고 계속 공부하고 노력하는 분이라고. 그러니까 데려가는거지 제주에서 오는 애를 내가 괜히 집앞 마사지샵에 데려가겠냐며 김홍란은 우정의 으름장을 놓았다.
아파트 상가에 하나씩 있을법한 범상한 외관을 가진 마사지샵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문제의(?) 원장님께서 다정하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내주신 차를 마시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홍란과 원장님이 나누는 몇 마디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이 둘의 연대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끈끈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김홍란은 물론 김홍란의 가족, 친척, 친구들까지 모두 이 곳에서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나는 김홍란에게 혹시 여기서 일하면서 한 명 소개할 때마다 인센티브 받고 그러냐고 물었다. 두 사람은 농담으로 듣고 하하 웃었다....
김홍란이 나가고 원장님과 단둘이 남아 그가 시키는 대로 옷을 벗고 탈착이 간단하게 만들어진 가운을 입고 누웠다. 원장님은 기분이 좋아지는 오렌지 오일을 묻힌 손바닥을 내 얼굴 앞에서 둥글게 모았다. 눈이 저절로 감겼다.
맨 몸이 다뤄지는 곳에 갈 때마다 확실히 눈이 아닌 다른 감각에 불이 켜지는 느낌을 받는다. 피부는 단순히 뜨겁고 차가운 온도나 통증 같은 것 이외에도 너무 많은 걸 감각하고 또 짐작할 수도 있는 조직인 것 같다. 그것을 처음 강하게 실감한 것은 목욕탕에 가서 세신을 받을 때였다. 나는 세신사가 나를 인간으로 다루는지 그냥 살덩이로 취급하는지, 그의 마음이 내 몸에 있는지 다른데 정신이 팔려있는지, 지금 바쁜지 여유로운지 피부에 닿는 손길만으로 알 수 있었고 손길만으로 짐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이종수(애인)는 거의 매일 밤 내 다리를 주물러주는데 가끔은 그의 손길에서 ‘너무나도 하기 싫다’는 목소리가 저절로 들릴 때가 있다. 내가 부모님 집에 갈 때 배부르게 밥을 먹고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으면 백기녀(어머니)가 다가와 갑자기 내 어깨나 팔을 주물러줄 때가 있다. 사실 내가 그를 주물러줘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모르는게 아닌데도 나는 그냥 가만히 있는다. 백기녀가 나를 그저 너무 만지고 싶어한다는 게 피부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생명들의 피부에 새겨진 접촉에의 욕망이란 과연 뭘까 하는 생각을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두 명의 고양이를 볼 때에도 한다. 그들은 내가 만져줄 때마다 참았던 그르릉 소리를 토해낸다. 함께 잠을 잘 때 기어이 몸을 밀착시키려 내 쪽으로 꿈질거리는 그들의 등을 본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원장님은 내 몸에 오일을 발라 잠깐 만져보시고는 마사지를 자주 받는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아셨다.
“몸살 안날 정도로만 힘을 줘볼게요.”
그러고는 순전히 피부를 통해 파악한 나에 대해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당신은 두통이 잦겠군요. 종아리를 만져보니 운동을 안하는 사람은 아니로군요. 당신의 기관지 쪽은 괜찮은가요? 당신은 짝다리를 짚고 설 때 오른발이 앞으로 나가겠군요. 당신의 아치는 좀 심한 편이에요. 그래서 걸을 때 발가락을 거의 사용하지 않다보니 발가락이 무척 약하네요. 평소에 까치발 운동을 열심히 해주세요.
나는 마치 남 이야기를 듣듯 내 몸에 대한 이야기를 신기하게 듣고 있었다. 그러다 원장님은 가장 신기한 말씀을 하셨다. 마사지를 받다가 종종 잠드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런 경우 마사지의 효과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거의 몸을 일으킬 뻔 하며 네? 왜요? 하고 물었다.
“세포들이 깨어있어야 효과가 있지 잠이 들면 세포들도 잠이 들어서 몰라요. 그래서 저는 마사지 하면서 손님들이 잠이 들까봐 계속 말을 걸고 잠든 것 같다 싶으면 일부러 일어나라고 조금 아프게 한번씩 힘을 주기도 하고 그래요.”
나는 이 말을 들으며 ‘인지’ 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우리가 근육운동을 할 때에도 정확히 의도한 근육에 자극이 되고 있는지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우는 것처럼, 마사지를 받는 일에도 역시 ‘인지’가 필요한 것일까. 그러고보면 피부를 통해 내가 감각하는 모든 것은 ‘인지’가 가능할 때만 가능하다. 이종수의 피곤함도, 백기녀의 사랑도, 고양이들의 애착도. 그렇게 생각하니 ‘늘 깨어있으라’는 흔한 경구도, 잠은 ‘작은 죽음’ 이라는 익숙한 비유도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나는 마사지가 끝날 때까지 반듯이 누운채 교실 맨 앞 줄에 앉은 모범생처럼 깨어있었다.
원장님은 나보고 관리를 너무 안한다면서 ‘종종 몸에 기름칠 좀 하세요’ 라는 범상치 않은 위트로 배웅해주셨다. 전날 늦게까지 와인을 마셨고 마사지까지 받았더니 온 몸이 노곤했다. 김홍란과 조금 더 놀다가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졸음이 솔솔 느껴졌지만 잠들고 싶지 않았다. 이 여정을 끝까지 ‘인지’하고 싶은 마음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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