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1-02 : Culture Club - 인터넷방(房) 만들기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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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방(房) 만들기
 
 
 가상현실은 없다. 확장된 현실이 있을 뿐이다!
 
이 상 철| IT팀
peterpan@lgad.lg.co.kr
 
‘오늘도 시린 손을 억지로 녹이며 피아노 건반 앞에서 이제는 아무도 들어 주지도, 사 주지도 않는 음악을 작곡하고 있는 내 자신을 생각해 본다. 3년 전 음악의 길이 아닌 카피라이터라는, 그나마 일상의 안락이 보장되는 삶을 포기한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오늘까지는 곡을 마무리해야 알렝 씨에게 밀린 방세도 갚고, 제임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도 줄 수 있을 텐데…’
오늘은 여기까지! 제시카는 종료 버튼을 클릭하고 바삐 출근 준비를 한다. 요즘 들어 가상공간에 너무 깊이 빠지는 건 아닌가 걱정해 본다. 예전에 이루지 못한 피아니스트의 꿈을 가상공간에서나마 대신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제시카는 요즘 하루 6시간 이상을 가상공간에서 보내고 있다. 제임스와 알렝을 실제로 만나 보고 싶은데, 과연 어떤 사람일까?

예전에 읽었던 어느 무명 미국 소설가의 작품의 내용이다. 그 당시, 참 먼 미래의 꿈 같은 이야기라 생각했던 가상공간에서의 생활이 요즘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게임을 통한 가상공간 첫 경험

가상공간에 대한 최초의 경험은 ‘리니지(Lineage)’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RPG 게임인 리니지는 단순한 게임의 차원을 넘어서는 강력한 매력을 무기로 현재 유료 회원수가 300만 명, 동시 이용자 수 10만 명이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대구광역시 인구보다 더 많은 사람이 리니지라는 가상공간을 경험한 셈이다.
리니지 게이머들은 리니지를 단순히 게임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리니지는 ‘확장된 또 하나의 현실’인 것이다. 리니지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게임에 등장하는 주변인들이 모두 실제 이용자라는 것인데, 이용자들은 서로 적이 될 수도 있고 혈맹(lineage)이 될 수도 있다. 뜻 맞는 사람끼리 혈맹을 조직하여 다른 혈맹과의 전투(PK)를 통해 자신의 능력(level)을 키워 나간다. 혈맹원들은 전투에서 서로 돕고 전략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현실 세계와 동일한 동질감, 우정, 뿌듯한 소속감 등을 경험한다. 그리고 전투에서 진 게이머는 알거지(?)가 되지만, 승자는 상대방의 아이템(무기)과 아데나(화폐)를 전리품으로 획득해 더욱 강한 캐릭터로 성장한다. 그런 만큼 게이머들은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수십, 수백만 원의 현금을 들여 아이템을 구입하고, 아이템과 아데나는 현실 세계에서 수십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현금으로 거래되기도 하며, 아이템을 얻기 위해 자신의 혈맹을 배신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리니지는 현실에서의 삶의 요소가 내포되어 있는 ‘인간 세상의 축소판’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 곳에는 동지와 적이 있고, 계급이 있고, 규율이 있으며,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하나의 사회이자 국가인 것이다. 리니지 이용자들은 자신의 현실에서의 삶이 확장된 또 다른 하나의 현실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못할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꿈의 공간
 
리니지가 게임에서의 가상공간을 제공한다면 팝플(www.popple.co.kr)은 일상에서의 가상공간을 제공한다. 인터넷방(房) 만들기 문화를 대변하는 하나의 사이트인 팝플은 과거의 소꿉놀이가 전자적으로 정교하게 재현된 형태라 할 수 있다. 팝플은 채팅 문화와 아바타 문화가 융합된 형식으로서 초기의 옷 갈아입기, 표정 바꾸기 등의 단순 아바타 기능을 뛰어 넘어, 말하고 걷고 춤추고, 심지어 뽀뽀까지 할 수 있는 동적 아바타가 자신만의 가상공간을 구현할 수 있게 해준다. 침대·책상 등의 가구 뿐만 아니라 도배지·장판까지 동원해 내 방을 꾸미고, 그 방에서 이메일을 확인하고, 다른 네티즌이 진행하는 인터넷 음악방송을 청취하며 채팅도 할 수 있다.
 
현재 팝플의 회원만 60만 여명, 그리고 MSN·싸이월드·조이시티·내방닷컴 등 이와 유사한 10여 개 방 꾸미기 사이트들도 60여 만~100만 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주 회원층은 초등학생을 포함한 10대부터 20대이지만, 30대는 물론 50대까지의 회원도 적지 않은데, 그들의 활동 또한 아주 활발하다. 10대들에게서는 주로 친한 친구들과의 소꿉놀이 문화가 활발한 반면, 20~30대 및 그 이상의 회원층은 새로운 커뮤니티 형성을 즐기는 편이다. 이들은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계층으로서, 자신의 공간을 수시로 바꾸고, 그 안에서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욕구를 대리 충족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터넷 방 꾸미기 사이트의 재미있는 현상 중 하나는 ‘아바타 동거 생활’. 채팅 대화 중 동거 룸을 제안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한 방의 공동 방장이 되어 방을 함께 꾸미고 같은 시간에 접속하여 같은 공간에서 대화하고 잠 자고 먹고 뽀뽀하며 춤추고 울고 웃는 등 실제 현실 세계의 연인처럼 생활한다. 특히 이런 사이버 커플의 경우 현실 세계에서 실제 연인이 되는 경우들도 많으며, 아바타 친구들을 모아 놓고 결혼식을 올린 후 신방을 꾸미는 등의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또한 얼마 전에는 미군 장갑차 사건으로 희생된 효순이와 미선이를 추모하는 추모제가 한 선실에서 있었는데, 이 자리에 모인 아바타들은 저마다 팝플에서 무료로 제공한 촛불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추모의 글을 올렸다. 이날 방장의 음악방송 또한 이들을 추모하는 특집 방송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인터넷 커뮤니티의 한 전문가는 네티즌들이 방 꾸미기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아이디/패스워드 공유 파티’와 같은 이용자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도 있다는 예측을 한다. 서로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특정한 날에 공유함으로써 다른 이용자의 옷도 입어보고, 방에도 들어가 보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가상공간 활동은 단순히 가상공간에서 한정되지 않고 현실 세계에서의 오프라인 모임과 연결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향후 가상공간에서의 활동은 외부와는 담 쌓아 놓고 PC 안의 가상 세계만을 몰입하게 한다기보다 현실 공간에서의 활동 폭을 넓히고 대인관계를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데 이바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 분명한 것은 요즘 젊은 세대의 가상공간에 대한 관심은 어느 한 시기의 호기심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인터넷 네티즌의 이용행태에 대한 연구와 인터넷 기술이 보다 정교하게 이루어진다면 지금보다 더 리얼한 사회 활동, 경제 활동, 심지어는 정치적 활동까지 가능해질 것이고, 이는 다시 사이버 세대의 현실 세계에도 반영되어 활발한 커뮤니티 활동을 가져올 것이다.
그렇다. 사이버 세대에게 가상 현실은 없다! 오직 확장된 현실이 있을 뿐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