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요조’의 청춘 에세이: 아직 이 종교의 이름은 없다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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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살 무렵의 어느 날 내 발로 어떤 집에 찾아간 적이 있다. 마당이 있는 하얀 단층 건물이었다. 마당에는 내 또래의 아이들이 있었고 몇 명의 어른들도 있었다. 거기서 까무러칠 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 잘생긴 어른이 나에게 “일요일마다 놀러 와” 하고 말했다. 나는 그 길로 집에 가서 부모님께 이제부터 일요일마다 갈 데가 있다고 선언하듯 말했다. “어딘데?” 엄마와 아빠가 물어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딘지는 나도 몰랐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일요일 내 뒤를 몰래 따라온 엄마 아빠는 그 갈 데라는 곳이 교회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예배를 드리다 우연히 창문 밖에서 나를 훔쳐보며 킬킬거리던 엄마 아빠를 보았다. 예수님도 사탄도, 천국도 지옥도 몰랐던 나는 무작정 잘생긴 어른의 말 한마디 때문에 일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갔다. 그 잘생긴 어른은 ‘전도사님’ 이었는데 나는 그 전도사님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 같다. 소풍처럼 놀러 간 숲에서 전도사님과 다른 여자애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아직도 있다. 사진 속 전도사님은 키가 작았다. 알이 두꺼운 금테 안경에 푸릇한 수염 자국, 한여름의 소풍날인데도 고루한 청록색 양복을 재킷까지 챙겨 입었다. 여자애들의 뒤에서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저 남성을 왜 좋아했을까. 좋아했던 사람을 시간이 흘러 다시 볼 때마다 매번 충격을 받고 내가 좀 싫어진다.

비록 지금은 납득할 수 없는 한 남성에게 매료되어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아무튼 내가 직접 선택했다는 점에서 나는 종교에 있어 주체적인 사람이었다.

 

중3 때 조금 먼 곳으로 이사를 하면서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 다닐 수가 없게 된 나는 주체성을 다시 한번 발휘했다. 동네 보습학원에 다니게 된 첫날, 옆자리에 앉은 애한테 “너 혹시 교회 다니니? 그럼 나 좀 너네 교회에 데려가지 않겠니?” 하고 내가 역전도(?)를 한 것이다. (조금도 내키지 않아 하던 그 애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 교회를 20대 내내 열심히 다녔다. 그러다 교회가 커지면서 목사와 장로들과 신도들이 편을 나눠 무슨 싸움을 크게 하는 바람에 그만 다니고, 그러고는 아예 예배당 없이 떠돌아다니며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을 알게 되어 그분을 몇 년간 따랐다. 그러다가 목사님에게 “목사님, 신은 아무래도 없는 것 같아요. 전 이제 예배드리지 않을래요.” 하고는 발길을 끊었다. 그때 목사님은 이런 식의 반항에 굉장히 익숙하다는 듯이 순순히 내 뜻을 받아들였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다시 생각나면 와요~” 하고 말했다. (목사님과는 지금까지 안부를 물으며 지내고 있다)

그때부터 대략 10년 정도 종교가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 지금까지의 소감을 간단히 말해보자면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안전벨트 없이 앉아있는 기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렇지도 않을 때가 많았고, 편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무서웠는데 그 무서움의 강도가 너무 셌다. 그리고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외로워서 슬픈 게 아니라 외로워서 무섭다는 새로운 인과관계를 알게 되었다. 기도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점점 많아졌다. 가끔은 사람들에게 기도를 할 수 없는 고충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내게 아무에게나 기도해보라고 조언했다. 하늘에, 태양에, 부처께, 알라신께, 공자께, 맥주와 담배께 기도해보라고.

나는 교회에 다니면서 내가 믿는 신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 실재를 향해 내가 지닌 마음은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참 위대했다. 본 적도 없는 존재를 그토록 철석같이 믿었다니.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거듭 말하면서 내통해왔다니. 내 인생 전부를 그에게 알아서 하라고 밀어두었다니. 지금은 내게 그것이 없다. 그것 없이 하는 기도는 소꿉장난일 뿐이다. 아무것도 없는 물컵에 맛있는 음료가 담겨있는 것처럼 마시는 시늉을 하면서 ‘캬- 시원하다!’라고 말하는 일이다. 그런 일을 해보려고 나는 몇 번이고 손을 모아봤지만 그럴 때마다 얼굴이 빨개져 그만두었다.

나의 소중한 한 친구는 다시 종교를 갖고서 기도를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내 글을 읽고 자신의 SNS에 신은 ‘입자’로 존재한다고 여긴다는 글을 썼다. 신은 공기 속에서 입자로 떠돌고 있다고. 그래서 먼저 말을 걸거나, 전능한 기적을 행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누군가 자신을 부르면 그 입자들이 모여들어서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고.

 

언젠가부터 나는 죽은 사람들에게 기도하고 있다. 그들은 신은 아니지만 신과 비슷하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고, 내가 그들을 여전히, 의심 없이 믿고 사랑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내가 살고 있는 집 거실 한편에는 죽은 사람들의 사진들이 있다. 내 동생이 있고, 박지선이 있고, 변희수 하사가 있다. 그 밖에 나만 아는 죽은 사람들이 몇 사람 더 있다. 

나는 아침마다 그 앞에 서서 손을 모으고 그들의 이름을 부른다. 수현아, 지선아, 변희수 하사님.... 그리고 아무 말을 한다. 중요한 일을 하는데 잘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어떤 연유로 고마움을 느낀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절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 앞에서 요가를 낑낑하면서 사진들과 오랫동안 눈을 맞춘다.

나는 친구의 ‘입자론’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기도하고 싶어서 애쓰던 많은 시간 동안, 손을 모았다가 시무룩해져서 다시 풀곤 했던 그 시간 동안 내 주변을 감싸던 입자들의 안타까움이 나를 여기로 데려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침마다 이름들을 속삭일 때, 물끄러미 사진들을 바라볼 때, 어디서든 그들을 생각할 때, 내 주변의 입자들이 촘촘해진다는 것을 옛날의 내가 그랬듯이 진심으로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자마자 나는 종교가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게 뭐야, 하고 누군가 야유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처음에 말했듯이, 나는 종교에 있어서는 주체적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