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보다 HS애드 공식 블로그 HS 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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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올림픽의 장면 하나.

7월 29일 목요일, 유도 경기, 100Kg 이하 체급에 출전했던 조구함 선수는 준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인 포르투갈의 호르헤 폰세카 선수를 만났다. 상대 선수와의 그간 전적도 좋은 편이어서 이제 한 발자국만 더 가면 메달도 바라볼 수 있는 상황. 그런 긴장되는 분위기의 경기 초반, 갑자기 폰세카 선수의 손에 경련이 일어났다. 고통스러워하는 얼굴, 연신 주먹을 폈다 쥐며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는 폰세카 선수를 바라보며, 경기를 보고 있는 많은 이들의 생각은 아마도 비슷했을 것이다. “이제 정말 거의 다 됐다!” 

올림픽 메달은 누구나 다 알다시피, 단순히 메달 자체의 의미가 아니다. 그 메달과 함께 따라오는 사람들의 환호와 세계적 명예, 그리고 현실적으로 이제껏 흘린 땀에 대한 보상, 이를 통해 행복한 내 가족들… 이런 것들을 모두 걸고 싸워 이겼음을 상징하는 증표다. 해설자도 그와 같은 마음으로 폰세카 선수의 저 약점을 잘 공략하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코멘트했다.

▲‘은메달 확보’ 조구함, 세계랭킹 2위 이겼다 / KBS 2020 도쿄올림픽 2021.07.29

그러나 이내 그런 마음들이 부끄럽게 만든 건 정작 경기를 뛰고 있는 조구함 선수였다. 조구함 선수는 조급하게 상대방이 지금 고통스러워하는 약점을 파고들지 않았다. 경련이 일어난 틈을 노려 경기 속행을 요구하지도, 경기 초반처럼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손을 되려 공략하지도 않았다. 약점이라는 기회만 빼고, 본인의 플레이대로 경기에 최선을 다했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어쨌든 승리를 했고, 승리의 기쁨 속에서도 상대방의 아픈 손을 미안한 듯 위로하는 마지막 인사 장면까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지극히 당연한 마음을 “감동적인 의외”로서 보여줬다.

또한 조구함 선수는 결승전에 들어서도 이런 “감동적인 의외”를 다시 한번 보였다. 하필이면 결승전 상대는 일본 선수. 경기 후, 다소 아쉬운 결과에 대해서도 상대방인 일본 선수의 승리를 본인의 손으로 추켜올리며,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를 축하해주는 세레모니를 통해, 준결승에서 보여준 감동적 의외가 이 선수에게는 그야말로 “의외”가 아니라 당연한 것임을 보여줬다.

이번 올림픽은 어렵게 개최됐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변이 이슈로 개최 일주일 전까지도 취소 가능성이 언급됐을 정도였으니까. 어쨌든 개최로 가닥이 잡혔지만, 선수촌 안에서까지 발생한 코로나로 인해 경기 스케줄이 불안했고, 대회 초반 잘못된 방송 자막 이슈 등으로 인해 시청 여론이 부정적이진 않을까 하면서, 올림픽에 들어갈 광고를 넣어야 하는 매체 담당자 입장에서도 혼란이 많았다. 그러나 혼란 속에서도 매체 담당자가 올림픽을 실행하면서 챙기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국내 리그 경기에서도 인기를 담보로 하는 야구와 축구를 필두로 금메달의 가능성 높은 경기들을 우선 꼽는 일. 그리고 거의 비슷하게 편성된 올림픽 중계 스케줄에서 어느 해설자가 시청자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을 것인가를 가늠하는 일 정도다.

이러한 이심전심에서 지상파 채널들도 비슷한 중계를 편성하게 된다. 고작 하루에 한두 개, 그것도 대회 초반에 이슈가 되는 중계들만 치자면, 고작 10개 내외의 흥행 종목이 올림픽의 마케팅 성패를 결정 짓는 것이고, 지상파 채널로서도 이 10개 내외의 흥행 종목을 통해 올림픽 판매를 통한 중계료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매번 스포츠 이벤트에 나오는 문제지만 뻔한 중계 일정을 짜고, 모두 같은 시간에, 같은 화면을 담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다소 숙명적일 수밖에 없는 결과다. 이전의 올림픽도 마찬가지였고, 이번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승자를 선택하는 것, 인기 종목을 선택하는 것은 안정적인 기대치에 따라 고를 수 있는 당연한 카드다. 그러나 그 안정적인 기대치에 부흥하는 일이 올림픽이라는 이벤트에서는 마치 주객이 전도된, 마치 승자의 가치만을 강조하는 행사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올림픽 자체가 국가의 능력을 증명하고, 개인은 평생의 영달을 걸고 싸워야 하는 전장이 되었고, 인류애적인 화합과 경이의 순간은 대부분 배제되어 버렸다.

조구함 선수의 얘기를 서두에 시작한 건, 이런 의미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올림픽을 본다는 것, 올림픽에 나온 선수들을 응원하고, 박수친 것은 승자가 독식하는 메달의 명예보다도 그간 노력이 의미를 부여받고, 우리 스스로 다양한 의미의 승리를 맛보기 위해서다.

앞서 조구함 선수의 행동에 대해 “감동적인 의외”라는 표현을 썼다. 누군가의 약점을 기회로 삼지 않고 내가 제일 미워하는 나라의 선수에게 졌지만, 경기 결과에 대해서는 축하해주고 패배는 나의 성장으로 돌릴 줄 아는 굉장히 당연한 것이 의외로 감동이 되는 세상. 이제는 우리가 올림픽을 다르게 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요구와 마음들이 실질적인 시청률이나 노출 수로 드러날 때, 그제서야 지금처럼 천편일률적인 올림픽 중계의 형태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곧 패럴림픽이 시작된다.

Posted by HS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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