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한 헤드라인, ‘계륵(鷄肋)’ |
조조는 위대한 전략가뿐만은 아니었다. 조조가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학가중의 하나라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는 수많은 문학 작품을 통해 중국 산문의 개조(改祖; 魯迅의 말)로까지 인정 받았다. 그의 문장은 형식적이고 고답적인 것이 아닌 지극히 자연스런 것이었는데, 상투적인 문장은 쓰지 않았다. 그런 그의 말 한마다 한마디는 상황에 맞춘 절묘한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백미 중의하나는 그 유명한 ‘계륵’이란 말이다. 건안 24년, 조조가 아끼던 맹장 하후연이 한중 양평관에서 유비와 싸우다 죽었다. 한중은 천하통일을 위한 지리적 요충이었고, 어렵게 손에 넣어 하후연에게 지키게 했던 곳이므로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유비와의 일전을 위해 조조가 직접 이곳에 왔다. 싸움은 조조의 뜻과는 달리 지구전으로 바뀌었고 먼 곳에서 온 입장에서의 전쟁은 군수물자 조달에 어려움으로 겪을 수밖에 없어 더 이상 싸울 수가 없었다. 조조는 일거에 유비를 무찌를 심산으로 이곳까지 왔지만 유비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 역시 녹녹치 않아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이런 저런 이유로 철군을 원했지만 이 역시 명분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자존심 상하지 않고 철군하고자 하는 뜻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조조는 군령을 물어보는 부하에게 이렇게 말했다. “계륵!” 무릇 ‘닭의 갈비’란 버리자니 서운하고 먹자니 별게 아니니, 철군하고 싶다는 의지를 자존심 상하지 않게 표현한 것이다.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다. 이런 발상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크리에이티브적’인 것이 아닐까? 조조는 이런 표현을 즐겨 사용했었다고 하니, 그 방면에도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셈이다. |
광고인으로서의 조조 |
물론 조조시대에 광고는 없었다. 무슨 출사표니 격문이니 하는 것은 있었지만 그것도 조조가 직접 쓴 것은 없었다. 그런 조조가 현세에 와서 광고를 한다면 대단한 전략적 사고를 가진 위대한 광고인이 되었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정보를 중요시 하며, 준비와 전략적 계산에 치밀하고, 항상 자신이 처한 상황을 철저히 숙지하고 분석하는 위대한 전략 수립과 실천력을 가진 광고인으로 말이다. 어디 그 뿐일까? 그의 문학적 소양과 더불어 상황을 절묘하게 표현하는 능력만으로도 그는 가장 훌륭한 카피라이터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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