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 기획’이라는 업무는 갈수록 어렵다. 해가 바뀔 때마다 왜 이런 매체 급변의 시기에 이 업무를 맡아서 답이 없는 증명을 요구받는 일을 반복적으로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때때로 매체의 효과와 노출량을 측정하고, 비교하고, 기존 사례를 가져와서, ‘증명’ 그 비슷한 것을 만들어 내지만, 대체로 생각과는 다른 결과를 대면한다. 아니 사전에 틀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이미 알고도 그냥 했다는 게 더 정확한 얘기일 수 있다. 아마 매체 자체도 그렇지만, 매체를 만들어가는 소비자나 콘텐츠, 모든 환경의 불확실성은 나날이 높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기에 대행사, 특히 미디어 플래너들에게 요구되는 클라이언트의 니즈는 효과적이면서도 반드시 손해 보지 않는 안정적인 매체 제안이다. 큰 아이러니고 악순환이 아닐까?
틀린 얘기일 수 있지만, 대부분은 모바일 탓이다. 모바일이 하나의 매체로서 제대로 사람들에게 정착된 건 길게 봐야 10년 남짓이지만, 모바일을 둘러싼 무선 인터넷이나 동영상이 이렇게나 빨라질 수 있을지 몰랐고, 누구나 다 이미지와 동영상의 생산자로서 저마다 매체를 자임하는 세상은 더욱 꿈꿀 수 없었다. 또한 그런 사용자층이 특정 세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보통의 어르신들 손에도 저 다루기 어렵다는 스마트폰이 거의 모두 들려 있을지는 정말 생각할 수 없었던 먼 미래의 일이었다. 내 앞, 옆, 뒤를 가릴 것없이 사방에서 생산하고, 사방에서 소비되는 매체의 시대 가운데서 무엇인가 효과를 냈다, 적어도 노출을 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는 마치 말 위에서 움직이는 과녁을 맞히는 일만큼 어렵다. 그래서일까. 매체 기획자의 업무는 자꾸만 안정적으로 제시 가능한 매체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보통 선택되는 것은 TV다. 적절하던 적절하지 않던 안정적인 측정 방식과 성공의 기억이 가장 많은 TV를 첫 번째 순위의 매체로 제시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물론 모두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증명에 대한 부담만 없었다면 차라리… 다른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이 일단 TV를 향한다.
모바일을 소극적으로 제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매체 파트에서만 고민하는 부분은 아니겠지만, 모바일이라는 매체에 적합한 메시지의 방식은 아직도 정확히 짚어 내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90년대 가수 양준일씨를 불러내고, 몇 년 전 비의 노래가 1일 1깡이라는 방식으로 소비되는 모바일에서의 문화를 어떤 이유에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과거에는 광고 메시지가 대중을 묶어낼 수 있는 코드와 흐름을 가지고 “예측 – 실행 – 성공”의 방식을 적용했지만, 현재의 모바일 시대에는 그런 방식은 더 이상 대입할 수 없다. 겨우 할 수 있는 것이 모바일에서 성공한 콘텐츠의 패러디 정도로 답습하는 게 고작일 뿐이고 그마저도 오리지널이 가진 팬덤에 가까운 영향력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수준에 머문다. 따라서 대안으로 개인의 프로파일이나 행동, 관심 등의 다양함을 인정하고 분류를 보다 세밀하게 구분 지어 그룹별로 별도의 메시지들을 만들어 내는 모바일의 접근 방식들이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데, 이 역시 영향력 전체를 묶어 과거와 같이 ‘성공했던 TV 광고의 시대’에 견주기에 아직은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면 모바일은 어떤 방식을 통해 접근이 가능할까. 정답은 물론 알 수 없다. 다만 과거의 매체가 형성됐던 궤적을 돌이켜 본다면 약간의 힌트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미디어 이론가인 마셜 매클루언은 “광고는 20세기의 동굴벽화다”라는 얘기를 남겼다. 이 말은 동굴벽화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얘기다. 보통 동굴벽화 하면 주술적 의미로 그저 소와 말 등의 동물을 동굴 벽에 기록이나 기원의 의미로 남긴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동굴벽화는 ‘장소성’의 개념을 통해 콘텐츠와 장소가 주는 맥락이 합쳐져 그 메시지의 전달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동굴 바위 벽이 불룩하게 튀어나온 부분에 그려진 덩치 큰 소, 혹은 울퉁불퉁한 물결 질감의 긴 돌을 활용해 그려진 움직이는 말 그림은 그 자체의 묘사도 훌륭하지만 마치 극장과 같은 어두운 동굴 속 환경에서 벽의 질감과 만났을 때, 입체감 있고 공감각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굳이 그림을 남기기 위해서 그렸다면 좀 더 편하고 작업이 쉬운 환경을 골랐겠지만, 이러한 스펙터클을 재현하여 수용자로 하여금 감정을 일으키기 위한 작업이 그 먼 구석기 시대에도 있었음은 상징적인 일이다. 즉, 역으로 “동굴벽화는 구석기시대 광고다”라는 말도 어색하지 않겠다.
우리는 지금껏 회화의 캔버스, 극장의 스크린, 방송의 TV를 통해 편안한 환경에서 노출되는 메시지 수용에 익숙했다. 때문에 굳이 매체의 ‘장소성’의 맥락을 고려치 않은지 오래다. 그러나 모바일은 지금껏 메시지 수용성이 준비되어 있던 매체들과는 다르다. 앞서 동굴벽화의 이야기를 차용해 본다면, 모바일 매체의 수용자는 반대로 언제든 메시지를 거부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기에 ‘장소성’과 같은 새로운 맥락을 제시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침투하는 메시지는 전통적이고 일방적인 메시지 경향과는 좀 달라야 한다. 즉, 모바일에서 마주치는 메시지는 기존 매체에서 제공해주던 욕망을 목표로 하는 감각적인 메시지 전달을 벗어나, 보다 상황과 맥락을 통해 ‘미안함’, ‘고마움’ 등 이해하고 움직일 수밖에 없는 감정적인 메시지의 전달이 필요하겠다. 아마도 예를 들자면 90년대 잊혀졌던 가수를 다시 2020년에 볼 수 있게끔 하는 그런 맥락도 그러한 감정적인 미안함에 대한 부채의식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매체 기획은 지금 순간에도 계속 변한다. 그리고 매체는 변화의 방향성을 알려주지 않는다. 사람과 기술이 달라지고, 내용 면에서도 다양한 콘텐츠들은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콘텐츠로 대체된다. 아마도 선사시대에 동물 벽에 그림을 그리던 작가들이 물리적 한계를 극복해 가는 것이 과제였다면, 현재의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한계를 읽어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갈수록 참 어렵다.
참고문헌
<미술이야기1> (사회평론, 양정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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