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의 화법으로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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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왜 거기서 나와~”
“찐찐찐찐 찐이야 완전 찐이야~”
“합치면 정이 되는 합정인데~”

요즘 트로트가 인기 절정입니다. 예능 프로그램 패널엔 트로트 가수 한두 명은 어김없이 나오고, 새로 발표되는 신곡 또한 트로트가 많습니다. 채널마다 트로트 프로그램도 많아지고, 트로트 노래도 더 많이 들립니다. 사람들은 이 현상을 각자의 시각으로 분석합니다. 왜 트로트가 지금 인기 절정 장르가 됐는지 다양한 의견이 있으나, 분명한 건 트로트 가사는 쉽고 중독적이라는 겁니다. 발라드라면 절대 취하지 않을 화법. 트로트는 은유를 모릅니다. 모든 게 직설적이고 돌려 말하지 않으며 분명하게 얘기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선보인 트로트는 당시의 한을 표현하는 애끓는 멜로디와 가사가 많았으나, 저마다의 답답함을 간직한 요즘엔 모든 게 시원시원하고 화끈합니다. 어렵게 말하지도 않으며 점잖게 말하지도 않습니다. 이게 요즘 가장 환영받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서로의 답답함과 억울함이 뻥 뚫리게 만드는 화법. 소위 내숭 떨지 않는 화법. 그래서 중독되고 웃게 하는 말투. 요즘 트로트는 시원한 맛이 있습니다.


당신은 가치 있습니다

“Because I'm worth it."

로레알의 오래된 캐치프레이즈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름답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말하죠.

흑인에 대한 부당한 제압으로 불거진 인종 차별. 미국에선 많은 브랜드들이 인종차별에 맞서고 있습니다. ‘모델 같은’ 사람이 아니라 늘 ‘보통의’ 여자들의 아름다움에 집중해 온 로레알. 이번에도 단호하게 ‘모두가 가진 가치’에 대해 말합니다. 어떤 장식과 기법도 없이. 그저 단단한 캐릭터의 흑인 여성이 나와 한 치의 의심 없이 얘기하는 방법으로. 직설적으로.


▲로레알의 A reminder that you are #WorthIt 캠페인 (출처: 로레알 파리 USA 공식 유튜브 채널)

아름답고 단호한 연설을 하는 여성은 미국 흑인 배우, 비올라 데이비스입니다. ‘How to Get Away With Murder'에서의 앤널리스 키팅처럼 분명하게, ‘위도우즈’의 베로니카처럼 강인하게 우리 안의 가치에 대해 얘기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깨닫지 못한 순간에도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언제나 우리 안의 가치를 믿어야 하며 의심하면 안 된다.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크게 외쳐라. 이에 반대하는 사람도 잊고 비평하는 사람도 잊고 오직 내가 가치 있다고 외쳐라. 나의 가치가 의심될 때도 그저 나는 가치 있다고 외쳐라.’

그녀의 2분간 연설은 로레알의 ‘Lesson of Worth’시리즈의 일부라고 합니다. 각자가 내면의 힘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로레알은 우리의 진정한 힘은 ‘우리가 가치 있다고 믿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인간다움’을 외면받은 역사이기도 합니다. 산업화된 기계로부터, 전쟁으로부터, 재력으로부터, 그리고 지금 인종차별로부터. 아무런 장식도 기법도 기승전결도 없는 로레알의 이야기는 그래서인지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돌려 말하지 않고 꾸며서 말하지 않지만 힘 있게 말하는 배우의 진정성에서.


흑인은 가치 있습니다

사람이 가치 있다면 흑인이 가치 있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세계 많은 사람이 유색인종의 가치를 의심합니다. 흑인의 힙합 문화를 지지해온 스프라이트와 오랫동안 흑인을 모델로 채용하며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온 맥도날드. 흑인 엔터테인먼트 업계 시상식인 ‘BET 어워즈’를 맞아 흑인을 지지하는 콘텐츠를 선보였습니다.


▲스프라이트의 Dreams Realized 캠페인 (출처: 스프라이트 공식 유튜브 채널)

늘 흑인이 주도해온 힙합 문화와 함께해온 스프라이트. 그들은 ‘아메리칸 드림’이 ‘블랙 아메리칸 드림’을 잊어왔다고 혹평합니다. 흑인들의 목소리, 그들의 꿈, 그들의 삶도 소중하다고 말하죠. 흑인의 아메리칸 드림이야말로 진짜 아메리칸 드림이라고도 합니다. 흑인이 성공한다면 모두가 성공할 기회를 갖는다는 뜻이니까.


▲맥도날드의 Dreams 캠페인 (출처: 맥도날드 공식 유튜브 채널)

맥도날드는 교육, 뷰티 산업, 사진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 중인 행동가와 비즈니스 피플인 13명의 흑인을 등장시킵니다. 각자가 나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흑인 여성을 위한 뷰티 산업을 시작한 이야기. 인종차별 반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흑인들의 아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흑인 아이들의 아름다움에 ‘To be Young, Gifted and Black(젊고 재능 있는 흑인이 되기 위해)’라는 노래가 담긴 영상을 선보입니다. ‘피부색이 그들의 미래를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전하죠.

이들은 트럼프의 발언을 방치한 페이스북에 광고 보이콧을 하기도 했습니다. 미 대통령 트럼프는 흑인 인권을 외치며 거리로 나선 이들을 ‘폭도’라고 지칭하며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도 시작된다.’는 공격성 글을 올렸습니다. 트위터는 이 포스팅을 바로 제지했지만 페이스북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수많은 브랜드들이 페이스북, 나아가 ‘hate speech'에 제재를 가하지 않는 소셜 플랫폼에 광고 보이콧을 선언했고, 페이스북의 주가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페이스북은 늘 서로를 비방하고 잘못된 인식을 주는 글을 방치해 왔다고 비판받습니다. 몇몇 미 매체에선 건강식품 모델엔 백인들이 주로 캐스팅되고, 탄산음료나 패스트푸드 모델엔 흑인들이 주로 캐스팅된다며 이 또한 하나의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비평하기도 하죠. 흑인들의 높은 비만율을 조장하기도 한다고 주장합니다.

소수는 늘 다수보다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수가 소수에게 귀 기울여줄 때 변화는 더 빨리 시작됩니다. 힘 있는 백인들이 다수인 미 사회. 그에 반해 수입이 적은 직종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흑인과 히스패닉. 다수와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거대한 기업이 소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준다면, 새로운 변화를 더 빨리 끌어낼 수 있겠지요. 스프라이트와 맥도날드는 광고적인 멋을 내지 않았습니다. 다이렉트하게 흑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흑인들의 꿈을 얘기합니다. 광고적으로 매력 있는 콘텐츠는 아니지만, 스프라이트기에 맥도날드기에 콘텐츠는 힘을 갖습니다. 힘 있는 브랜드의 소수를 위한 이야기. 힘 있는 목소리는 더 멀리 갑니다. 더 넓게 퍼집니다. 그래서 힘 있는 브랜드들의 역할이 더 중요해집니다.


당신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13일의 금요일’이라는 영화는 시리즈까지 등장하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살인자인 제이슨 부히스는 늘 구멍이 숭숭 뚫린 이상한 마스크를 쓰고 등장하죠. 마스크는 공포의 상징이었습니다.


▲오길비 헬스의 Wear A Mas NY 캠페인 (출처: Esther Lastra 유튜브 채널)

어느 날 뉴욕주에 영화와 똑같은 마스크를 쓴 남자가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놀라서 그를 피하죠. 가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하고 멀리 돌아서 가기도 합니다. 택시도 그를 피하고, 사람들도 그를 피합니다. 그는 보통 사람의 담담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마스크는 사람을 불편하게 합니다. 나는 사람들이 마스크 뒤에 있는 평범한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기를 바랍니다. 평판이 나쁘긴 하지만 나는 절대 위험하지 않습니다. 나는 고양이도 키웁니다.’

사람들에게 소외돼온 남자는 시종일관 그의 억울함을 피력합니다. 하지만 반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이상한 마스크 때문에 피한 게 아닙니다. 제대로 마스크를 쓰지 않았기에 피한 겁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전염시킬 수 있는 구멍 뚫린 마스크이기에. 뉴욕주는 ‘마스크를 쓰는 것이 무서워 보일 순 있다. 하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은 죽음을 부를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인종차별 문제에, 코로나19바이러스에, 시종일관 심각한 콘텐츠 일색인데 반해 드물게 선보인 유머러스한 광고입니다. 광고를 제작한 오길비 헬스는 뉴욕의 젊은이들이 여전히 마스크를 쓰는 것에 무관심한 데 집중했습니다. 그들은 설교도 공포소구도 통하지 않기에 그들을 웃게 할 수 있는 콘텐츠로 접근했다고 합니다. 제이슨의 유머가 통해서 마스크를 쓴 사람에 대한 차별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무지도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멀어지고 있으나 가까워져야 하는 사람들

세계인은 세계인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락다운으로 여행이 어려워지면서 교류가 사라졌으며, 서로를 의심하고 배척하게 됐습니다. 모두를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잠재적인 존재로 여기게 됐습니다. 그래서 아시안들을 혐오하기도 하고, 인종차별을 서슴지 않습니다. 동시에 모두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진정성’과 ‘진지함’도 중요하나 모두가 진지하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유머가 더 큰 힘을 갖기도 합니다. 요즘 트로트는 이별의 아픔을 얘기할지언정 웃으면서 듣게 합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를 노래하면서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습니다. 어깨를 들썩이며 가사를 따라 부르며 노래에 등장하는 이의 기막힌 사연에 즐겁게(?) 동조합니다. 유산슬이 부르는 트로트 또한 그렇습니다. 정통 트로트 가수가 아니고 개그맨이라는 특징이 친숙함을 주기도 하지만, 쉬운 가사는 ‘합정역’의 의미를 새롭게 합니다.

모두가 트로트처럼 대화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세상이 복잡하니 대화마저 돌리지 말고 쉽고 직설적이게. 하지만 웃을 수 있게. 직설적인 대화는 내용은 분명하지만 그 태도 때문에 오해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웃을 수 있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비록 내용은 진지해도 웃으며 마음을 더 크게 열 수 있게.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