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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오란 레인코트에 검은 눈동자 잊지 못하네~ 다정하게 웃음지며 말없이 말없이 걸었네! 

뚱딴지같이 입안에서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빗속의 여인, 그 여인을 잊지 못하네~ 그런데 분명히 내가 부르고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부르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사람이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왠지 으스스하다. 시계는 오후 4시 근처를 가리키고 있고, 창밖 은행나무 우듬지 너머로는 먹구름이 사납게 몰려오고 있다. 금시라도 장대비가 쏟아질 기세다. 오전 내내 후텁지근한 것이 장마가 시작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노래를 멈추고 열린 창문을 닫는다. 흥얼거리는 노래가 몇 곡 되지도 않는데 유독 비와 관련된 노래가 많은 것이 무슨 까닭인지 아리송하다. (최헌의 가을비 우산속도 좋아하고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도 가끔 흥얼거리는 노래다.) 하지만 빗속의 여인-물론 나에겐 신중현 버전이 익숙하지만-은 언제부턴가 스산한 느낌을 발산하곤 한다. 이유는 단연코 살인의 추억일 것이다. 어둠이 내리고 추적추적 비 내리는 뚝방길 위로 흐르는 빗속의 여인은 영화 속에서 살인의 전조곡이다. 아니 이 노래가, 빗속의 여인이 살인마의 애정 노래라니~ 나의 장탄식에도 불구하고 노래는 머리털을 쭈뼛쭈뼛 서게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영화 이후로 빗속의 여인은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노란 레인코트에선 연쇄살인의 향기가 나기 시작했으며, 다정하게 웃음지며 걸어가는 그녀를 생각하면 감정 제로의 사이코패스가 겹쳐 보였다.(다정하다와 무섭다가 동일한 단어로 느껴지기도 하고...)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그 여인을 처키의 누나쯤으로 여겨지게 만들다니, 영화의 힘은 대단하다. 

드디어 빗줄기가 창문을 내리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밤이 온 듯 깜깜해졌다. 뉴스에서도 전국적으로 장마가 시작되었음을 상기시켰다. 특이한 것은 올 해 장마는 –장마도 평등해지기로 작정했는지- 전국 동시 개봉이라는 것이었다. 

정말 징글징글하게 비가 내린 해가 있었다. 80년대 후반쯤이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도 급기야는 조기 퇴근을 지시했다. 오전 근무만 마치고 부랴부랴 한강 다리를 건너 개봉동에 이르렀으나 버스는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었다. 아파트 저층들은 이미 물에 다 잠기고 교차로는 수로가 되어 온갖 세간들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멀리 고무보트를 저어 탈출을 시도하는 가족들도 보였다. 승객들은 모두 버스에서 내려 저마다의 방법으로 귀가를 도모해야 했다. 나는 안양천 뚝방길로 돌아가려 했으나, 안양천도 이미 넘쳐, 이제 광명시로 넘어가려면 물속에 뛰어드는 수밖에 없었다. 이판사판. 양복을 벗어던졌다. 턱 밑까지 차오른 물살 속을 허우적대며 10여 미터쯤 건너자 겨우 지표면에 발이 닿았다. 비는 세상이 끝난 것처럼 속절없이 퍼부어 대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 아파트 앞까지 도착했다. 6층까지 터벅터벅 걸어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정전이 되어 깜깜한 집에선 촛불들만 몇 개 기운 없이 흐느적거렸다. 거실 한 켠에서 아버지가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꺼내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요즘도 가끔 꾸는 악몽 중의 하나는 폭우 속에 집에 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꿈이다.)

기생충을 보고 왔다. 어디서 어떻게 박수를 쳐줄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폭우가 쏟아지는 장면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번에도 봉준호 감독은 비를 내렸다. 영화에서 비는 자본주의의 비극을 보여주는 결정적 도구로 사용됐다. 허우적허우적~ 자고로 비는 평등하게 내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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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