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사람들은 스키를 잘 탄다. 태어날 때 스키를 신고 태어났을 거란 소문도 있다. 스키를 못 타는 노르웨이 사람은 없다는 자부심으로 스키를 못 타면 덴마크 출신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덴마크 사람들로서는 불쾌할 법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스키에서 만큼은 그들을 이길 도리가 없다. 국토의 대부분이 평지이고 날씨도 스칸디나비아 반도처럼 춥지 않으니, 덴마크에서는 스키를 즐길 일이 별로 없다. 오히려 축구나 핸드볼이 강세다. 같은 북유럽인데, 동계올림픽에서 환호할 일이 적은 이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같다. 그들 역시 바이킹이라는 점이다(오히려 이 점에서는 핀란드가 예외다). 바이킹의 전성시대는 10세기 전후로 알려져 있다. 사실 그들의 영향력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보다 훨씬 크다. 힘이 세고 도끼와 망치를 자유자재로 휘둘러 대는 털복숭이 폭도들의 모습으로만 그들을 평가하다간 큰 코 다친다(사실, 말이 노략질이지 영국이나 프랑스 노르망디에 도끼들고 망치들고 그들이 출현하면 얼마나 무서웠을지 짐작이 간다.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한 어떤 바이킹 영화에서는 바이킹 여전사들이 수도승들을 거침없이 겁탈하고 그들의 물건을 잘라 펜던트로 목에 걸고 다니는 장면도 나온다). 잘 나갈 때 그들은 프랑스와 시칠리아를 거쳐 북아프리카까지 손에 넣었다. 그린란드를 정복하고 북아메리카까지 건너갔다고 하니 한때 바다란 바다는 죄다 휩쓸고 다녔다는 얘기다. 재미있는 설(設) 하나는 영국의 의회 민주주의도 그들에게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는 주장이다. 생판 없는 얘기는 아닌 것이 바이킹 부족들의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제법 민주적이었기 때문이다. 바이킹 부족들은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를 해결할 때 늘 부족끼리 모여 대화로 합의점을 찾는 관습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싸움만 하고 술만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대화도 좋아했다는 얘긴데... 사실 그들은 상술에 아주 능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어쨌든 이런 관습이 영국을 정복한 바이킹들에 남아 근대 영국의 의회 민주주의를 만드는데 일조했다니 믿거나 말거나이다.
영국을 정복한 바이킹들은 대개 덴마크에서 건너왔다. 이들 데인(Dane)족은 아주 오래 동안, 약 200년 가량 영국을 지배하기도 하고 서로 싸우기도 하는데, 얼마나 덴마크인들에게 핍박받았으면 그들이 영국을 떠나자 해방의 기쁨으로 덴마크인들의 무덤을 파내어 두개골을 발로 차고 다녔다고 한다. 그렇게 축구가 생겨났다고 하니 다음에 영국과 덴마크가 축구하면 한번 눈여겨 볼 일이다. 어쨌든 어느 나라나 이민족의 지배는 민초들의 생활을 힘겹게 한다. 가혹한 세금 징수는 그나마 있던 경작지를 간수 못해 수많은 농민들을 노예로 전락하게 만들었는데, 코벤트리 지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날이면 날마다 세금 올리는 데 혈안이던 코벤트리의 영주 레오프릭(데인족이라는 설이 우세하다). 그런데 그의 세금 인상에 반기를 든 여인이 등장했다. 그녀는 싱숭생숭하게도 그의 아내인 아름답고 아름다운 레이디 고다이바였으니, 그녀의 자애심에 전전긍긍하던 영주는 말도 안 되는 꾀를 내게 된다. 발가벗은 채 말을 타고 마을을 돌면 청을 들어주겠다고 한다(음, 정말 남편인지 남의편인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긴 하다). 어쨌든 아름다운 고다이바는 백작부인의 지위를 벗어던지고 나체로 마을을 돌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녀의 용기와 희생에 감명 받은 마을 농민들은 그녀를 위해 모든 창문을 가리고 그녀가 마을을 다 돌 때까지 그녀를 지켜준다. 물론 레오프릭은 결국 농민들의 세금을 감면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는 언제나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왜 그런지 미안하기도하다. 묘하다. 어젯밤 술 먹은 얘기처럼 아무렇지 않게 얘기가 꺼내지지 않는다. 그냥 딴 얘기 하다가 아닌 것처럼 모른 척 하듯이 툭 던지는 것이 예의인 것 같다. (내가 너무 감정이입이 됐나!) 그럼에도 벨기에의 한 사내가 과감하게 고디바라는 이름으로 초콜릿을 내놓는다. 물론 포장 위에 그려진 말에 타고 있는 그 여인은 레이디 고다이바다. 그 아름다운 숭고미를 기리고 싶은 마음이란다. 그리고 고디바는 세계적인 초콜릿 브랜드가 된다. 어떻게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든 이에게 축복을 주는... 아름다운 그녀를 자주 만나게 되는 2월이다. 초콜릿은 사랑이 맞다.
그나저나 바이킹은 정말 안 끼는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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