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1984>는 시간이 갈수록 놀라움을 주는 소설입니다. 1984년을 그린 소설을 읽다 보면, 1949년에 어떻게 이런 예측을 했는지 신기합니다. 모든 사람을 감시하는 ‘빅브라더’의 존재는 실제로 디지털로 현실화되었으니까요. 물론 소설 속 빅브라더와 달리 수많은 브랜드가 마케팅을 위해 수집하고 사용하는 정보에 불과하지만요. 하지만 내가 모르는 새, 누군가 나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는 건 그리 유쾌한 일만은 아닐 겁니다.
결국 우리는 참 쉬운 사람이 됐습니다. 몇시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언제 카드를 이용했고, 여가생활은 어떻게 보내고, 어떤 검색을 했는지. 모두가 어딘가 축적되고 있는 데이터가 됩니다. 브랜드는 당신을 더 잘 알기 위해 파고들고, 당신은 내 정보가 노출되는 게 꺼려져 늘 주의하게 되죠. 하지만 몇몇 브랜드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잘 이용하고 있죠. 데이터를 베이스로 혹은 알아낸 정보를 베이스로 위트를 만들거나 울림을 주기도 하니까요.
보드카의 저주
스웨덴의 보드카 브랜드, 스베드카 보드카는 할로윈을 맞아 소비자들이 가장 두려워 할 저주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름하여 “저주 비디오.”
인터넷을 하다 보면 구글로 검색하거나 방문했던 사이트가 곳곳에서 광고 배너로 뜨는 걸 볼 수 있죠. 쿠키 설정으로 가는 곳마다 따라오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닙니다. 스베드카는 사람들이 이 점을 매우 두려워(?)한다는 걸 캐치해냈죠. 그래서 저주 비디오를 만들게 됐습니다.
일단 저주 비디오의 ‘저주’에 걸리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보려는 영상을 클릭하면 꼭 뜨는 광고 콘텐츠. 스베드카의 저주 영상도 그렇게 프리롤 비디오로 제작됐습니다. 문제는 이 영상을 보는 순간 스베드카의 저주에 걸린다는 거죠. 이제 스베드카는 곳곳에서 배너 광고로 등장해 당신을 위협합니다. 게다가 당신의 동선에 따라 ‘맞춤 저주’를 보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보거나 영상을 보고 있다면, 그 모든 정보에 기반해 “나는 당신을 따라다닌다.”라는 메시지가 뜨는 겁니다. 게다가 지역을 기반으로 타겟팅되기에, 뉴요커에겐 ‘나는 뉴욕 곳곳에서 당신을 따라다닌다.’고 정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결국 저주를 풀려면 스베드카 사이트를 방문하고 그들의 기사나 뉴스를 SNS에 공유해야 합니다. 그러면 따라다니던 배너 광고의 저주가 풀리죠. 하지만 또 다른 눈 팔로워들이 공유된 글을 클릭하는 순간, 이 저주는 다시 반복된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할로윈을 맞아 사람들이 ‘진짜’ 두려워하는 존재를 캐치해 협박(?)하는 마케팅. 할로윈에 어울리는 위트 있는 저주입니다. 다만 짜증 난 사람들이 스베드카 보드카를 먹지 않는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버거킹 와퍼 주니어의 설득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어린 학생들 간의 폭언이나 괴롭힘이 많이 문제가 되고 있는 듯합니다. 버거킹은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공감하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말 그대로 ‘주니어를 폭행’하는 겁니다.
첫 번째 실험은 버거킹 매장에서 시작됩니다. 고등학생들이 모여 한 학생을 괴롭힙니다. 음료수를 햄버거 위에 쏟기도 하고, 팔을 꺾기도 하고 의자에서 넘어뜨리기도 합니다. 주위의 어른들은 눈살을 찌푸리기는 하나 어떤 조치나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
두 번째 실험은 버거킹 와퍼를 만드는 부엌에서 이뤄집니다. 이번엔 아이가 아니라 주니어 와퍼에게 폭행을 가하는 거죠. 주먹으로 쳐서 와퍼를 으깨 버립니다. 그리고 그 와퍼를 그대로 싸서 주문한 사람들에게 주는 거죠. 와퍼를 받아간 사람들은 자리에서 펴보고 경악합니다. 당장 와퍼를 들고 계산대로 와서 직원에게 항의합니다. 직원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매장의 고객들은 더 흥분하고 어이없어하죠.
버거킹은 두 실험의 결과를 밟힙니다. 고등학생이 괴롭힘을 당할 때 반응한 사람은 12%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괴롭힘을 당한’ 햄버거를 받았을 때의 반응은 반대입니다. 95%의 고객이 즉시 항의했죠. 강렬한 메시지입니다. 내가 먹을 거엔 그 어떤 폭행도 허용하지 않지만, 어린 학생이 폭행을 당하는 데엔 무심한 사람들. 버거킹은 어떤 ‘주니어’도 폭행을 당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폭행 예방의 달을 맞아 “No Bully”라는 단체와 협업해서 만든 버거킹의 메시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항의하고 어떤 상황에 침묵하는지 알기에 행해진 실험이며, 와퍼 주니어 하나로 만든 강한 메시지입니다.
필립스가 만든 가장 따뜻한 전기
세상에서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필립스는 전기를 만들기 위해 가장 바쁜 사람들을 찾아냈습니다. 각자의 집에서 아이를 위해 아침을 준비하고, 집안을 청소하고, 쉴 틈 없는 육아를 해야 하는 ‘엄마.’ 엄마는 이른 아침부터 늦게까지 쉴 새 없이 움직입니다. 필립스는 엄마의 바쁜 움직임을 의미 있게 기념하고 싶었습니다. 10월 엄마의 날을 맞는 아르헨티나, 필립스는 이 날을 위해 왕성한 엄마의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기로 한 거죠.
방법은 엄마들에게 특수한 신발을 신기는 겁니다. 깔창에 엄마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그 에너지를 모아 배터리에 저장하는 기능을 장착한 신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엄마들은 일상대로 아이들과 놀아주고, 밥을 차리고, 운동을 하고, 계단을 오르내리죠.
그들의 엄청난 에너지는 배터리에 저장됐고, 필립스는 그 배터리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10월, 엄마의 날. 그 전기를 모아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병원 신생아 병동을 밝혔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이 놓여있는 침대에 엄마의 에너지로 불이 켜진 거죠. 필립스는 이 전기를 ‘엄마의 에너지’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엄마를 정말 잘 아는 필립스. 그들다운 방식으로 엄마의 날을 기념했습니다. 엄마의 쉴 새 없는 하루가 따뜻하고 재미있는 에너지가 됐습니다.
당신을 가장 잘 알게 된 브랜드들
사실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브랜드들이 소비자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게 되었습니다. 실시간 데이터로 소비자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SNS로 즉각적인 반응과 라이프 스타일까지 분석할 수 있으니까요. 아우디는 영국에서 운전 상황을 반영해 실시간으로 바뀌는 빌보드 광고를 게재했습니다. 길이 막힐 땐, 아우디의 기능 중 하나인 위험을 감지하는 “Pre-Sense” 기능을 알리는 메시지를 게재합니다. 날씨가 궂은 날엔 콰트로 기능에 대해 얘기하죠.
아우디는 이런 궂은 비와 눈, 우박이 오는 날씨를 위해 고안되었다고. 상황에 맞게 즉각적인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교통 체증이나, 미끄러운 길을 달리던 운전자에게 가장 필요한 순간에 아우디의 메시지를 만나게 하는 거죠. 아우디는 이 광고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최초의 디지털 OOH라고 합니다.
소비자를 잘 알게 되면서 메시지는 더욱 뾰족해지고, 방법은 더 치밀해져갑니다. SF영화에 나오는 마케팅처럼 나를 너무 잘 알아 언젠가는 두려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론 나를 너무 잘 안다는 사실은 반갑지만은 않은 일이니까요.
결국 그 두려움을 없애며 다가가는 것도, 수많은 정보 중 유효한 데이터를 잡아내는 것도 마케터와 크리에이터의 몫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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