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저널리스트 다하라 소이치로는 그의 르포르타주형 저서 ‘덴츠’에서 정권과 연계한 여론 형성의 영향력을 지닌 광고회사, 덴츠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정치 역사를 보면 1955년 이후 대부분의 시기를 자민당이 집권했고, 자민당의 정치 PR을 덴츠가 담당했습니다. 당시 시대 상황을 살펴보면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저녁 시간대에는 시청률 높은 보도방송이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에 국민이 정부에서 발표한 정책을 수집할 수 있는 주된 정보원은 신문이었죠.
신문 조간에 정부 정책이 게재되면 덴츠 사옥 지하에 있는 스태프들은 각 가정에 전화를 걸어 우선적으로 정책에 대한 기사를 보았는지 물었는데요. 기사를 보았다고 대답한 사람들에게는 바로 정책에 대한 평가를 물었고, 기사를 보지 않았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에게는 기사를 보게 한 후, 정책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고 합니다. 나아가 정책에 대한 평가를 집계하여, 결과를 자민당에 전달하였고, 정책 평가가 좋은 경우에는 총리대신이 저녁 기자회견을 열어 정책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하고, 평가가 좋지 않은 경우에는 화법을 바꾸어 대응했습니다. 이는 1987년에 필자가 덴츠에 입사하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필자가 덴츠에 입사한 후 마케팅국에 배정되었을 때 바로 옆 부서가 정부담당 부서였습니다. 당시 정부 담당 부서에 조사 방법에 관해 확인했는데 일반적인 마케팅 리서치에도 사용되는 전화 조사시스템을 활용했다고 합니다. 실제 광고회사가 정부와 정책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광고회사의 정치 커뮤니케이션
일본은 1955년 이후 거의 자민당이 집권해왔는데요. 이런 정치적인 특수 상황에 덴츠는 일관되게 자민당을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광고 대행권을 모두 덴츠가 가지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부는 항상 광고주로서의 긴장감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존재였고, 비용 재원이 세금일 경우 엄정한 경쟁 PT를 통해 수주가 결정되었습니다. 2020년 도쿄올림픽 패럴림픽대회 및 과거 만국박람회를 담당하게 된 것도 정부로 지명이 아닌 에이스급 인재를 투입하여 엄정한 경쟁 PT로 수주한 결과입니다.
일본 정치 PR에서 커뮤니케이션 영역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되는데요. 정부, 정책, 내각, 선거 홍보입니다.
정부 홍보
행정부에 의한 홍보를 의미하며, 총리대신과 가장 가까운 기관인 내각부 홍보실이 각 성을 총괄하여 담당합니다. 각 성에서 홍보하고자 하는 정책안건이 있는 경우 내각부에 정부 홍보예산을 요청하여 홍보를 하게 됩니다.
정부 홍보의 목적은 정책을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소비세가 4월 1일부터 8%로 인상된다’ 든지 ‘마이넘버제도가 도입된다’ 등 국민의 생활과 관련된 정책 내용을 주요 미디어를 활용하여 전달합니다. 매스미디어 광고뿐만 아니라 TV와 라디오에 소재를 제공하여 방송을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인터넷상에서도 홈페이지에 게재하여 모든 정부 홍보 정보를 볼 수 있게 합니다.
정책 홍보
정권의 중요한 정책에 대해 국민을 이해하게 정책을 국민에게 주지시킴과 동시에 내각 지지율을 향상시키는 홍보 활동을 의미합니다. ‘소비세증세의 필요성을 전달하는 홍보’, ‘식량자급률향상을 위한 홍보’, ‘동일본대지진 복구지원을 호소하는 홍보’,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한 협조를 구하는 홍보’ 등을 예로 들 수 있죠. 이러한 홍보들은 담당 정부 기관이 확보한 사업비에서 홍보비를 받아 실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각 홍보
일본 내각관방 홍보실 담당업무로 총리대신 및 각료 대신의 기자클럽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설정하거나 총리대신이 이동 중에 멈춰서 짧은 인터뷰에 응하는 자리를 마련하거나 수상관저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활동 등을 말합니다.
수상 관저에는 상시 각 언론사의 정치담당 기자가 상근하고 있으며 총리대신 및 정부 요직에 있는 인물들을 지켜보며 뉴스거리를 찾고 있어 정권 입장에서는 무료로 정책을 PR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죠.
이러한 인터뷰 코멘트 영상은 뉴스 중에 몇 초 동안 소개되는 경우가 많아 정보를 발신하는 총리대신 등의 경우에도 짧은 캐치프레이즈나 키워드로 대답하도록 연출되는데요. 이러한 연출을 위해 정부가 직접 PR에 정통한 인재를 확보하거나 정치가가 개인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을 컨설턴트로 고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광고회사가 진행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 외에 주로 정당과의 관계가 있는 광고회사는 정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되는 내각 지지율을 모니터링하고 그 요인을 분석하며, 내각 지지율 향상 방안에 대해 고민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 유권자들의 평가가 떨어졌으므로 여성층에 대한 PR을 강화합시다’ 같은 제안을 하여 안정된 정권운영을 돕습니다. 자민당 측에서도 매일 다양한 상담 및 조사의뢰를 보내오는데요. 이것이 정권 여당을 담당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작업으로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세금이 아니라 정당의 자금으로 지급니다.
선거 홍보
당의 정책을 정리한 매니페스토 작성을 돕거나 당수가 등장하는 TV CM 제작, 후보자 신문광고, 거리연설, 데일리 정세분석 등을 지원하는 활동입니다.
매니페스토 작성 시 정당이 싣고자 하는 정책과 국민들이 환영하는 정책에 차이가 존재하므로 광고회사는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매니페스토를 마련하기 위해 지원합니다. 이때 발생하는 매니페스토 제작비 및 조사비 등의 비용은 정당이 부담하죠.
일본에서 선거기간이란 후보자 공시가 이루어진 이후 투표일까지의 2주간을 일컫는데요. 현재 일본에서는 인터넷 선거가 허가되지 않아 2주간의 선거기간 동안 정당과 후보자가 인터넷에 글을 게시하거나 메일을 발송하는 등 인터넷을 활용한 선거활동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이 유효한 기간은 투표 2주 전이므로 선거 시행과 예정일이 정해지고 난 후 공시일까지 통상적으로는 1개월가량은 정당 홈페이지에서 정보 발신이 가능합니다. 향후 인터넷 투표가 가능해지게 되면 젊은 층이 선거에 참여하게 되기 때문에 인터넷 선거전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또한, 선거공보 방법도 바뀔 것이라 기대됩니다. 이러한 환경에 대한 대책을 제안하는 것도 광고회사에 기대하는 역할입니다.
선거연설 시에도 광고대행사는 총리 및 주요 각료 선거연설 수행팀을 결성하여 연설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과 함께 연설이 인터넷상에서 어떠한 평가를 받고 있는지 컴퓨터로 실시간 분석하는데요. 예로, 반발이 많은 표현 방식은 지양하고 더욱 호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표현 방식을 제안합니다. 인터넷에 작성한 글을 분석한 결과는 다음 장소 연설에 활용하기도 하죠.
앞으로 정치에 인터넷 선거가 도입되어 정치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게 될 경우 실시간 대응에 대한 요구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정책을 자기 일처럼 여기게 하는 PR기법
정부는 때때로 소비증세와 같이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정책 또는 원자력발전소 재가동과 같은 여론의 찬반이 나뉘는 정책도 시행해야 하므로 정책에 대해 국민들을 이해시키고 지지를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각 정책에 대해 국민이 자기일처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활동을 추진해야 하는데요. 이 부분에서 광고회사가 활약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덴츠PR은 국민들이 정책에 대해 자기 일처럼 여길 수 있도록 ‘PR IMPAKT’라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는데요. IMPAKT란 Inverse(역설, 대립구조), Most(최상급, 최초, 독자), Public(사회성, 지역성), Actor/Actress(연기자, 정), Keyword(짧은 말, 숫자), Trend(시류, 세상, 계절성)의 여섯 가지 방법의 앞글자를 딴 것입니다.
이 기법은 특정 문제를 어떻게 자기 일처럼 여기게 하냐에 대해 전문가팀이 과거 사례 및 소비자 인사이트에 근거하여 모델화한 방법으로, 정부 대응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면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내각 지지율 상승을 위한 ‘민의’ 컨트롤
어느 나라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의를 컨트롤해야 한다’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최근 십수 년 동안 사회의 다양한 움직임과 조직력이 약해져 사회의 안정성이 점차 약화되는 ‘민의의 액상화’ 현상이 위협 요인으로 두드러지고 있는데요. 영국의 EU 탈퇴에 대한 국민투표,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 등 대부분 전문가의 예측이 빗나갔으며 전 세계가 우려하던 결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토대학의 사토 타쿠미 교수는 민의에도 ‘여론(輿論)’과 ‘세론(世論)’이라는 두 가지 타입이 있다고 주창했는데요.
첫 번째 ‘여론(輿論)’은 이해력과 판단력이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판단을 의미합니다. 이에 반해 ‘세론(世論)’은 상황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고 있지 않더라도 감정이나 주변 분위기를 바탕으로 내리게 되는 판단입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사회의 충분한 논의 없이 이루어진 ‘세론’이 민의를 대신하여 국민의 의견으로 포장되기도 했습니다. 국민들은 정확한 정보를 이해하고 고려한 후 최적의 판단을 내리기보다 이해의 용이성, 이미지, 주변과의 동조로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민의의 액상화’라 부르는데요. 정책 홍보를 담당하는 사람은 ‘액상화된 민의’와 진정한 여론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여론을 반영한 정치 PR이 궁극적으로 민의를 컨트롤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표면적인 반응과 본심을 파악하여, 특정 정책이 지지율 저하를 초래할 리스크가 있는 정책인지에 대한 사회의 ‘분위기를 사전에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 인지(해당 정책에 대해 알고 있는지), 전체 찬반, 본인의 찬반까지 세 가지 포인트 파악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세 가지 포인트를 질문 후에 전체 찬반과 본인의 찬반 사이에 큰 차이가 없더라도 본인이 반대하는 정책이 있으면 이러한 정책을 수행하게 되면 지지율 저하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즉 표면적으로는 찬성처럼 보이지만, 막상 선거를 진행하면 반대할 가능성이 높은데요. 그 때문에 이 그룹들의 시계열적 추이 파악이 중요합니다. 정책에 대한 국민의 합의사항을 시계열적으로 파악하고 리스크를 사전에 대응하는 것도 ‘민의의 액상화’에 대처하는 한 가지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정치에 요구되는 ‘새로움’
2009년에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면에는 ‘커뮤니케이션 회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옴니컴 그룹 산하에 있는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회사, 플레시먼 힐러드 재팬(FleishmanHillard Japan K.K.)입니다. 해당 회사는 매니페스토를 작성하여 선거전을 치르는 것을 야당게 알려준 곳입니다.
지금까지 선거를 통해 제시하는 정책을 ‘공약’이라고 불렀는데요. ‘공약’은 후보자가 당선되었을 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약속’인 반면, ‘매니페스토’는 정책 항목과 함께 달성해야 하는 ‘기한과 수치적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매니페스토는 공약의 실현을 더욱 리얼하게 약속하는 것이죠. 매니페스토의 등장은 정치에 새로움을 가져와 정권교체를 실현하였습니다.
국민은 항상 정치에 ‘새로움’을 요구합니다. 상품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 그 이상의 임팩트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죠. 특히 정치에서의 새로움은 더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니페스토 선거와 같이 낡은 정치와의 차별점을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다면 정권교체도 실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선거가 본격화되면 새로운 세대에게 정치 이미지를 제공하기 위해 정당의 정치 리뉴얼이 실현될 것입니다. 이제 광고회사가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맡게 되는 최대의 사명은 바로 새로운 정치 이미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광고&마케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단한 청춘을 응원하는 광고 캠페인 사례 – 대한항공, 포카리스웨트 外 (0) | 2017.11.08 |
---|---|
데이터를 활용한 위트와 울림, 당신을 너무 잘 아는 사람들 (0) | 2017.10.31 |
선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 line이 돋보이는 파일럿, 델몬트 광고 사례 外 (0) | 2017.10.12 |
절묘한 만남 (0) | 2017.09.28 |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이 광고가 된다, 음성 인식 기술 발전이 가져온 새로운 광고 마케팅의 세계 (0) | 2017.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