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1년의 휴식시간이 주어진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할 계획인가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지 않나요? 실제 영국을 비롯한 유럽, 미국 등에서는 대학 진학 전 1년간의 유예기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갭이어(Gap Year)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낯설지만 설레는 갭이어에 대해 알아봅니다.
말리아 오바마, 윌리엄 왕자, 엠마 왓슨의 공통점은?
최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딸 말리아 오바마가 '갭이어'를 가져 화제를 모았습니다. 말리아 오바마는 하버드 입학 전 1년간의 갭이어 기간을 이용해 영화 제작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는데요. 말리아 오바마가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는 영화제작사는 잉글리쉬 페이션트, 굿 윌 헌팅, 시카고 등의 영화들을 기획·제작해온 회사입니다.
영국의 윌리엄 왕자 역시 대학 입학 전 갭이어를 가졌습니다. 그는 이튼학교를 졸업한 2000년에 남아메리카 벨리즈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칠레 파타고니아에서는 10주간 영어교육봉사자로 활동하며 뜻깊은 1년을 보냈습니다. 윌리엄 왕자가 다녀간 후 프로그램 인기가 급증했다고 하네요.
영화 해리포터에서 헤르미온느 역을 맡았던 엠마 왓슨 역시 브라운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갭이어를 가졌습니다. 평소 패션에 관심이 있던 엠마 왓슨은 친환경과 윤리를 추구하는 영국의 패션전문업체인 피플트리(People Tree)에서 일하며 왓슨 컬렉션을 직접 디자인했는데요. 그녀는 이 기간에 의류제조공장이 있는 방글라데시를 방문해 노동자를 만나며 '공정무역'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직접 느끼고 이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갭이어
말리아 오바마, 윌리엄 왕자, 엠마 왓슨이 가졌던 갭이어는 고등학교 졸업생이 대학 진학에 앞서 한 학기 또는 1년간 여행을 하거나 봉사활동, 인턴 등 사회경험을 쌓으며 진로를 모색하는 기간을 말합니다.
갭이어는 영국에서 시작됐습니다. 1967년 자선기관 프로젝트의 봉사교육을 위해 3명의 봉사자를 에티오피아에 보낸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제도화 되었는데요. 덕분에 영국 학생들은 중등 교육을 마친 후 대학 입학이나 취업 전에 휴식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죠.
이후 갭액티비티프로젝트라는 단체가 생기면서 갭이어는 유럽 여러 나라로 퍼지기 시작했고, 최근 들어서는 유럽을 넘어 미국 등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국갭협회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의 갭이어 학생은 전년보다 22% 증가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JTBC 토론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의 출연자인 타일러 라쉬를 통해 소개되었습니다. 타일러 라쉬는 이 프로그램에서 "아이비리그인 다트머스대학교(Dartmouth College)는 신입생들에게 입학을 일 년 늦추고 갭이어를 보낼 수 있도록 했다"며 "사립대학 터프츠대학교(Tufts University) 역시 '1+4' 프로그램을 통해 합격자들에게 1년 동안 자원봉사를 하거나 다른 일을 경험할 수 있도록 3만 달러 이상을 지원한다"는 점을 언급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갭이어, 떠나고 일하고 봉사하라!
그렇다면 갭이어 기간 학생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까요? 학생들이 갭이어 기간 가장 많이 선택하는 활동 중 하나는 '여행'입니다. 미국갭협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85%가 갭이어 기간 동안 여행이나 해외 인턴십, 그리고 해외 봉사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여행과 직업 경험을 함께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Working Holiday)'도 갭이어 기간을 활용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또한, '오페어(au pair)'라는 프로그램도 널리 알려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오페어(au pair)는 프랑스어로 '동등하게'라는 의미로, 외국인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그 대가로 숙박과 일정 급여를 받는 프로그램입니다. 숙식을 받는 대신 농장 일을 거들어 주는 '우프(WWOOF, World Wild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라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1971년 영국에서 시작된 우프는 가난한 여행자들을 위해 처음 시행되었는데요. 현재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와 같은 농업이 주요 산업인 나라에서 활성화되어있죠.
한국만 있다! 직장인 갭이어족
국내에서 갭이어는 해외와는 조금 다른 문화로 형성되고 있습니다. 갭이어를 원하는 연령층이 대학 진학을 앞둔 학생들이 아니라 사회초년생들로 연령이 늦춰진 것인데요. 국내에서 갭이어는 퇴사 후 자아 발견을 위해 잠시 쉬는 기간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갭이어족'으로 불리는데, 취직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20~30대 직장인 중 직장을 그만두고 갭이어에 나서는 이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혹독한 입시에 연이은 취업 경쟁에 시간을 보낸 젊은 세대가 뒤늦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적성을 찾아가는 모습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와 더불어 올바른 퇴사를 도와준다는 '퇴사학교'까지 생기며 '한국만의 독특한 갭이어 현상'이 하나의 이슈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직장인 갭이어족 프로젝트 (feat. 한국갭이어)
▲ 한국갭이어 홈페이지(출처 : www.koreagapyear.co.kr)
국내에서 갭이어족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 중 하나로 한국갭이어가 있습니다. 한국갭이어는 국내 청소년과 청년들이 자신만의 삶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34여 개 국가의 220개가 넘는 갭이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요. 특히 국내 갭이어의 특성에 맞춰 '직장인'에 포커스를 맞춘 '직장인 갭이어 추천프로젝트 TOP 9', '직장인 갭이어 1:1 컨설팅' 같은 프로그램 구성·제공합니다.
한국갭이어의 모든 프로그램에는 공통으로 네 가지 요소가 들어가 있습니다. 바로 참가자의 자율성 보장, 진로 중시, 과정의 중요성 강조, 현지에 직접 방문하여 만들어진 엄선된 프로그램 등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갭이어는 자칫 이직이나 취업을 위한 수단이 되거나 경제적인 여유를 담보로 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새로운 경험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쌓고, 더욱 넓은 세계를 경험해보자는 갭이어의 본래 목적입니다. 다시 말해 갭이어는 단순한 이력서 스펙 한 줄이 아닌 진짜 자아를 찾으며 성숙해지는 시간이어야 한다는 사실이죠. 스펙, 이력서 모두 내려놓고 잠시 나를 돌아보며 진정한 만족감을 경험하는 1년, 여러분도 한번 가져보는 것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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