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헤어지는 슬픔에
술을 과하게 마신 그 날
이 현 종
대표 CD - Chief Creative Director / jjongcd@hsad.co.kr
그래도 감정에 솔직해야 한다면,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다. 헤어지는 것이 내 잘못은 아니지만 마음이 계속 편치않은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엔 커피를 마시며 오랜만에 깨끗해진 하늘에 기분이 좋아지려는 찰나 또 다시 그 놈의 멜랑콜리가 안개처럼 밀려왔다. 멜랑콜리는 슬픔과에 속하는 감정이지만 원인이 분명한 슬픔들과는 갈래가 다르다. 아니 멜랑콜리라는 말은 좀 거창한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어둑한 카페에서 취기 오른 여자의 머리 위에 일렁였다 사라지고 또 일렁였다
사라지는 조명을 하릴없이 바라볼 때의 그 허탈한 비애감 같은….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이 책의 제목을 떠올릴 때면 늘 치매 테스트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에서도 알 듯 모를 듯 묘한 슬픈 감정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 제 1년에 들어있는 ‘르 말 뒤페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다.
…“Le Mal du pays. 프랑스어예요. 일반적으로는 향수나 멜랑콜리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전원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 정확히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에요.”…
정확히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아니 말이라는 도구 자체가 어찌 감정의 빛깔들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음악은 말 이전의 언어다. 더 본래적이며 때로는 인간으로 건너오기 이전의 것들과 연결시켜 주는 다리가 되기도 한다. 어찌됐든 나도 음악을 하는 재주가 있었으면 우리의 이별을 말보다는 음악으로 되새겼으리라. 나의 재주가 모자라니 오랜 인연을 선사해 준 그대에게조차 쭈뼛쭈뼛 머리만 긁적이며 술잔만 기울이고 있으니 실로 패장의 모습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날, 그대 눈을 쳐다보기도 어려워 술잔만 만지작 만지작거리다 홀라당 목안으로 집어넣고, 집어넣고…… “이렇게 헤어지는 것이 어디 우리뿐이겠니”가 나을지 “그래도 내 맘 알지”가 나을지를 계산하다 그냥 그대 앞에 고꾸라져버린 그 날, 그리고는 그대를 온 몸으로 껴안고 잠이 들어버린 그 날, 그 날이 그대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 돼버렸으니. 아! 이 어둑한 슬픔이여.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그대의 온기여….
종이로 된 우리 회사 사보가 사라지고 이젠 온라인으로만 만날 수 있게 된다. 삼십 년 가까이 사보가 나오면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아두던 나의 의식과도 이별이란 뜻이다.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변화와 미래를 찬양하기에는 종이들과의 인연이 너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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