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의한, 음악을 위한 휴가의 후기
Ultra Europe + Tomorrowland
이 유 진
디지털플래닝1팀 대리 / eg@hsad.co.kr
우리나라 직장인에게 있어 여름휴가란 말 그대로‘ 휴식’을 취하는 목적의휴가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여름휴가란 즐길 것 투성이의 바쁜 나날일 것이다. 국내에서는‘ 울트라코리아’
·‘지산벨리락페스티벌·‘펜타포트락페스티벌’이 연속적으로 열리고, 일본에서는‘ 후지락페스티벌’을 비롯해‘ 슈퍼소닉’ 등의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아무래도 여름인 만큼 록과 EDM 장르가 대부분이다. EDM의 본고장인 유럽 역시 예외가 아니다. 네덜란드 하이네켄 ‘센세이션’을 시작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울트라’ 페스티벌로 한껏 고조된 축제 열기는 벨기에의‘ 투모로랜드’를 통해 완전히 증폭된다.
여름의 태양이 가장 뜨겁고 길다는 8월, 그 열기만큼이나 뜨거운 유럽의 음악축제 현장에 다녀온 후기를 공유해 본다.
Ultra를 위한 도시 Split에서 펼쳐진‘ Ultra Europe’
<꽃보다 누나>로 인해 우리나라 관광객 수가 훨씬 많아진 크로아티아의 남부 끝자락에는 아드리아해의 훈풍이 물씬 느껴지는 도시 스플리트(Split)가 자리 잡고 있다. 7월 마지막 주는‘ 크로아티아 뮤직 위켄드(Croatia Music Weekend)’로, 스플리트 전역이 울트라(Ultra)사인으로 물들여진다. 택시를 타고 폴리우드 스타디움(Poljud Stadium, 우리나라의 잠실주경기장 같은 곳)으로 가달라고 하자‘ 울트라에 가나요?’라는 질문을 던져온다. 그렇다고 하자 자기도 저녁에 부인과 간다며 바로 택시 안에서 그날 라인업의 음악을 틀어주는 센스! 연세 지긋하신 기사 분이라‘ 울트라를 알까?’라고 생각했던 나를 새삼 부끄럽게 만들었다.
어떤 행사든 첫날과 마지막 날은 가장 중요한 법! 하지만 유럽의 여름은 우리나라보다도 더 날씨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인 탓에 첫날은 기상악화로 취소됐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둘째 날을 기다렸다. 처음에는 체력 비축을 하고자 좌석에 앉아 라이브셋을 구경했는데, 특이한 점은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부모님 세대, 또는 가족이었다는 점이다. 가족이 EDM 축제를 즐긴다니! EDM 장르만 틀면‘ 씨끄럽다!’고 소리 지르는 전형적인(?) 한국 부모님을 가진 내겐 신선한 문화충격과도같았다.
저녁으로 무르익자 울트라 유럽은 마치 초대형 하우스 파티와도 같은 형태로 변해갔다. 드럼엔 베이스의 본고장 영국 출신의 DJ 네로(DJ Nero)의 하드스타일, 공부 잘하게 생긴 네덜란드 듀오 W&W의 트랜스와 하드스타일, 그리고 우리나라 대기업 박 모 회장님도 좋아하신다는 웅장한 플레이의 대가 데드마우스(DeadMau5)의 등장을 예고했지만, 오전 3시를 넘어가자 쏟아지는 잠을 참지 못하고 캠프로 돌아갔기에 보지는 못했다. 울트라 캠프가 세팅된 곳은 폴리우드 스타디움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한 오미스(Omis). 해변과 모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휴양 도시다.
아침 10시부터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때문에 게으를 틈이 없었다.
졸린 눈을 부비는 순간에도, 샤워하는 순간에도, 셔틀을 타고 폴리우드 스타디움으로 이동하는 순간에도 스피커는 빵빵하게 울려대고 있었다. 특이한 건 이곳에도 나름의 질서라는 것이 존재해 누군가가 먼저 플레이를 시작하면 그 플레이가 끝날 때까지 자신의 음악을 틀지않는다는 점. 유럽인들에게 EDM은 우리나라 K팝 같은 개념이어서, 아직 ‘이알못(EDM을 알지 못하는)’ 동양인에겐 나름 공부를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트랜스에도 프로그레시브·하드·애시드 등등 수많은 장르가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날 얻은 결론은 장르와 관계없이 내 귀에 좋으면 그만이라는 것.‘ 이알못’을 탈출하고 싶어 캐물어보며 파악한 나의 취향은 힙합을 베이스로 하는 하드스타일과 레게를 접목한 뭄바톤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음악의 본질은 듣는 이로 하여금 기분 좋게 하는 데 있지 않나’라고 생각하지만 굳이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파악하고 싶다면 위키피디아에서 ‘내 귀에는 좋은’ 음악을 찾고, 해당 음악의 프로듀서나 DJ를 찾아 그들이 추구하는 장르를 파악하면 된다.
셋째 날은 울트라유럽의 대미를 장식하는 화려한 라인업으로 구성돼 있었다. 현재 가장 핫하고 몸값 높다고 알려진 저명한 젊은 3인방 아프로잭(Afrojack)·마틴 게릭스(Martin Garrix)·하드웰(Hardwell), 그리고 노익장 파워를 과시하는 데이비드 게타(David Guetta가 골든타임인 9시부터 새벽 5시까지를 꽉 잡고 사람들을 붙들었다. 한국의 울트라에서는 잠실종합경기장이 반 정도 차는 모습만 보다 이곳에 와서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모습을 보니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누가‘ 떼창은 한국의 전유물’이라 했던가! 유럽인들은 떼창과 더불어‘ 떼안무’까지 선보이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음악 사랑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마지막 날 이후에는 흐바르(Hvar) 섬에서 울트라비치(Ultra Beach) 파티가 열린다고 예고됐다. 하지만 시간이 빠듯한, 휴가를 간 한국의 직장인 입장이라 흐바르 섬에게는 아쉬운 작별을 고해야만 했다.
유럽의 모든 부자들이 몰린다는 섬 흐바르, 그리고 가는 내내 파티가 열린다고 하는 울트라 세일보트(Ultra Sailboat), 이 두 가지를 누려볼
수 있는 기회가 언젠가는 있길 바라며 아쉬운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투모로랜드(Tomorrowland)’가 열리는 벨기에 브뤼셀로 이동했다.
Live today, Love tomorrow, Unite forever@Tomorrowland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디즈니랜드(혹은 도쿄 디즈니랜드)만한 규모에 무려 16개의 스테이지와 약 30개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모션 공간, 1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캠핑 공간 드림빌(Dreamville), 그리고
레스토랑·베이커리·카페·샤워실·호수공원, 실제로 탈 수 있는 놀이기구까지 한데 모여서 이렇게 위대한 축제가 될 것임을!
2005년, 음악을 좋아하는 네덜란드의 25살 청년 세 명이 모여 시작된 투모로랜드는 이제 EDM 축제를 대표하는 축제가 됐다.‘ 돈이 있어도 못 가는 축제, 인생에 한 번쯤은 가야 하는 축제, 한 번도 못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는 다양한 수식어를 가진 이 축제의 또 다른 별명은‘ 버킷리스트 축제’이다. 스탠딩석의 경우 티켓세일에 제한이 없는 여타 축제와는 달리 정확하게 주어진 인원으로 제한을 둔다.‘ 한정상품’의 경우 더 빨리 품절되는 것처럼 투모로랜드도 글로벌·벨기에 등 두 가지로 나뉘어 진행되는 티켓팅임에도 5분이면 전석 매진된다. 메인 행사는 3일간 진행되지만, 캠핑이 진행되는 드림빌은 메인 행사전 1일, 메인 행사 후 1일을 포함해 총 4박 5일간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첫날은 드림빌 입구에 마련된 공간에서 웰컴홈(Welcome Home)이라는 큐싸인과 함께 약 10분간의 디제잉과 불꽃놀이를 선사한다. 이 외에도 이미 현장 곳곳에서 울려 펴지는 음악소리와 온갖 나라의 음식들, 그리고 투모로랜드 역사와 굿즈를 구경하는 데 하루가 충분히 지나간다. 드디어 22일, 행사 첫날 낮 12시. 메인 스테이지는 MC의 진행과 함께 데이브레이크 세션(Daybreak Session)으로 사람들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무리하지는 말자’는 생각에 16개의 스테이지를 돌아다니며 특성 파악부터 하고자 메인 스테이지를 과감히 스킵! 어차피 주요 DJ들은 8시부터 등장하는 라인업으로 알아서 잘 짜여 있으니 낮 동안은 돌아다니는 스케줄로 구성해도 충분하다. 경고(?)하건대 투모로랜드에 자신을 더욱 찬란하게 빛내줄 아이템(원피스나 하이힐)을 걸치고 올 생각은 아예 버릴 것. 드림빌에서부터 스테이지 입구까지 정확히 도보 25분,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보이는 스테이지 13번에서 1번까지 도보 45분, 인파를 헤치고 온갖 유혹을 물리치며 한 바퀴 도는데 약 한 시간 반 가량 걸린다.
그런데 큰 규모의 행사인 만큼 한 바퀴 돌고 나면 손 안에 온갖 기업들의 프로모션 물품들이 가득하게 됨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정말 행사에 쓸 만한 제품들(선글라스·귀마개·맥주·선크림 등)이 주어진다는 것.
스테이지 예습 후 간단히 식사를 하고, 첫날이니만큼 하이라이트가 빵빵하게 준비돼 있을 것을 기대하며 메인 스테이지로 향했다. 마틴 게릭스 이전 빅룸의 선두주자라고 불리는 캐나다 듀오 덥스(DVBBS)의 열정적 플레이로 시작해 울트라유럽에서도 마주한 W&W 데이비드 게타가 무대를 이어갔고, 울트라유럽 첫날 라인업으로 예고돼 있었지만 취소로 인해 못 본‘ 차세대 스웨디시 깡패’라고 불리는 알레소(Alesso), 트랜스 DJ계의 끝판 왕이자 전설로 불리는 아민 반 뷰렌(Armin Van Buuren)이 그야말로
완벽하게 화려하고 웅장한 오프닝을 장식했다.
새벽 5시에 마지막 무대가 끝나는 울트라와 다르게 투모로랜드의 모든 스케줄은 1시면 끝. 아쉬움이 남은 투모로랜드인들은 드림빌에 와서
준비해온 스피커와 디제잉 셋을 틀어놓고 그들만의 애프터파티를 이어나갔다.
둘째 날인 23일 아침, 텐트 배정과 함께 전달 받은 분리수거 봉투(유럽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분리수거에 철저했다)에 쓰레기를 담아 버리고, 매일 아침 전달되는 투모로랜드 조간신문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조간신문에는 그날의 DJ들을 소개하는 인터뷰와 스테이지에 대한 소개가 있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스테이지 투어 코스를 짤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22일과 마찬가지로 낮에는 투어, 저녁에는 메인 스테이지를 가는 코스를 큰 그림으로 짜고, 아무래도 광고인인 만큼 낮 동안에는 스폰서드 스테이지(Sponsored Stage)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스폰서드 스테이지는 크게 3군데가 있다. 자동차 브랜드 마쯔다(Mazda), 럼 베이스의 주류인 큐바니스토(Cubanisto), 그리고 홍차음료 브랜드 립톤(Lipton)의 스테이지 등이다. 마쯔다의 스테이지는 ‘Mazda Sound of Tomorrow’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데, 촉망 받는 신인 DJ들을 세우는 스테이지라고 한다. 투모로랜드에 세 번째 왔다는 한 관객에 따르면 마지막 날 메인 스테이지에 서는 마틴 게릭스도 이 스테이지를 거쳐 갔다고 하여 더욱 관심 있게 살펴보았다. 투모로랜드 관객들은 재방문자들이 많아 처음 온 이들에게 선배의
입장으로 친절한 설명과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특성이 있다. 이후 방문한 립톤 스테이지에서는 고고댄서의 가이드와 함께 호수 양쪽으로 배치된 무대에서 춤 대결이 펼쳐지는 진풍경을 선사했다. 힙합과 R&B가 적절히 섞인 음악, 호숫가 양쪽에서 뿜어지는 미스트 가운데서 신나게 벌어지는 춤판은 그 누가 봐도 절로 흥겨워지기에 충분했다.
큐바니스토의 무대는 상당히 끝에 위치해 있었는데, 정확히 어떤 컨셉트인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큐바니스토라고 해서 레게를 기대했으나 하우스 음악 위주로 흘러나왔지만, 그마저도 딱히 흥겹지는 않았던 것 같아 잠시 드럼 & 베이스 스테이지인 스타워즈(Starwarz)로 향한 뒤 메인으로 다시 이동했다.
둘째 날의 메인 스테이지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조합의 연속. 왜 더 많은 돈을 내고 투모로랜드를 오는지 완벽하게 이해가 되는 라인업이었다. 쿼터인도 혼혈 DJ 카슈미르(DJ KSHMR)를 시작으로 #Selfie 트랙으로 단번에 유명해진 체인스모커스(The Chainsmokers) 가 등장하더니 투모로랜드 시초부터 함께한 와이베스 V(Yves V), 이젠 30대에 접어들었지만 신동소리깨나 듣던 니키 로메로(Nicky Romero)가 열기를 달궜다. 이어서 아프로잭·디미트리 베가스 & 라이크 마이크(Dimitri Vegas& Like Mike), 악스웰^잉그로소(Axwell^Ingrosso)로‘ 완전 미쳤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모든 DJ들을 일일이 설명하기엔 지면이 제한적이므로 다음 기회에…. 대망의 마지막 날, 투모로랜드 조간신문을 읽는 여기저기서‘ 아쉽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축제가 끝나서 아쉽기도 하지만, 첫째 날 둘째 날 만큼의 매력적인 라인업이 딱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날만큼은 개인적인 관심으로 지켜보고 있는 DJ들의 스테이지를 찾아보는 것으로 동선을 짰다. 10년 전부터 좋아해왔던 프랑스계의 DJ 레이블인 에드 뱅어 레코드(ED Banger Records)가 플레잉하는스테이지와, 힙합을 믹스한 하드 스타일을 추구하는 바롱패밀리(Barong Family)가 플레잉하는 스테이지를 오갔다.
특이한 점은 이 두 곳에 투모로랜드를 찾은 얼마 되지 않는 한국인들이 몰려있었다는 것이다(한국인들은 전체 약 20명 가량 왔다고 한다,
동양인들 중에서도 최소 인원). 순간 음악적 취향에도 국민성이 반영되나 생각했을 정도. 겉늙은 외국인들만 보다가 다들 너무 앳돼 보이는 극강 동안 유전자를 지닌 한국인들을 만났는데, 사실은 대부분 30대 초중반에 접어든 분들이었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같은 나이 또래를 만났다는 점이 나름 큰 위로로 다가왔다.
마지막 날의 메인 스테이지에는, 개인적으로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시아계 DJ로서는 유일무이한 스티브 아오키(Steve Aoki),
이제는 전 세계의 아이들 교육을 위해 더 힘쓰는 모습을 보이는 전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의 멤버 스티브 안젤로(Steve Angello),울트라
유럽에서도 만난 천재소년 마틴 게릭스, 둘째 날에도 무대에 선 디미트리 베가스 & 라이크 마이크가 또 등장했다.‘ 마지막 날인만큼 불태우자!’는 마음으로 끝까지 즐기도록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12시가 되자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무대가 종료되며 투모로랜드가 끝났음을 알렸다. 드림빌로 돌아오니 나처럼 아쉬운 마음을 가득 지닌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투모로랜드 라디오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맡기며 그들만의 애프터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함께 하고 싶었지만, 당장 다음날이면 공덕동으로 돌아가고 2주 전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텐트로 가서 서둘러 잠을 청했다.
약 2주간의 논스톱 음악축제를 거치며 내린 결론은‘ 또 가고 싶다’였다. 7월은 유럽 전역이 음악으로 물드는 달이기에 이번 사보에 언급한 것처럼 ‘울트라 유럽+투모로랜드’ 코스 외에도 다양하게 짤 수 있는 코스들이 있다. 그러나 EDM을 좋아한다면 인생에 한 번쯤은 투모로랜드에 가보는 스케줄을 꼭 넣어서 유럽투어를 짜기를 추천한다.
나이와 인종과 성별을 넘어 모두가 하나가 되는 유일무이한 공통 관심사인 ‘음악’ 속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음악을 좋아하는 다른 Ad인들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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