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nitive Cooking’
徐 敬 宗
ProjectxT팀 부장 / marstour@hsad.co.kr
광고만큼이나 요리에서 창의성은 중요하다.
셰프들이 일반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재료의 조합이나 조리법으로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낼 때 우리는 요리의 창의성을 실감한다.
요리에서 크리에이티비티를 발휘하려면 음식에 대한 개인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도전이 중요한데, 한 번도 맛보지 않은 재료로 첫 시도에 제대로된 음식을 만들기란 힘든 법이다. 지금 당장 고구마를 활용한 요리를 생각해보자.‘ 고구마 하면 경험적으로 백김치·물엿·쌀·치즈·시나몬 등이 꽤나 어울리고, 찌거나 밥에 넣어 먹거나 맛탕·그라탕 정도의 요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레시피를 참고하지 않는다면 대부분 고구마에 대한 과거 경험에서 출발할 것이다.
범상치 않은 레시피
하지만 이번 사보를 위해 모신 선생님은 남달랐다. 고구마를 메인 재료로 고르자 버번 위스키·생강·블루치즈를 궁합이 맞는 재료라 추천하셨고, 이들을 활용한 몇 가지 레시피를 알려주셨다. 레시피가 다소 서구적이라 아시안 스타일의 요리를 요청하자 사과주스·코코아·꼬투리째 먹는 완두콩을 추천해주셨다. 고구마와 위스키, 고구마와 코코아…. 요리 초보인 나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조합이었다. 선생님은 어떤 경험과 지식을 가진 분이시기에 저런 의외의 조합을 생각하실 수 있었을까?
생각지도 못한 조합을 제안한 선생님은 다름 아닌 IBM의 인지시스템(Cognitive System)‘ 왓슨(Watson)’이었다. 왓슨은 알파고 이전에 인간에게 굴욕감을 주었던 인공지능으로, 인간의 두뇌와 가장 유사한 구조를 지닌 인공지능이다.
지난 3월, 이미 인간을 뛰어넘은 인공지능 알파고에 인간들은 경외심을 느꼈고 가까운 미래에는 기계에게 나의 밥그릇을 빼앗기진 않을까
걱정했다. 나 또한 인생 백세시대 세컨드라이프를 위해 요리를 배우고 있는데, 알파쿡 같은 것이 나와 나의 미래 밥그릇을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다. 그런데 이번 IBM의 왓슨을 경험하면서 로봇기술만 뒷받침해준다면 그 두려움은 조만간 현실이 되겠구나 실감했다. 그럼 퇴직 자영업자들의 경쟁자인 A.I는 어떻게 요리를 할까?
우선 인공지능이 요리를 하려면 요리의 기본인‘ 맛’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럼‘ 맛’이란 무엇인가?‘ 고향의 맛’ 이런 맛 말고 보다 과학적인 맛에 대한 이야기이다. 맛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단맛·짠맛·신맛·쓴맛 그리고 감칠맛(우마미)을‘ 혀로 느끼는 맛(Taste)’과, 음식을 입안에 넣었을 때의 질감·향기·색깔 등을 종합적인 감각기관으로 느끼는‘ 풍미(Flavor)’가 바로 그것이다. 이 가운데 요리 전체에서의 비중이 0.01%에 지나지 않지만 ‘향’은 우리가 요리에서 맛을 느낄 때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가 코를 막고 사과와 양파를 먹었을 때 내가 먹은 것이 무엇인지 잘 구분 못 하는 것을 생각하면 향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향이란 또 무엇인가? 냄새분자의 조합이다. 매우 화학적인 것이다.
분석이 가능하고 연구실에서 조합 또한 가능하다. 바나나가 들어있지 않지만 바나나 맛이 나는 우유나 숯 근처엔 가지도 않았지만 훈현향
가득한 소시지가 그 증거이다. 맛에서 화학적인 요소가 매우 크다는 것은 인공지능도 충분히 맛을 이해하고 조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실제로 왓슨은 재료들이 가지고 있는 냄새분자와 영양성분들을 분자 단위로 분석해 최고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재료를 추천한다. 우리네 어머니나 요리사들은 복잡한 화학식을 모른 채 경험과 여러 번의 시도를 통해 새로운 맛을 찾아내지만, 왓슨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유사한 성분이 포함돼 맛의 시너지가 높은 재료들을 추천해준다. 왓슨이 조합
가능한 향과 영양성분의 조합 가능 수는 10의 18승에 이르는데, 100경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수이다. 2011년 몇몇 과학자들이 식재료들 간의 맛의 궁합을 표시한 ‘The Flavor Connection’이라는 맛의 연결지도를 작성했는데, 이를 보면 인공지능의 맛 관련 알고리즘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Chef Watson’ 따라 해보기
실제로‘ 셰프 왓슨’을 활용하면서 가장 놀라왔던 것은 인공지능의 대담성이랄까! 인간이라면 제안하기 힘든 재료들을 추천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IBM은 왓슨에겐 요리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기 때문이라 말했다.
마치 알파고가 인간들이 두는 바둑의 룰을 완전히 무시하는 파격적인 수로 바둑계에 충격을 주었던 것과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왓슨의 제안은 파격적이었다. 그럼 실제로 고구마를 기준으로 왓슨이 제안한 레시피를 살펴보도록 하자.
셰프 왓슨 사이트(www.ibmchefwatson.com)에 들어가면 인간은 요리 관련 몇 가지 선택권이 주어진다. 고구마·닭 같은 원재료, 튀김·케밥 같은 요리, 중식·한식 같은 스타일을 각각 고르거나 함께 조합해 요리를 진행할 수 있다. 집에 있는 재료 위주로 고구마와 닭을 선택하자
왓슨이‘ Sweet Potato Poultry Dish’라는 레시피를 제안해주었다. 이 요리는 IBM과 함께 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미국 요리잡지 <본아페티(Bon Appetit)>의 레시피를 기본으로 작성됐는데, 양념·오일·허브 등의 재료 카테고리 또한 맛의 조합과 부엌 형편을 고려했는지 복수로 제안해준다. <그림 3>의 레시피가 왓슨이 제안한 것으로, 붉은 글씨가 요리에 사용된 재료들이고 나머지는 복수로 제안된 것들이다.
조리법
1. 오븐은 220도로 예열한다.
2. 오븐에 들어갈 수 있는 프라이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소금과 후추로 시즈닝된 닭가슴살을 5분 정도 굽는다.
익은 닭가슴살을 접시에 옮겨둔다.
3. 닭가슴살을 굽던 프라이팬에 고구마와 마늘을 3분 정도 굽는다.
그리고 커리 페이스트를 추가해 어느 정도 익힌 후 삶아둔 병아리코와 간장 다싯물을 넣어 끓인다.
4. 프라이팬 위에 껍질이 위로 가도록 닭가슴살을 올리고 오븐에 굽는다.
(시간은 왓슨이 안 알려준 관계로 대충 10분 구움).
5. 완성된 요리 위에 잘게 다진 로즈마리와 바나나를 올린다.
이번 요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로즈마리와 바나나 으깬 것이 다른 재료들과 만들어내는 맛의 조합이었다. 로즈마리의 싱그러운 향과 간장, 가쓰오부시 다시, 커리의 짭짤함 그리고 고구마와 바나나의 달달함이 만들어내는‘ 단짠단짠’하고 향긋한 맛! 경험이 미천한 나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조합이었다. 요리를 할 때 재료에 대한 지식이 많고 새로운 조합의 시도를 많이 할수록 없었던 맛을 찾을 확률은 높아진다.
하지만 인간은 전 세계 모든 재료에 대해서 알 수 없고, 시간 등의 제한으로 모든 조합을 시도해볼 수 없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재료 구성의 분자적 데이터와 인터넷 상에 널린 방대한 레시피, 인간들의 반응 등을 총망라한 데이터를 지녔기에 인간보다 우월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울한 결론이지만 요리도 광고도 곧 인공지능이 인간을 압도할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왓슨을 경험한 후 앞으로의 나의 먹을거리와 지금 두 살인 아이에게 뭘 가르쳐야 할지 고민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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