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06 : 당신에게 말 거는 방법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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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말 거는 방법

 


 

신 숙 자

CD / sjshina@hsad.co.kr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이 있습니다. 색감도 따뜻하고 풍경도 정겨워서 한편의 동화를 읽는 듯합니다. 대부분 꽃이 많고 고운 빛깔이라 누가봐도 예뻐 보입니다. 새와 강아지와 사람이 어우러진 그림, 또 누가 봐도 행복해 보입니다. 제주도에서 제주 풍경을 그리는 이왈종 화백의 그림입니다.

그는 추상 미술보다는 구상 미술을 추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가 봐도 이해하기 쉽고 예쁜 작품을 냅니다. 작가의 얘기를 듣고 다시 그림을 보면 누구나 다 평등하기에 사람과 동물을 같은 크기로 그린다는 얘기, 평상심을 그리는 게 주제라는 얘기. 그림에 따뜻함을 더합니다.

반면 깊이 보고 천천히 보아야 느껴지는 그림도 있습니다. 선과 색이 전부인 그림. 문외한으로서 보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잘 안 보이는 그림. 하지만 이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치유를 느끼고 위로를 받는다고 합니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입니다. 그의 그림은 추상 미술입니다.

인간의 본성과 감성을 그려내는 방향은 비슷하지만, 말하는 방법은 반대입니다. 한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이어서인지 그는 전시장의 명도와 걸리는 높이, 벽의 명도까지 체크하며 전시장 가운데 의자를 놓아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같은 얘기를 해도 당신에게 말을 거는 방법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방법이 더 당신과 공감하고 깊이 소통할지는 보는 사람의 몫이 겠지요.


다큐멘터리처럼 감정을 자제하고‘ 사실’만으로


사람들이 알아야 할 충격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 사실을 인지조차 못합니다. 그럴 땐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까요?

프랑스의 텔레비전 채널 France5. 당신이 알아야 할 충격적인 사실을 꺼냈습니다. 평화로워 보이는 미국의 마을, 어린 아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느 집을 찾아갑니다. 곧 문을 열어주는 사람. 그는 집주인이 아니라 또래의 어린이입니다. 서로 대화 한마디 나누지 않습니다. 뭔가 분위기가 밝지 않음을 느낄 수 있지요. 아이는 방문한 아이에게 집안 곳곳을 안내합니다. 거실, 사탕병이 놓여있는 부엌, 자전거가 있는 뜰, 그리고 자신의 방. 안내하는 아이의 표정은 절망한 듯 허공을 향합니다. 반면 방문한 아이는 침대 위에 옷을 벗어 놓으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곳 저곳을 살피죠. 뭐든지 새롭게 익히려는 듯한 자세입니다. 그리고 문으로 함께 다다가는 두 아이. 집을 방문한 아이는 이번엔 반대로 집을 안내한 아이에게 문을 열어줍니다. 아이는 밖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이내 문은 닫혀 버립니다. 체념한 듯 혼자가 된 아이는 뒤돌아 섭니다. 그때 광고는 말합니다.

“미국에서는 입양한 아이가 마음에 안 들 땐 다른 아이로 바꿀 수 있습니다. 매년 25,000명의 아이가 이런 일을 겪습니다.”

France5의 ‘Disposable Children(버릴 수 있는 아이)’라는 다큐멘터리예고입니다. 어른들의 시선은 모두 제거하고 아이들의 시선으로만 풀었습니다. 감정에 대한 호소도, 분노도 없습니다. 아이들의 잔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더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이 예고를 보고 프랑스인들도 미국인들도 많이 놀랐을 듯합니다. 사실을 아이의 시선으로 절제해서 보여준 게 오히려 강한 메시지가 됐습니다.


코미디로 전하는 패션 센스


우리는 보통 아인슈타인을 보고‘ 천재’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고, 셰익스피어를 보면‘ 대문호’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그들이 어떤 헤어 스타일을 하고 어떤 옷을 입었는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냥 비판할 수 없는‘ 위인’ 일 뿐입니다. 하지만 영국 백화점 하비 니콜스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그들의 위대한 업적보다는 옷 입는 센스, 머리를 만지는 센스에 초점을 뒀습니다.

광고는 매우 존경하는 듯 정중한 말투로 시작됩니다.



“37편의 희곡과 154편의 소네트를 쓴 그는 지금껏 실존한 작가 중 가장 위대하며 그의 작품은 여러 국가의 언어로 번역됐습니다.”

이어지는 말투는 여전히 존경스러운 듯하지만 이내‘ 디스’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는 크리스마스 싸구려 장식품 같은 옷을 입었지요.”

그리고 잠시 음악이 바뀌며 ‘촌스러운’셰익스피어를 쿨한 스타일로 바꿔놓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멋진 사람은 멋진 스타일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하비 니콜스의 남성 패션 코너 광고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연이어 여러 위인들을 ‘디스’합니다.

아인슈타인은 근대 물리학을 재정립할 정도로 대단한 천재지만 신고 있는 샌들은 정말 아니라고 합니다. 미국의 최초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는 지치지 않는 체력까지 갖추고 있지만, 참 대단한 아빠 바지(Dad Jean)를 입으셨다며 비아냥대죠. 런던 시장 보리스 존슨에겐 차기 수상으로 가장 유력한 분이지만 헤어 스타일은 강아지 래브라두들 스타일이라고 혹평합니다.‘ 종의 기원’을 쓴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에겐 수염을 보니 시간이 멈춘 곳에서 오신 거 같다며 지적을 빼놓지 않지요.

‘Great Men’을 위한 하비 니콜스의 남성 패션 코너. 진중하고 고급스럽게 얘기하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역대 위인들의 패션 센스를 들먹이며, 당신이 위대한 사람이라면 위대한 스타일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죠. 굳이 남성이 아니라도, 위인이 아니라도 하비 니콜스의 재치 있는 지적에 공감이 갑니다. 역대 가장 효과적인‘ 디스’일 듯합니다.


가상현실이 전하는 진짜 현실


가상 현실은 종종‘ 미래’를 얘기하는 화두가 됩니다. 하지만 어떤 미래가 될 지는 와닿지 않죠.

언론들은 문제를 제기하고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서 기사를 씁니다. 사람들이 몰랐던 사실을 드러내고, 놀라게 하고, 경악하게 하고, 공감하게 합니다.

바로 잡아야 할 문제점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게 그들의 역할이죠. 그래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또 하나의 문제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다만 기사를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상현실을 도입했다는 것이 새롭습니다.

가디언은‘ 감옥 독방체험’을 들고 왔습니다. 당신에게 감옥 독방에서 지내볼 것을 권유합니다. 운동 1시간을 제외한 하루 23시간. 수돗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 어두운 감방. 좁은 창틀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빛. 가로 세로 6피트, 9피트에 지나지 않는 작은 크기. 작은 틈새로 배식되는 차가운 밥. 읽을 것도 들을 것도 볼 것도 없습니다. 보기만 해도 단 1분도 머물지 못할 거 같습니다. 스마트폰이 없어도 VR안경이 없어도 체험할 수 있는 이 가상현실은 호러영화처럼 으스스합니다. 그렇다면 가디언은 왜 당신에게 독방을 체험하라고 할까요?

그들은 그 곳의 고립감이 사람을 얼마나 망가지게 할 수 있는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기사로‘ 어렵게’설득하기보다는 쉽게 체험하고 그 문제점을 같이 생각하자고 합니다. 도저히 사람이 살지 못할 것 같은 공간. 가디언은 실제로 독방에 감금된 적 있는 7명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벌’이 그들을 얼마나 학대하고 수많은 정신적인 병을 갖게 했는지를 얘기합니다. 독방에서 간수에게 학대를 당해도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범죄 사각지대인 거죠.

가상현실은 공상과학 영화에서 먼저 접해서인지, 우주를 체험하거나 마술을 체험하거나 환상적인 경험으로만 생각했는데, 언론의 활용은 새로운 방식의 저널리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감’을 만들고 관심을 끌어내는 데는‘ 체험’만한 게 없으니까요.

가디언은 가상 현실이 가상이 아닌 진짜 현실을 더 강하게 전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가디언다운 냉철한 화법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말투로 기억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4월 미국 팝의 황제로 불리는 프린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많은 팬들이 그의 갑작스런 소식에 슬퍼했습니다. 기업들은 그들의 색깔에 맞게 팝의 전설을 추모했습니다. 그 중 자동차 브랜드 쉐보레의 추모

광고가 눈에 띕니다. 빨간 콜벳이 보이는 심플한 광고. 하나의 문장이 메시지의 전부입니다.

“당신. 너무 심하게 빨랐습니다.” 

빠른 속도를 뽐내는 스포츠카 콜벳이 너무 빨리 마친 프린스의 삶을 추모합니다.

스포츠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추모인 듯 합니다. 미국의 주간지 ‘뉴요커’는 그의 히트 송‘ 퍼플레인’에 착안해서 보랏빛 비가 내리는 표지를 선보였습니다. 3M 또한 보랏빛으로 바뀐 브랜드네임에 눈물 방울

이 하나 똑 떨어지는 모습으로 슬픔을 대신했습니다. 누구가를 추모하는 마음조차도 이렇게 브랜드의 색깔에 맞춰 얘기하는 것. 어찌 보면 상품광고 같아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들 고유의 말

투이기도 합니다.

위트 있게 얘기하는 브랜드에는 친밀감을 느끼고, 감성적으로 얘기하는 브랜드에는 따뜻함을 느낍니다. 누군가는 당신의 행동보다는 당신의 따뜻한 말투 때문에 당신을 자상한 사람으로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 거는 방법은 말하는 내용만큼 중요합니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