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06 : 왜 나는 아이슬란드에 갔을까?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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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아이슬란드에 갔을까?

 


 

이 현 종

대표 CD - Chief Creative Director / jjongcd@hsad.co.kr


 

 

 


 

아이슬란드에 다녀왔다. 실제로 멀기도 멀지만, 그 이름이 주는 상징 때문인지 세상 밖으로 나갔다 온 기분이 든다. 열여덟 시간 남짓을 비행기와 씨름해야 한다는 것은 곤욕이지만, 천연의 지구를 만날 수 있다는 호기심은 새삼스럽게 청춘의 심장을 가동시켰다. 어쨌든 오랜만에 호기심이 게으름을 이긴 뜻하지 않은 경험이다.


긴 비행엔 영화와 책이 길동무다. 단편집은 늘 여행 짐의 단골 리스트인데, 꼼지락 꼼지락 잠과 투쟁하며 기내에서 읽기엔 단편이 제격이다. 우연인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지 처음 마주한 글은 김경욱 작가의 <천국의 문>이었다.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유혹도 있었지만 조금 심할 정도의 상찬들에 ‘도대체 얼마나 잘 썼기에’라는 뒤틀린 배알이 한몫했다. <천국의 문>은 밥 딜런의‘ knock, knock, knocking on heaven's door~’의 그 천국의 문에서 따왔다.‘ 검고 긴 구름이 몰려와요. 천국의 문을 두, 두, 두드려요~’

비행기는 구름바다를 건너고 있다.‘ 천국의 문을 읽는 장소’로 이보다 완벽한 장소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구름바다를 다 건너도록 눈과 머리가 따로 놀아 좀처럼 작가의 주제에 빠져들지 못했다. 주인공이 맞이한 치매 아버지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죽음을 계속 오로라에 비유하는 장면에서는 뭔가 운명의 그림자 같은 것이 어른거려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건 어릴 적부터 뭐든 사소한 것들을 운명적 Sign으로 엮으려고 드는 습성에 기인하는데, 이것이 가끔 병적으로 심해질 때가 있다.)


“…죽는 순간 우리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에 휩싸여 깃털처럼 날아올라 거대한 빛의 일부가 돼요. 무한한 빛의 입자들이 먼지처럼 떠 있는 그 거대한 빛은 시시각각 색깔을 바꾸며 아름답게 물결치죠.” …“ 오로라처럼요?” 여자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오로라를 보러 간 것은 아니지만 오로라 때문에 간 것은 맞다. 광고에는 오로라가 피어오르는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로라 시즌은 끝났으나 합성할 장소와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회의실에선 모이면 늘 오로라 얘기였다. 다들 오로라 박사가 됐다.“ 오로라는 죽은 이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거래.” 누군가 말했는데 누군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작년 가을에 치매로 세상을 떠났다. 불현듯 이 모든 것이 아버지 때문에 일어나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슬란드는 백야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때문에 촬영은 밤 열두 시 가까이서야 시작됐다. 촬영 셋째 날 새벽, 현지 PD가 호들갑을 떨며 식당 차 안으로 들어왔다.“ 오로라, 오로라가 나타났어요.”“ 거짓말 아니야? 나올 때도아니잖아.” 그래도… 황급히 뛰쳐나갔다. 다들 식사와 휴식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었던 때라, 몇 사람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정말 오로라였다. 희미했지만 빗살무늬의 오로라가 수줍게 나타났다 사라졌다.아쉽지만… 작별의 인사를 해야 했다.“ 아버지… 잘 가세요.” 아버지는 이제야 정말 떠나신 것 같다.


그런데 왜 비행기에서 집은 책이 하필 <천국의 문>이었을까.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