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의 슈퍼볼 광고에 대한 소고
김 봉 현
동국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 bkim3@dongguk.edu
지난 2월 미국 최대 스포츠 행사인 프로미식축구(NFL) 결승전 ‘슈퍼볼’(Super Bowl)이 갖가지 화제를 남기며 막을 내렸다. 올해는 특히 슈퍼볼이50돌을 맞이하면서 평균 600만 원 넘는 입장권과 6억 원 넘게 호가한 로열석 가격, 그리고 무엇보다 30초짜리 한 편당 우리 돈 60억 원에 달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광고비로 화제를 더했다. 올해도 미국 내 1억 1,200만 명의 실시간 시청자 수를 기록한 슈퍼볼은 미국 사람들에게 단지 인기 스포츠 경기를 넘어 일종의 국가적 의식이며 문화적 대축제이다. 미국 사람들 3명 중 최소 2명 이상은 슈퍼볼을 시청하며, 이 중 절반은 그날 시청한 광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정도라고 한다. 심지어 10명 중 최소 1명은 오로지 광고를 보기 위해 슈퍼볼을 시청한다고 말할 정도로 광고에 대한 관심과 기대감 또한 매우 높다. 갈수록 광고를 건너뛰려는 최근 소비자 경향을 생각하면, 아마도 이날은 일 년 중 광고를 즐기고 일부러 시청하는 가장 우호적인 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기업들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TV 광고비를 지불해서라도 슈퍼볼 광고를 따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올해는 모두 63편의 광고가 방송됐다. 그 중에 우리 기업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는데, 슈퍼볼 단골 브랜드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그리고 전자제품으로는 처음으로 LG전자가 슈퍼볼 광고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국내 광고인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더욱 큰 관심을 끌었다.
슈퍼볼에서의 기업 간 치열한 ‘광고전쟁’은 대개 경기가 시작되기 2~3주전부터 이미 온라인상에서 펼쳐진다. 올해는 슈퍼볼에 등장한 사전 광고 예고편들이 온라인상에서만 시청 횟수 3억 7,400만 건을 기록할 정도였다고 한다. 세계적인 뉴스통신사 AP가 선정하는‘ 10대 슈퍼볼 예고편’에 오르기도 한 LG전자 올레드 TV 티저광고 역시 유튜브·페이스북·트위터 등을 통해 공개한 지 3일 만에 1,000만 뷰를 돌파했다고 한다.
이처럼 슈퍼볼 경기 그 자체만큼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것이 바로 슈퍼볼 광고인 까닭에 슈퍼볼은 말 그대로 광고 전시장이자 기업과 광고인에게는 소위‘ 심판의 날’인 셈이다. 올해도 여지없이 슈퍼볼 경기가 끝난 후 곧바로 여러 방송과 신문, 켈로그 경영대학원과 같은 기관에서 슈퍼볼 광고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순위 발표가 이어졌다. 특히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종합일간지 USA 투데이가 온라인 패널을 대상으로 실시한 총 63편의 슈퍼볼 광고 선호도 조사에서 현대자동차가 1위를 차지했다. LG전자 역시 에이스 매트릭스(ACE Metrix) 같은 조사전문회사로부터 광고의 주목도와 시각적 우수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전체 순위 톱 10에 드는 등 어느덧 국내 광고제작 수준이 세계 수준에 올랐음을 실감케 했다.
특히 현대자동차는 지난 8년간 꾸준히 슈퍼볼 광고를 집행해온 뚝심이 이번성공으로 이어졌는데, 역시 슈퍼볼 광고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일련의공식이 여전히 유효했음을 보여주었다. 현대자동차 광고는 유명 코미디언을 등장시켜 첫 데이트에 나선 딸을 지켜보는‘ 딸 바보’ 아빠의 마음을 코믹하게 표현해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차량이 지닌 위치추적 기능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복잡하고 생각을 많이 요구하는 주제는 가급적 피하고 단순·유쾌하며 유머러스한 광고가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매년 광고 선호도 순위에서 상위에 오르는 광고를 보면 대개 유머광고가 다수를 차지하곤 했다. 올해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 슈퍼볼의 특성상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이 모여 가볍게 맥주 한잔하면서 함께 웃고 떠들며 음식을 즐기는 시청 분위기를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소위‘ 슈퍼볼 광고공식’이 있다 할 정도로 기업들이 오직 슈퍼볼을 위한 단발성 유머광고와 브랜드 전략을 전개하는 데 대한 우려가 있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LG전자의 올레드TV 광고‘ 미래로부터 온 사나이(Man from the Future)’는 전자업계로서는 드문 슈퍼볼 광고집행이기도 했지만, 그동안 업계에서 통용돼 오던 슈퍼볼 공식과는 사뭇 다른 실험적 광고집행으로 향후 그 결과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을 갖게 했다. 올레드 TV 광고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과 할리우드 유명 배우 리암 니슨의 협업으로도 화제를 낳았다. 약간은 난해해 보이는 은유적 표현과 스토리 전개를통해 차원이 다른 TV가 도래함을 알리는 선언적 의미의 광고였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최근 소비자들은 제품이나 브랜드의 사용가치를 소비하는 차원을 넘어서 거시적인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브랜드에 부여된 일련의 상징적 의미와 가치를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만큼 브랜드란 인간 내면의 깊숙한 그 무언가를 일깨우는 은유적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
미국 경제 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이‘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한 미래지향적인 슈퍼볼 광고’라고 평가했듯이, 이 광고는 올레드 TV가 미래 TV 기술의 글로벌 표준이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넘어, 인류 삶에 가져올 유익한 변화와 미래의 모습에 대한 기대감과 궁금증을 흥미롭게 자극하고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슈퍼볼 광고를 이야기할 때 애플의‘ 1984’를 빼놓을 수 가 없는데, 공교롭게도 이 광고 역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이다. 애플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패러디한 60초짜리 매킨토시 광고를 1984년 슈퍼볼에서 선보였는데, 우선 광고 자체가 상당히 은유적이다. 소수의 절대 권력자는 곧 IBM을 의미하며, 다수의 사용자들이 IBM이 지배하는 컴퓨터환경에 맹목적으로 순응하고 있는 사회에서 혁신적인 매킨토시가 그것을 부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광고는‘ 빅브라더(Big Brother)’와 같은 소수의 절대 권력자와 거기에 순응하는 다수, 그리고 그 순응을 깨뜨리고 진보된 미래를 꿈꾸는 혁신자(Outlier)로서의 애플의 철학과 신념을 담아내고 있다.
이제 광고는 자기 브랜드를 사도록 단순히 제품의 장점과 특성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인간 내면의 깊숙한 근저에 자리 잡은 꿈·이상·열망·동경과 같은 본질적인 인간으로서의 동기를 자극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LG전자의 올레드 TV 슈퍼볼 광고는 매우 은유적인 이야기를 통해 미래가 어떤 것인지 전략적 차원에서 오히려 정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단지 차원이 다른 TV 기술을 알리는 데 멈추지 않고, 지켜져야 할 인류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 그리고 그와 관련한 경험들을 SNS 등에서 지속적으로 소통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광고는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웠다 하겠다.
사물인터넷(IoT)을 중심으로 스마트 홈오토메이션·전기자동차·커넥티드 스마트 가전·인공지능·자율주행 등의 키워드로 요약되는 최근의 메가트렌드는 인류가 지금과 전혀 다른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우리는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세기의 바둑 대결을 지켜보면서 인류 앞에 펼쳐질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에 뒤섞였다.
그래서‘ 미래는 보호되어야 한다’는 리암 니슨의 말처럼, LG 올레드 TV가 어떤 미래를 우리에게 이야기할지 다음이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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