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H-AHH 하게 떠나는 고전 산책
고전 PT 산책할까요?
서창호
Project xT팀 차장 / windowseo@hsad.co.kr
천하 유세를 떠난 공자(孔子) 이야기
주(周)나라 천자를 받드는 패자(覇者)가 되겠다는 명분으로 여러 나라 간의 전쟁이 일상화된 불안과 동요의 중국 고대 춘추시대. 공자(孔子:기원전 551년~기원전 479년)는 당시 평균수명이 훨씬 지난 50대 중반에 모국인 노(魯)나라를 벗어나 14년간 이 나라 저 나라를 고생스럽게떠돌며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려 애썼다.
좋은 정치의 실현을 강조하고 권력자에게도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공자. 결국 평생의 뜻은 이루지 못했으나 사람이 어떻게 하면 바르게 살지를 묻고 인과 예, 중용을 설파했던 공자의 문헌과 가르침에 감탄해 따르게 된 제자들이 있어 그가세상을 떠난 뒤에도 공자의 말씀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슈퍼스타의 은퇴 투어
지난 2월에 미 프로농구(NBA) 슈퍼스타 코비 브라이언트(LA 레이커스,이하 코비)의 통산 18번째이자 마지막 올스타전 경기가 끝났다. 코비는 지난해 12월 블로그‘ 더 플레이어스 트리뷴’에 2015-2016 시즌을 끝으로 코트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매 원정경기가 마치‘ 은퇴 투어’처럼 펼쳐지면서 팬들에게 굿바이 인사를 하고 있다.
은퇴 투어라고는 하지만 일반 경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게 있다면 원정경기 코트에서 코비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틀어주고, 상대 팬들이 그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환호하고, 상대 선수들은 레전드 선수와의 이별에 뭉클해하며경기가 끝나면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은퇴 후에는 현역선수들을 위한 농구스쿨을 만들 거라는 코비를 보며 문득 ‘우리 광고업계에도 코비 같은 스타들이 존재했는데…’라고 중얼거렸다.
광고업계에는 전설의 PT가 있어
경쟁 프레젠테이션(이하 PT)에서 지지 않는다 하여 1990년대에 ‘동방불패’라는 별명을 얻은 광고인이 있었다. 모 통신사 PT 석상에서 여러 개의 테니스공을 던진 후 하나의 공도 받지 못한 클라이언트 임원에게 ‘광고에서 전달하는 메시지도 이 테니스공과 같다. 단 한 개의 메시지를 던졌을 때 광고를 보고 있는 소비자가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는 일화, 재킷을 벗은 후 셔츠 소매를 걷고 PT 하는 모습이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마치‘ 빨간’ 비디오테이프처럼 업계 사람들이 돌려보게 됐다는 일화,‘ 베스트는 하나’이기에 클라이언트에게 PT를 하러 가는 자리엔 늘 하나의‘ 베스트 컨셉트’만 가져갔다는 일화 등….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내가 아니란 말은 아님) 그 행적을 좇아 광고계에 입문하게 됐고, 운 좋게도 그 분과 함께 PT를 준비할 기회도 주어졌다. ‘이 자리는 광고가 아니라 브랜드의 네버엔딩 스토리를 누가 더 잘 만들수 있느냐를 논하는 자리다’라는 프레임과 제안으로 경쟁 PT에서 승리한 기억은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나고 회사가 바뀌어 치열하게 생활하는 동안, 그 분이 광고업계를 떠나게 되었단 소식을 그토록 동경해온 나조차 한참 후에야 전해 듣게 됐다.
광고인의 은퇴 투어를 시작합시다
아마 90년대에 광고 꿈을 꾼 현재의 차장/부장급 광고인들은 동경하는 광고인이 나온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고, 그들이 남긴 유명 일화를 외우고, 그들이 쓴 기획서 OHP 필름 복사본을, 과장을 보태 빨간 비디오테이프보다 더 소중히 간직했었을지도 모른다.
마치 학창시절의 코비가 마이클 조던의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연습을 해왔듯 우리 또한 기라성 같은 선배들처럼 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정작 현업에 입문하면서는 닥친 업무과제 해결에 급급해 선배들이 언제 떠났는지도 모른 채 일을 하고 있고, 은퇴를 하게 된 대선배들의 인사이트는 공유되지 못한 채 누군가의 옛 기억에만 의존하게 됐다.
고전은 과거에 비추어 미래를 예견하게 하여 지혜를 배가시키고, 스포츠에서의 고전은 현재 경기의 재미를 배가시키며 우리가 왜 계속해서시청/응원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우리도 광고인들의 대미를 장식할 영광스러운 은퇴 투어를 기획하면 어떨까? 그리고 그들의 기록을 기념하고 기릴 수 있는 명예의 전당까지도. 물론 스타 광고인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한 회사에서만 오래 근무했던 간판 광고인도 있을 테고, 휴가를 제외하고 1만 일 넘게 광고업무를 해온 철인 광고인,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 단초를 어시스트했지만 이름이 알려지진 않은 광고인, 각자의 직군에서 묵묵히 일해 온 숨은 일꾼 광고인 등을 모두 포함하는 거다.
'KAL(Korean Advertising League)’구축을 꿈꾸다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간단하면서도 우리가 하지 않았던 일들이다. 은퇴 선언을 한 스타 광고인을 위해 담당했던 클라이언트와 경쟁 광고회사 각지에서‘ 공개 PT 투어’가 열린다. 각 회사 로비에는 그 분의 광고 하이라이트 영상이 웰콤 보드와 함께 플레이된다. PT가 끝난 후에는 그간 경쟁했던 동료 광고인들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PT때 맸거나 썼던 넥타이나 스마트 포인트 등의 소품에 사인과 격려문구를 써서 후배들에게 기념품으로 전한다.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범업계 차원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빠르게 진행되는 경기 속 의미 없이 지나갈 수 있는 동작들이 기록원들을 통해 스탯(Stats)으로 정리돼 스포츠의 재미를 배가하듯, 소속 회사의 규모별, 지역별, 클라이언트 업종별, 평균 퇴근 시간대별 등 광고인의 통산 PT 승률도 데이터화할 수 있다. PT 상대가 기획차장이냐 팀장이냐 CD냐 ECD냐라는 상대 전적도 따지는 등 업계에 회자될 수많은 이야기들을 양산할 수 있을 것이다.
광고업계의 각종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전문 종사자들이 모여 운영체가 마련되면 가칭‘ KAL(Korean Advertising League)’이라는 리그도 탄생하지 않을까? 아, 이름에는 매일 칼퇴근(a.k.a 정시퇴근)을 하고 싶은 광고인들의 바람도 담았다.
“영어 좀 하죠? 이거 읽어봐요.”
KAL. ㅋ ㅏ ㄹ.“ 오늘 칼- 해야겠어요.”
과거 전설적인 PT 일화에 대한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게 됐다. 우리의 업은 늘 클라이언트와 소비자를 향해 있지만, 업을 지탱하는 원동력은 결국 광고인들로부터 나오는 것. 대면해서 전하긴 좀 쑥스럽지만 여러 일화들로 하여금 광고를 하는 데 있어 결정적 동기부여를 주신 대선배님들께 사보로나마 감사드린다. 부디 현재의 우리가 만들어내는 일화들도 먼후배들에게 긍정적인 기운으로 전해지고 구전되길 바란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집에서 하던 도스(DOS) 게임들에 대한 순위표를 만들어 매주 빌보드 차트처럼 친구들에게 돌리곤 했다. 그 순위에는 개인적 취향이 주로 반영됐지만, 2인용으로 함께했던 친구들의 데이터도 포함됐기에 그 순위는 다른 친구들에게 꽤나 신뢰감을 주는 데이터였고, 순위표를 담은 노트 하나면 그 날은 하루 종일 신나게 얘기 나눌 수 있었다. 기록, 즉 데이터가 스토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꿈은 여럿이 꾸면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으니 혹시나 같은 꿈을 꾸신 분은 응답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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