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의 시선으로 본 MCN
- MCN이 보내는 몇 가지 시그널
MCN(Multi Channel Network)이 대세라고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나만 알고 있는 전문 영역이라 믿었는데, 주변 지인의 입에서 크리에이터 이름이 튀어 나올 때, SBS-TV <동상이몽>의 주인공이 BJ였을 때. 10대들의 장래희망 순위에 BJ(크리에이터)가 올랐을 때, 그리고 광고주 임원진이 직접 MCN에 대한 트렌드 조사를 요청했을 때 등이 바로 그 때다.
MCN은 1인 크리에이터들의 프로그램 기획 및 제작 지원·마케팅·저작권 관리·콘텐츠 유통·수익관리 등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사업이다. 국내에서는 아프리카TV에서 개인방송 BJ에 제작 스튜디오를 빌려주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후 유튜브가 트루뷰(TrueView) 광고모델을 출시하며 55%의 수익을 채널 운영자에게 넘겨주는 광고수익 구조를 만들었는데, 당시 BJ들과 기존 파워 블로거들이 유튜브로 넘어가 자리를 잡으며 대규모 팬덤이 형성됐다. 그리고 2013년 CJ E&M이 콘텐츠 역량 강화의 일환으로 국내에서는 최초로 MCN산업에 진출했고, 이후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대규모 투자가 이어졌다. 트레져헌터·메이크어스·비디오빌리지·샌드박스 네트워크 등 다수 MCN 모델이 속속 등장했다. 이것이 지난 한 해 벌어진 일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MCN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한시적 유행이다 vs. 미디어 패러다임의 변화다.’ 물론 여전히 두 가지 시선 모두 존재하지만, 한시적 유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근 MCN의 활동이 매우 거세게 느껴졌고, MCN에 대해 알면 알수록 겸손해지게 만드는 몇 가지 시그널이 있다.
10대들이 보내는‘ 미래에 대한’ 시그널
올해 14살인 조카 이야기를 잠깐 꺼내려 한다. 지난해, 조카는 같은 반‘ 여사친(여자사람친구)’에게 유튜브 링크를 받았다. 연결된 링크는 10분 남짓한 영상이었는데, 내용은 한 마디로“ 네가 좋다, 우리 사귀자”였다. 직접 녹음하고 영상에 자막까지 넣은 정성이 갸륵해 당연히 결과가 좋았으려니 생각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듯 조카는 도도했다. 쉽게 영상을 만들고 유튜브에 공개하는 상황이 낯설고 신기한 내게, 조카로 투영된 10대의 모습은 유튜브가 얼마나 친숙한 매체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자료 조사를 하던 중, 뷰티 전문 MCN 레페리 소속 크리에이터의 특이한 문화를 알게 됐다. 보통 크리에이터는 팬덤을 먹고 자라는데, 팬덤은 크리에이터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한 일화로, 팬들은 자신이 팔로우하는 크리에이터가 기존에 쓰던 화장품 브랜드가 아닌 다른 브랜드를 사용할 경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심지어는 항의를 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었던, 나와 다른 세상 같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현실 셀럽’에 가까운 크리에이터 팬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두 가지 경험을 통해‘ 누구나 유튜브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가 나와는 달리 영타깃에게는 얼마나 크게 와 닿았을지 가늠해 볼 수있었다.
크리에이터의 인기는 대단했다. 유명 뷰티 크리에이터인‘ 씬님’의 오프라인 팬미팅에는 1만 명이 참석을 위해 사전 지원을 한다.‘ 대도서관’의 경우 A4한 장에 사연을 써야 하는 과제가 있음에도 4천여 명이 팬미팅에 참석했다고 한다. 단언컨대 어떤 브랜드가 주최했다면 이렇게 많은 인원을 모으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팬심이 가동되고 있다는 증거다. 영타깃은 그들의 콘텐츠를 기다리고 피드백을 주며 성장하고 있다.
무서운 건 미디어의 학습 기능에 있다. 무릇 기성세대가 가장 좋아하는 콘텐츠는 지상파 TV 콘텐츠다. 그나마 20~30대는 케이블 TV 콘텐츠까지 아우르지만 여전히 TV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TV 콘텐츠를 좋아하고 즐겨보는 데에는 오랜 시간 TV 콘텐츠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전제가 있다. 그런 만큼 MCN 콘텐츠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잠재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TV를 보지 않는 2016년의 10대들에게는 지금 즐겨보는 콘텐츠가 미래에도 영향력을 지닐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이미 MCN산업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2014년 월트 디즈니는 미국 최대 규모 MCN‘ 메이커 스튜디어’를 5억 달러(약 5,830억 원)에 인수했고,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1,500만 달러(약 175억 원)에‘ 어섬니스 TV’를 인수했다. 투자 배경에는 모두 미래 콘텐츠에 대한 니즈가 있었다. 메이커 스튜디오 인수 당시 디즈니는“ 메이커 스튜디오를 인수함으로써 더 진보된 기술과 데이터를 얻고, 이를 통해 디즈니 콘텐츠를 비롯한 짧은 형식의 온라인 동영상으로 소비자 욕구를 더 쉽게 파악하며 고객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우리가 MCN을 통해 보는 것은 미래의 콘텐츠와 플랫폼이다. 이미 미디어 기득권의 해체는 진행되고 있다. 지상파 대 케이블 구도가 아닌, 전통미디어와 뉴미디어의 대결구도다. 콘텐츠의 먹을거리는 변했고, 그 속에서 MCN 콘텐츠를 즐기는 영타깃은 이미 나와 확연히 다른 미디어 소비패턴을 보이고 있다.
MCN이 보내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시그널
MCN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나 국내의 수익구조는 열악하다. 현재의 콘텐츠 유통이나 수급만으로는 돈을 벌어다 줄 수 없다. 소수의 대형 크리에이터 중심으로 큰돈을 버는 방식으로 지속가능성을 논하기 어렵다. 초창기 다이아TV가 대도서관이나 씬님과 같이 크리에이터의 인지도를 활용해 비즈니스를 했다면, 이제는 본격적인 MCN 콘텐츠 포맷화와 수익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콘텐츠 스타트업 메이크어스(Make Us)는 글로벌 모바일 방송국을 표방하며 시작됐다. 지난해 DSC인베스트먼트·KTB네트워크·캡스톤파트너스·스톤브릿지캐피탈 등으로부터 202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 당시 투자사들은“ 콘텐츠의 소비 트렌드가 모바일·SNS 등 뉴미디어로 급격히 옮겨가는 현 시점에서 메이크어스는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콘텐츠 제작 및 유통에 있어 혁신을 통해‘ 모바일 방송국’으로 확장이 가능할 것이라 판단해 투자하게 됐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현재 메이크어스의 누적 채널 구독자 수는 2,570만 명에 달한다. 대표적인 채널로 일소라(일반인의 소름 돋는 라이브)·스낵비디오·세웃동(세상에서 가장 웃긴 동영상), 그리고 멀티채널 플랫폼인 딩고(Dingo)가 있다. 궁극적으로 1인 미디어는 한계가 있는 만큼 1인 크리에이터에 기대지 않고 자체적인 채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또한 기존 유튜브 혹은 페이스북 스타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를 영입해‘ 병맛’ 또는 B급 콘텐츠의 한계를 넘은 PGC(Professional Generated Contents)를 강화하고 있다. 작년 11월 메이크어스에 합류하며 페이스북에 딩고타임(DingoTime)을 오픈한 장진 감독은 예능·정치·사회적 이슈 등 20~30대의 취향까지 저격하는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MBC TV <마리텔>에 출연해 알려진 스타일리스트 정샘물도 중국 뷰티 크리에이터 및 중국 최대 동영상 플랫폼‘ 요우쿠토도우’와 협업하는‘ K-뷰티로드’ 프로젝트에 참여해 전문성을 더했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MCN은 제다이(XEDY)다. 최근 MBC TV <능력자들>의 PD가 모 일간지에서“ 덕후들이 인정받는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비주류 음지의 세계에 있던 덕후들의 문화는 지상파 TV에서 재조명 받고 있다. 제다이는 이러한 마니아층을 겨냥한다. 작년 10월에 출범, 후발주자에 가까운 제다이는 10대를 위한 콘텐츠 중심이었던 MCN 시장에서 30~40대까지를 겨냥한 콘텐츠 블루오션을 공략했다. 그중 핵심 콘텐츠는 나이·연령·국가를 초월할 수 있는 음악과 공상과학(SF)이다. 1인 아카펠라 넵킨스,‘ 2015년 버스킹 라이징 스타’ 기타리스트 정선호 등, 팬덤은 약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크리에이터를 글로벌 인플루언서로 육성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 SF 콘텐츠는 디즈니 코리아와의 협업으로 시작한 ‘나사 빠진 SF쇼’제작을 계기로 본격적인 MCN 콘텐츠의 포맷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렇듯 1인 크리에이터에서 포맷 중심으로 콘텐츠 중력이 이동하게 되면 보다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수급할 수 있고, 안정적인 팬덤을 확보하는 것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MCN 콘텐츠가 비디오 커머스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비디오 커머스는 1인 크리에이터의 동영상 콘텐츠로 상품 구매를 활성화시키는 것인데, 대표적 사례가 글랜스TV가 제작한 네이버 웹드라마 <옐로우>다. 패션을 소재로 한 이 웹드라마는 삼성물산 통합 패션몰‘ SSF샵’과의 제휴로 극중 인물이 입고 있는 옷을 바로 구매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후 SSF몰의 매출과 방문객은 각각 75%·30% 증가했다(아이뉴스 3월 20일자 기사 참고).
뷰티 전문 MCN인 레페리(트레져헌터 소속)도 중국의 뷰티 콘텐츠-상거래앱‘ 메이라(Meila)’와 독점계약을 체결하며 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머스(=비디오 커머스) 사업계획을 밝혔다. 동남아 지역의 크리에이터 팬들에게 영상을 통해 화장법을 소개하면서, 크리에이터의 이름으로 추천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판매를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중국에서는 최대 커머스 그룹인 알리바바가 최대 동영상 플랫폼인 요우쿠토도우를 인수하며 비디오커머스 영역을 확대하고 있어 국내 화장품 브랜드의 MCN 콜라보레이션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브랜디드 콘텐츠와 MCN
대게 미디어 트렌드는 독립적이지 않고 상호 연결돼 있다. 1인 크리에이터와 MCN 트렌드는 미디어 권력의 해체, 디지털 콘텐츠의 폭발적 성장 등과 맞물려 등장한 트렌드이면서, 브랜드 저널리즘(브랜드의 미디어화) 흐름과도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브랜드 저널리즘의 핵심 역량은 콘텐츠에 있다.
MCN은 브랜드 협업이 필수적이다. 결국에는 MCN도, 브랜드도 서로의 필요성을 느끼게 마련이다.
하지만 앞선 두 가지 시그널에도, 광고회사에 있는 나는 여전히 MCN을 브랜드에 제안하는 데 찝찝함을 떨칠 수 없다. 스스로를 MCN 문화권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그동안 브랜드가 원하는 콘텐츠와 MCN콘텐츠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다이 대표이사가 인터뷰에서 한 말을 빌리자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광고주를 위한 콘텐츠 개발 과정은 꼭 필요하다. 크리에이터의 팬덤이나 자극적 소재에 기대지 않고, 브랜드에 맞는 스토리와 소재를 개발하는 것은 MCN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아모레퍼시픽은 크리에이터의 생리를 잘 이해한 브랜드라 생각한다.
억지스럽게 재미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팬들에게 필요한, 동시에 브랜드에도 도움이 되는 하우투(How-to) 기반의 콘텐츠 및 튜토리얼 포맷은 팬에게 이질감 없이 다가왔을 것이다.
새로운 생태계에서는 관계가 더 확실해졌다. 생산자나 소비자의 개념이 아닌 크리에이터(셀럽)와 팬의 관계로 향해 가고 있다.‘ 소비자=팬’의 개념에서, 브랜드의 콘텐츠는 기대를 만족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 내 이야기를 받아주고, 내가 이야기한 것을 콘텐츠에 녹여주고,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해주는 것이 셀럽의 큰 장점이다. 동시에 크리에이터는 이것들을 콘텐츠로 녹여내는 능력이 있는 제작자이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MCN 생태계에서 디지털콘텐츠 문화는 크리에이터가 갑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MCN 세계는 모르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무책임한 의미에서‘ 모른다’의 관점이 아니라, 기존 미디어의 프레임을 벗어나 크리에이터의 콘텐츠와 생태계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모름’은 콘텐츠 콜라보레이션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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