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2 :“귀하의 브랜드, 아직 살릴 수 있습니다!"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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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브랜드, 아직 살릴 수 있습니다!"


손 호 진

중국법인 디지털커뮤니케이션 사업부 부장 / sonhojin@hsadchina.com


영업은 필수, 브랜딩은 선택

“그래서 광고를 하면 얼마나 팔 수 있나요?” 1차 미팅을 가게 되면 마지막에 으레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다. 문득 광고계의 구루, 오길비의 명언“ 팔리지 않으면 크리에이티브가 아니다”라는 명제가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오버랩된다. 무턱대고 결과부터 먼저 내놓으라고 하는 고객사를 마주하다보면 뒷말을 잇기 힘들 때가 많다.

하지만 그들의 질문에 공감되는 부분도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을 현지에서는 대부분‘ 영업 법인’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그들의 당면과제는 한 해 설정한 영업목표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대부분의 회사들은 영업부서 위주로 조직화돼 있다. 소개를 받거나 연락을 받고 만나게 되는 고객사의 마케팅 담당자도 역시 영업을 책임지면서 마케팅을 겸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반도 면적의 약 40배 이상에 달하는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에서 유통·판매·브랜딩·법무·소비자 관리와 더불어 급기야 로컬 상품 기획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과정에 걸쳐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당연히 이 부분에 대한 목표는 형식적인 것이 되기 쉽다. 하지만 이 형식적인 목표 역시‘ 영업실적’이면 모두 다 설명이 가능해진다.

얼마 전 만난 모 브랜드 법인의 대표는“ 영업실적이 좋으면 우리 브랜드도 잘 나간다는 뜻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충분조건과 필요조건의 명제적문제만 알아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결론을 몇 번이나 고민하다, 설명하지 못했다. 이미 그가 머리에 떠올리는 결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종 의사결정은 한국 본사에서

중국 현지에서 근무하다 보면 한국에서 내린 의사결정을 현지에서 수행만 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광고 소재도 일부분 수정해 사용하고 대부분은 본사의 결정에 준수해 진행한다. 물론 이런 표준화와 일관된 정책이 문제가 있다고 하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현지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결정을 접하게 될 때면 답답한 마음이 든다. 한국 기업들이 세계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세계화 전략의 요체인‘ 현지화’에 대해서 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아서이다.

내가 아는 A기업 역시 이런 의사결정의 피해를 보았다. 처음 A기업 법인장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법인장은 첫 만남에서 확실히 선을 그었다.“ 나도 광고는 하고 싶은데 TV나 잡지에 광고할 예산이 없습니다.”“ 광고 하시라고 뵙자고 한 것 아닙니다. 그래도 광고는 필요하다 생각하시나 보네요~”“ 당연히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죠.”“ 아니,법인장님. 매일 7만 개씩 팔리는‘ 자사 제품’이라는 좋은 매체가 있는데 왜 TV나 잡지에만 하는 것이 광고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법인장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때 제안했던 건 바로 A기업이 중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전 제품의 포장지에 QR코드를 넣자는 것이었다. 중국 소비자들이 제품 포장지에 인쇄된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우리가 원하는 기업의 공식 SNS와 쇼핑몰로 모으기로 했다. QR코드가 인쇄된 포장지는 5개월 뒤에 출시하기로 협의됐다. 기존에 인쇄된 포장지를 다 소진한 후에야 재인쇄가 가능하며, 다시 인쇄용 동판을 제작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였다. A기업의 중국법인은 나름 큰 결정을 한 셈이었다.

그리고 5개월 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받아본 새 포장지를 보곤 그만 맥이 탁 풀려버렸다. 포장지 전면 1/6 가량을 QR코드로 채우기로 했었는데,실제론 후면 소비자상담 전화번호 옆에 엄지손톱보다 작은 크기로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법인장 역시 미안하다는 표정이었다. 한국 본사는 한국에서 활성화되지 않은 QR코드가 중국에서 활성화됐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TV 드라마나 뉴스 화면에도 QR코드를 삽입할 정도로 보편화된 서비스였다. 또한 QR코드가 전체적으로 디자인에 영향을 준다는 것도 이유로 꼽았다.

“법인장님, 소비자들이 이 QR코드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미안합니다. 본사의 결정입니다.”


중국에서 브랜딩이 진행형이지 못한 이유

브랜드는 시장과 소비자를 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브랜딩(Branding)’이라는 진행형을 사용한다.

중국 진출 기업들의 브랜드 전략은 1년 단위가 대부분이다. 중장기 전략이 약한 이유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영업 위주의 운영방침, 조직 부재, 브랜딩에 관한 의사결정 참여 비중 등을 들 수 있다. 현지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담당자 역시 주재 기한이 끝나면 모든 업무를 종료하고 한국으로 복귀해 버리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이런 상황이라면 기존에 구축해 놓은 방향과 세부 전략이 중장기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버팀목

분명한 사실은 앞서 말한 점들이 우리들의 장애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우리가 현지에서 사업을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한 표현일 듯하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 대부분이 전문화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같은 외부 협력 파트너가 분명 필요할 것이다. 또한 본사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공신력을 지닌 우리 같은 전문가들의 객관적 제안들도 필요할 것이다. 브랜드 중장기 전략 역시 담당자가 바뀌어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리들이 있기에 일관성 유지를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익히 보았던 의학 드라마에는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병원 수련의로 보이는 젊은 의사가 응급환자의 심장을 쉴새 없이 압박하며,“ 아직 살릴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의 심폐 소생술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가 가망 없다 해도 환자를 살리려는 젊은 의사의 투지에서 시청자들은 잔잔한 감동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신뢰감을 느낀다.


“고객이 서비스를 해지하고 싶답니다.” 담당 AE의 말이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이미 3개월 전부터 A기업은 연간 대행 계약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라는 신호를 여러 경로로 보내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바람 때문이었는지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일을 계기로 조직 내부에서는 몇몇 의견들이 모아졌다. 대다수 의견은 의외로‘ 현실적인 서비스 대행료가 먼저 확보돼야 한다’는 쪽이었다. 하지만 회의 마지막까지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허전함과 아쉬움이 가시질 않았다.

처음 광고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선배들을 따라 고객을 만나고 그들의 고민을 들을 때, 그때는 마치 경건한 관계처럼 느껴졌다. 이후 시간이 흘러 한 기업을 담당하는 책임 AE라는 이름을 갖게 됐을 때, 마치 기업의 고민을 혼자 다 안은 것처럼 무척이나 분주해 했었던 것 같다.

제안의 내용들이 마케팅 정책에 반영되고, 실제로 만들어져 대중에게 알려지게 될 때 내 일처럼 보람 있고 자랑스러웠다. 사실 고백하자면, 처음 담당했던 기업은 작은 모바일 게임 업체였다. 담당 업무도 홈페이지 하나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하면 야근비용에 쓸데없는 제안까지 하면서, 모르긴 몰라도 회사는 손해 보는 일을 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그때의‘ 초심을 가진 내가’ 부러운 것은 그때는 손익을 따지기에 앞서 일을 성공시키고야 말겠다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 시장에서 업무를 하다 보면 높기만 한 광고주의 목표에 이상적 서비스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 아닌, 중국 현지이다. 내부 자원이 부족하고 외부 지원도 없는 그들에게 어쩌면 우리는 유일한 전진의 버팀목일 것이다.


생각은 다시 그 흔한 의학 드라마의, 심장 마사지를 멈추지 않던 한 젊은 의사에게로 오버랩된다. 그리고 A기업의 바뀐 담당자와 약속을 잡았다.

다시 뭔가 한 번 제안해 볼 생각이다. 아니 계약이 종료됐더라도 일단 뭐라도 먼저 해줘 볼 생각이다. 예전 초심이 시키는 대로 말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