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구매보다 당신의 동의를!
신 숙 자
CD / sjshina@hsad.co.kr
처음 보는 사람은 누구나 낯섭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이 같거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급호감이 생깁니다. 이야깃거리도 많아지고요. 공통점을 찾는 건 쉽게 가까워지는 제일 좋은 방법이죠.
세계 브랜드는 이 방법에 공을 들이는 듯합니다. 요즘 해외에서 화제가 되는 캠페인은 당장의 판매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동의를 구합니다. 당장의 수익엔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르지만,브랜드에 대한 동질감, 친근함은 높아질 테니까요. 나아가‘ 당신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동참하고 있다는 이미지도 주고요.
이미 유수의 광고제에서 큰 상을 받은 캠페인을 보면 이 트렌드는 더 명확해집니다. 그래서‘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더 관심을 기울이고 그 생각과 함께하고자 아이디어를 내고 있습니다.
9·11을 기억하고자 하는 당신 마음에 동의합니다
뉴스와 저널리즘을 전하는 인터랙티브 박물관인 미국의 뉴지엄(Newseum). 그들은 9·11 테러의 슬픈 기억을 치유하고 기리고자 새로운 앱을 개발했습니다.‘ A Moment of Reflection’.
이 앱은 매일 오전 9시 11분과 저녁 9시 11분 당신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정해진 시각이 되면 조용한 음악과 함께 뉴욕의 거리가 보입니다. 화면은 점점 하늘로 올라가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지나고 구름을 지나 계속 올라갑니다. 올라간 화면은 하늘 어디쯤에서 멈추며 9:11이라는 숫자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9·11 테러를 위로하고자 하는 짧은 글을 전합니다. 시간 맞춰 플레이되는 애니메이션이 그때를 기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거죠. 잊고 있다가도 하루에 두 번은 그때를 추모하고 기려야 하는 알람이 되는 겁니다. 이 앱을 만든 뉴지엄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때의 테러를 보도한 언론인들과 그때의 생생한 뉴스를 볼 수 있는 기록도 전합니다. 학생과 방문객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교육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기부로 동참해달라는 메시지도 전하지요.
9·11은 모든 미국인에겐 큰 상처일 겁니다. 누구든 그 날을 기리고 기억하는 덴 동의할 거고요. 뉴지엄은 그 마음을‘ 실행’하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당신과 뉴지엄의 생각이 같으니 이 생각을 발전적으로 만들고 희망으로 만들자는 이야기를 하는 거지요. 9·11을 긍정적인 시작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생각에 동의한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기부에 동참할 겁니다. 시간 내서 뉴지엄에 들러볼 수도 있고요.
저축 습관을 키워주고자 하는 부모 마음에 동의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돈’을 직접 보는 일이 드뭅니다. 엄마와 같이 간 레스토랑에서도, 장난감을 살 때도 부모들은 돈 대신 카드를 꺼내니까요. 지폐를 주고 거스름돈을 받고 동전을 직접 저금통에 저축하고…… 누구나 경험했던 어린 시절 경험 하나는 없어지는 거죠. 부모들에겐 아이들에게 어떻게‘ 돈의 가치’를 알게 하고, 직접 버는 용돈의 즐거움을 알게 할까 고민이 생길만합니다. ASB 은행은 이런 부모 마음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과 함께하는 앱을 개발했습니다.
클리버 캐시(Clever Kash)입니다. 익숙한 돼지저금통 대신 코끼리 모양의 저금통이죠. 하지만 동전 넣는 구멍 대신 코끼리 배에 작은 디지털 스크린을 만들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청소나 심부름 등 작은 일들을 시키고 그 대가로 용돈을 줍니다. 하지만 실제 동전이 아닌 새로운 방법으로요.
스마트폰에 설치된 모바일 뱅킹 앱을 켜고 1불, 2불 등 적은 돈을 그때그때 코끼리 모양의 클리버 캐시로 이체시키는 거죠. 앱을 실행시킨 후 손으로 동전을 드래그만 하면 되니 방법도 간단합니다.
이 작은 저금통은 당장 은행에 큰 고객을 유치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ASB 은행은 더 멀리 보고 있습니다. 이런 작은 생각마저 놓치지 않고 실천해주는 은행에 부모들은 호감을 느낄 테고,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만나온 ASB 은행에 친근함을 느끼겠지요. 잠재 고객까지 놓치지 않는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뉴질랜드의 사치앤사치와 ASB 은행이 만든 이 프로젝트는 아직 샘플링 단계라고 합니다. 점차 관련 기술을 적용해 상용화시킬 예정입니다. 기발하거나 획기적인 캠페인은 아닙니다. 작은 행동 습관을 고안한 작은 실천일 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은행이 어떻게 고객에게 동의하고 다가가야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인 듯합니다.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당신 마음에 동의합니다
‘버거’하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브랜드는 맥도날드 혹은 버거킹일 겁니다.
세계 1, 2위 브랜드이니까요. 그래서 버거킹은 이 두 브랜드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맥도날드에게 UN이 정한‘ 세계 평화의 날’을 기념하고자 엄청난 제안을 한 겁니다. 뉴욕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 지에 공개적인 편지를 게재하고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평화의 날에 대한 인지를 높이고 자 두 브랜드가 합작해 맥와퍼를 만들자고 제안한 거죠. 평화의 날 딱 하루만. 그들의 제안은 절대 가볍지 않았습니다 . 맥도날드 본사와 버거킹 본사가 있는 곳에서 정확히 중간 지점인 애틀랜타에 하루 동안 팝업 레스토랑을 여는 겁니다. 콜라보 유니폼과 패키지 디자인, 스토어 디자인까지 제안했습니다. 비영리단체 피스 원데이(Peace One day) 창립자인 제레미 길리(Jeremy Gilley)까지 나와서 힘을 더합니다. 하지만 맥도날드 CEO는 온라인을 통해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오히려 선의의 경쟁을 하자고 했습니다.
버거킹은 그 생각을 접지 않았습니다. 다른 협력자를 찾아보기 좋게 실행에 옮겼습니다. 데니스(Denny’s)와 웨이백버거스(Wayback burgers)가 협력했습니다. 크리스탈(Krystal)과 지라파스(Giraffas)도 동참했습니다.
무려 다섯 개 햄버거 브랜드가 협력해 유나이티드 버거를 만든 거죠.
이 버거는 예정대로 9월 21일 딱 하루만 애틀랜타의 팝업스토어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1,500개의 프리 버거도 맛볼 수 있다고 하고요. 나아가 다섯 개 체인은 피스 원데이에 기부도 할 거라고 합니다.
왠지 맥도날드가 버거킹에 진 듯한 느낌입니다. 버거팅의 의도가 100% 순수했든, 아니면 라이벌 의식에서 나왔든 결과적으로 미국 내‘ 평화의 날’에 대한 인지도를 높였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했습니다. 세계 1위 브랜드인 맥도날드는 다소 위트가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고요.
다섯 개 브랜드가 모여 팝업 스토어에서 파는 햄버거가 얼마의 매출을 낼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버거킹의 호기로운 제안은 버거킹의 이미지를 바꿨을 겁니다.‘ 세계 평화’에 동참하는 일은 누구나 반기는 일일 테니까요.
당신의 숨은 생각에 동의하고 싶습니다
이제 소비자들은 물건이 아닌 브랜드의 철학을 구매한다고 합니다. 그들과 내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세상을 꿈꿔야‘ 선택’을 하게 된다는 거죠. 하지만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는지 쉽게 내보이지 않습니다. 때론 그들도 미처 깨닫지 못한 숨은 마음이 있기도 하고요. 수많은 브랜드는 그 숨은 생각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들이 반가워하고 관심 가질 만한 숨은 생각.
그래서인지 세제 브랜드인 타이드(Tide)는 동성 결혼을 소재로 광고를 만들고, 기네스(Guiness) 또한 격렬한 스포츠인 럭비 선수이자 동성애자인 가렛 토마스(Gareth Thomas)를 내세워 이야기를 전하기도 합니다. 우리 브랜드는 당신의 결정을 존중하며 함께한다는 의미를 전하고 있는 거죠.
프랑스의 버거킹은 대신 줄을 서주는 서비스까지 선보였습니다.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주문하기 위해 줄서는 일은 누구에게나 다소 귀찮은 일이죠.
프랑스의 버거킹은 이 생각에 동의해 대신 줄을 서주겠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 제품이 맛있고, 우리 세제가 잘 지워지고, 우리 맥주가 끝내준다는 얘기는 기본으로 깔려 있습니다. 우리 제품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우리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래야 사람들은 크게 차이가 없는 제품이라도 생각의 차이를 보고 선택을 하게 될 테니까요. 제품의 차이를 넘어서 생각의 차이를 보여주고 동의를 얻는 게 가장 큰 과제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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