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장이가 만드는 크리스마스
신 숙 자 | CD | sjshina@hsad.co.kr
크리스마스엔 왠지 꼭 산타클로스가 나오는 영화를 봐야만 할 거 같고, 눈 내리는 풍경 속 따뜻한 이야기를 보고 싶습니다. 상투적일지라도 그래야 크리스마스인 것 같고, 제대로 즐기는 듯한 기분이 들지요. 이 시기엔 광고들도 기발해지려고 하기보다는 따뜻해지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에 기대하는 건 ‘따뜻한 행복’이기 때문일테죠.
언젠가부터 영국 존루이스(John Lewis) 백화점 광고는 겨울이면 기다려지는 광고가 됐습니다. 크리스마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명화나 외화 시리즈처럼, 잊지 않고 크리스마스를 그려내니까요. 광고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는 크리스마스, 올해의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했을까요?
크리스마스엔 존루이스 광고를 보세요
올해 존루이스의 크리스마스 주인공은 ‘몬티’라는 펭귄입니다.
몬티는 남자 아이와 함께 삽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해집니다. 함께 블록을 쌓고 트램펄린도 타고 공원도 산책합니다. 축구도 하고 눈썰매도 타죠. 둘은 더없이 가까워 보입니다. 하지만 펭귄 몬티는 때때로 외로움을 느낍니다. TV에 나오는 키스 장면을 보며 슬픈 표정을 짓고, 공원을 거니는 연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버스 안에서도 벤치에 나란히 앉은 노부부를 바라보며 외로움을 느끼는 듯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어린 꼬마는 뭔가 결심을 하죠.
드디어 크리스마스 아침, 꼬마는 펭귄을 데리고 거실로 갑니다. 눈을 가린 채, 크리스마스 트리가 놓여 있는 곳으로 가죠. 그리고 눈을 가린 손을 치웁니다. 순간, 펭귄은 놀란 눈으로 바뀝니다. 눈앞에 예쁜 여자 친구 펭귄, 메이블이 깜짝 등장한 거죠. 외로워하던 펭귄을 위해 소년이 준비한 선물입니다. 몬티는 기뻐하며 선물 상자 속에 숨어있던 메이블에게 다가가죠. 그들의 행복한 모습에 아이도 기뻐합니다. 거실에 들어선 아이의 엄마는 그 모습을 보고 애틋한 표정을 짓죠. 엄마의 시선으로 다시 아이를 바라보니, 줄곧 살아있는 동물인 줄 알았던 펭귄이 장난감 펭귄이었음이 밝혀집니다. 아이는 장난감 펭귄 한 쌍을 들고 기뻐합니다. 아이에겐 장난감 펭귄도 진짜 교감하는 친구나 다름없기에 어디든 데려가고, 함께 놀고 함께 기쁨을 나눠왔던 거죠. 인형이지만 외로워할 펭귄을 위해 친구까지 선물한 거고요. 아이의 동심이 빛나는 순간, “누군가에게 그들이 꿈꾸는 크리스마스를 선물하세요”라는 카피로 광고는 끝을 맺습니다. 기발한 부분이나 자극적인 부분은 없습니다. 줄곧 아이의 시선으로 아름다운 동심을 그렸을 뿐입니다. 하지만 울려 퍼지는 존 레논의 곡 <Real Love>와 함께 잔잔한 아름다움이 전해집니다.
이 펭귄은 백화점에 가면 3D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카드로도 만들고, 인터랙티브한 캐릭터로도 만들어 아이들이 가상공간에서 함께 놀 수 있게 할 예정이라고도 합니다. 게다가 트위터 계정까지 있어 많은 사람이 몬티를 팔로우합니다. 메이블과의 사랑을 보여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그린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기도 하고, 오늘의 기분에 대해 얘기하기도 합니다. 광고 속 꼬마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실제 살아있는 펭귄이 되어 주고 있는 거죠. CG로 리얼한 연기가 가능해진 펭귄이지만, 아이와 동물의 교감은 언제 봐도 더 없이 행복한 장면입니다. 존루이스는 올해도 ‘잔잔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무리 없이 해낸 듯합니다.
펭귄 북스의 펭귄도 크리스마스를 얘기합니다
펭귄이 대표 아이콘인 영국의 펭귄북스(Penguin Books)는 존루이스의 몬티를 보고 마음이 불편했나 봅니다.
#penguinwars라는 해시태그를 만들며 존루이스를 패러디했습니다. <Real Love>와 유사한 톤의 음악이 흐르면서 존루이스 광고의 뒷부분인 듯한 그림이 등장합니다. 펭귄 북스의 펭귄도 역시 크리스마스트리 밑 선물 박스에서 메이블을 발견합니다. 존루이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반갑게 여자 친구를 향해서 달려가죠. 하지만 결론은 조금 다릅니다. 기쁘게 달려가던 펭귄은 여자 친구를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옆에 쌓인 펭귄북스의 책을 향해 달려갑니다. 여자 친구가 아니라 책을 보고 기뻐 달려갔던 거죠. 크리스마스에 진짜 당신이 기뻐할 펭귄은 존루이스의 펭귄이 아니라 펭귄북스의 펭귄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펭귄북스는 얘기합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그들이 꿈꿔온 펭귄을 선물하세요.”
Sainsbury’s는 실화를 선택했습니다
올해는 1차대전이 일어난 지 100년 되는 해입니다. 영국의 슈퍼마켓 체인 세인즈버리(Sainsbury’s)는 그때의 ‘ 기적’을 얘기하기로 했습니다.
1914년 크리스마스 이브, 영국군과 독일군은 대치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어디선가 캐럴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영국군이 시작한 캐럴에 독일군이 화답하기 시작했고, 기적적으로 그들은 ‘크리스마스 휴전’을 맞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 데이, 이틀 간 축구를 하고 음식을 나누며 잠시 평화로운 시간을 가졌던 거죠. 세인즈버리 자선단체 ‘Royal British Region’과 함께 그 이야기를 다시 그렸습니다.
고향에서 온 초콜릿을 들여다보는 영국 병사, 역시 크리스마스 크래커를 들여다보던 독일 병사. 그들은 영국군 참호에서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습니다. 그리고 언어는 다르지만 함께 부르기 시작하죠. 그때 용기를 낸 영국군이 참호 밖으로 조심히 나옵니다. 그의 등장에 독일군은 혼비백산합니다. 모두 갑작스런 움직임에 비상태세를 갖추죠. 하지만 영국군은 두 손을 높이 들고 조심히 참호 밖으로 나올 뿐입니다. 그 모습에 역시 용기를 낸 독일군도 밖으로 나옵니다. 그러자 다른 군인들도 참호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고, 악수를 나누고 음식을 나누고 축구를 합니다. 그렇게 이틀간 꿈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크리스마스는 어김없이 지나가고 어디선가 총성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각자의 참호 속으로 돌아갈 시간인 거죠. 아쉬운 두 나라의 군인은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대치 상태로 돌아갑니다. 그 때 주머니에 뭔가가 잡힙니다. 꺼내 보니 영국군이 몰래 넣어둔 초콜릿입니다. 영국군의 주머니에도 독일군이 넣어 놓은 크래커가 보입니다. 상황이 그들을 적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서로에게 좋은 크리스마스를 기원하는 마음은 같았던 거죠.
세인즈버리는 광고에 등장한 초콜릿 포장 그대로 매장에서 판매한다고 합니다. 수익금은 자선단체에 기부된다고 하고요. 영화를 보듯 완성도 높게 재현해 낸 광고는 크리스마스다운 감동을 전합니다. <가디언>을 비롯한 몇몇 언론은 전쟁의 아픔과 희생, 두려움을 미화시킨다며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났던 ‘기적’이고, 그들은실제로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기원하는 마음을 나눴을 겁니다. 그래서 광고는 감동이 배가됩니다. 비록 서로에게 총을 겨눴던 전쟁 중이었지만, 크리스마스엔 우리 모두 이런 ‘기적’을 듣고 싶어 하니까요.
광고장이의 크리스마스는 일찍 시작됩니다
영국 브랜드들은 특히 더 크리스마스에 공을 들이는 듯합니다. 존루이스는 물론이고 여러 백화점과 슈퍼마켓 체인들은 저마다의 따뜻한 이야기 만들기에 정성을 들입니다. 그만큼 광고장이들의 크리스마스는 일찍 시작되겠지요.
여름이 한창인 시절, 그들은 따뜻한 메시지를 생각하고 눈 오는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보고 지우고 했을 겁니다. 감동을 위해, 이야기는 더 길어지고 완성도는 더 높아지고 그들의 고민도 더 깊어졌을 겁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이런 광고 메시지를 만드는 일은 즐겼을 것 같습니다. 비록 물건을 파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감동을 느끼게 하는 일. 광고장이가 작가가 되고 동화를 그리고 영화를 만들어도 좋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특별한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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