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made! 새로운 모든 것은 당신 자신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인터뷰 및 정리 : 이 유 진 | 디지털캠페인팀 대리 | eg@hsad.co.kr
<자유론>의 작가 존 스튜어트 밀은“ 소수의 비주류가 결국 주류를 납득시킬 것 ”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이 시대의 음악과 패션 분야에서 불고 있는 현상을 설명할 때 꽤나 유용한 말인 듯하다. 이른바 ‘ 길거리 문화 ’인스트리트 패션이 이제는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의 런웨이를 장악하는 현상이 보이는가 하면,‘ 불량한 음악’정도로 치부되던 힙합이 각종 음악차트의 상위권을 차지하며‘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금요일의 부산함이 찾아오기 전, 주중의 마지막 한적함을 느낄 수 있는 오후 2시, 핫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는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우리는 음악비평가 김봉현 씨를 만났다.
본인을 소개하신다면?
대중음악에 관해 저널리즘에 입각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 한마디로하면 ‘대중음악 비평가’라고 할 수 있죠.
다양한 음악 장르 중에서도 ‘힙합’을 주 무기로 삼은 이유가 있나요?
무언가 전략적인 이유가 있어서 힙합을 주 장르로 삼은 건 아니에요. 선배 음악평론가나 비평가와는 다르게 힙합을 듣고 자랐기 때문에, 또 가장 좋아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주로 얘기하게 된 거죠.
처음으로 접했던 힙합 음악은 무엇인가요?
국내 뮤지션 중에서는 서태지·현진영 그리고 해외 힙합 중에서는 LL COOL J의 <미스터 스미스(Mr. Smith)>를 처음으로 접했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때 제가 들었던 음반이 사실상 그들의 주요 곡은 거의 수록되지 않은 반쪽자리 음반이었다는 거예요. 당시엔 심의가 엄격했기 때문이죠. 그 땐 그게 전부인 줄 알았는데… 후훗~
지난번 HS애드 ‘Difference School’에 오셨을 때 힙합 정신인 ‘셀프메이드(Selfmade)’를 많이 강조하셨죠. 강의에 참석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해 간략하게 다시 소개해 주세요.
힙합이란 단순히 음악의 한 영역 정도로 설명하기는 힘든 장르입니다. 특정 인종이나 지리적 위치 같은 특성이 강하게 내재돼 있기 때문이죠. 힙합은 미국 흑인들의 어려운 생활, 빈민가의 삶, 즉 게토(Ghetto)를 조명하는 데에서 생성됐다고 할 수 있어요. 빈민가에서 태어난 흑인들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란 NBA 스타가 되거나 랩스타(Rap Star)가 되는 것이었죠.
그런데 그건 순전히 자신의 노력만으로도 이뤄낼 수 있는 것이기에 ‘셀프메이드’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겁니다. 결국 셀프메이드 정신은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고 성공에 이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죠. 다만 일반적인 차원의 뻐김이나 자랑이 아닌, ‘너도 이룰 수 있는 성공’이라는 점을 의미한다는 면에서 좀 더 정신적인 측면이 강조된다 하겠죠.
그렇다면 톰 포드(Tom Ford) 같은 유명 브랜드와 협업하는 제이지(Jay-Z)라든가, 에이셉 라키(ASAP Rocky)의 <패션킬라(Fashion Killa)>에서 한참 표현되는 럭셔리 브랜드들은 셀프메이드 정신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겉으로 보자면 자칫 자랑이나 과시처럼 보일 수도 있고, 유명 브랜드를 좋아하는 걸로 느껴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셀프메이드 정신을 이어나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이지도 초기에는 스트리트 출신임을 강조하기 위해 듀렉이나 팀버랜드 워커를 신고 나왔지만, 어느 정도의 입지에 오른 뒤에는 지방시의 수석 디자이너가 만든 수트를 입었어요. 자신이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건데, 그 바탕에는 셀프메이드 정신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주류와 비주류의 확연한 차이로 오히려 아이돌을 통해 정제된, 거세된 힙합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스템화된, 반쪽자리 힙합이라는 비판도 있는데, 여기서도 셀프메이드 정신을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힙합은 수입 음반을 접할 수 있고, 비싼 가격을 감수할 수 있는,소위 ‘있는 집 자녀’들을 통해 먼저 전파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힙합이라는 장르의 본질적 요소가 거세당한 채 단지 ‘겉멋으로 보이는’ 일부만 전달됐다고 할 수 있어요. 게다가 한국의 가요시장 시스템이 매우 좁고도 기형적이기 때문에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이 사실상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서는 생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하지만 요즘은 이야기가 살짝 달라집니다. 최근 핫이슈가 되고 있는 Dok2(도끼)라든가 콰이엇(The Quiett)·매드클라운·빈지노 같은 친구들은 별도로 소속사와 계약하지 않고 힙합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 음악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노랫말이나 SNS의 포스팅들을 보면 어느 정도 설프메이드 정신이 녹아 있는 것을 알 수 있고요.
힙합평론가로서 보는 현재 한국 힙합의 위치나 위상은 어떤가요?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꼽으라면?
일단 대학축제 자체가 힙합 일색이죠. <Show me the money>를 포함한 방송콘텐츠를 통해 힙합이 많이 노출되면서 이전과는 다르게 긍정적인 문화로 받아들여지는 듯합니다. 아쉬운 점은 특정 스타에게만 의존하는 ‘스타파워’적인 부분이 너무 크다는 겁니다. 힙합을 대중화시키는 데 일조한 이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힙합 정신의 본질적 측면이 아닌 겉모습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아쉽습니다.
지난번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가 내한했을 때를 예로 들어볼까요? 그의 음악적 배경은 무엇인지, 그가 어떤 위상을 지닌 뮤지션인지 알고 환호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속된 말로 ‘힙합을 하는 흑형’이라는 식으로만 받아들이는 등 굉장히 얕은 태도를 보였습니다. 반면 아티스트 측면에서 보자면 엄청난 성숙기가 할 수 있어요. 콰이엇의 경우 가사가 매우 서정적이고, 표현에 있어서도 미국의 정통적 힙합 화법을 한국식으로 얘기하는 방식을 추구하는 등 꽤 신경을 쓴 느낌이 들죠.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국내의 아티스트이기도 합니다.
친하게 지내는 뮤지션들이 궁금하군요.
음악 비평가, 평론가로서 팔짱을 끼고 뒤로 물러서서 아티스트들을 내려 보거나 단지 지켜보거나 하려고 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하는 행사들에 다양한 래퍼들과 아티스트들을 초대해 서로 교류하는 기회를 많이 가지려 하죠. 현재 친한 아티스트로는 ‘Poetic Justice’라는 퍼포먼스를 같이 하고 있는 시인 김경주와 MC 메타가 있고, 힙합을 하는 이들 중에서는 키비Keebee)·콰이엇 등과 가깝게 지냅니다.
평론을 하려면 책이나 영화도 많이 접해야 할 텐데, 선호하는 분야가 있으신가요?
솔직히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비평을 하다보면 자칫 외면하기 쉬운,‘ 아름다운 글을 위한 문장력’을 기르기 위해 산문집 등을 읽고 있어요. 가장 최근
에 읽은 책은 프랑스 산문집인데, 제목이 굉장히 길죠. <짝 이룬 남녀는 서로 사랑한다. 당연하다. 짝 이룬 남녀는 서로 미워하게 된다. 그럴 법하다. 짝 이룬 남
녀는 서로를 파괴할 수 있다. 이는 아주 드물고 우발적이다. 또 짝 이룬 남녀는 영원히 서로에게 토라질 수 있다. 개 한 마리나 심리분석가가 이들의 고약한 성
격을 누그러뜨려 준다 해도 말이다>라는 책이에요.
책보다는 영화를 선호합니다.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받을 수 있으니까요, 후훗~’ 얼마 전 ‘<나를 찾아줘(Gone Girl)>’를 인상 깊게 봤어요. 개인적으로 좋아
하는 영화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과 <첨밀밀>입니다. 특히 <첨밀밀>은 진가신 감독이 그 영화 하나 만듦으로써 평생 할 일을 다 한게 아닐까 느낄 정도로 좋아합니다. 힙합 관련 영화 중에는 <대부>도 좋지만, 특히 <스카페이스(Scarface)>를 추천합니다. 최근 콰이엇·MC. 메타와 함께 힙합과 영화의 연결고리를 살펴보는 행사를 가졌는데,‘ 힙합이 숭배한 영화’라는 토크쇼 주제로 삼았을 정도로 힙합과 연관이 있습니다.
최근 힙합이 여러 브랜드를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는 기회가 생기고, 힙합의 요소가 가미된 광고도 많이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떤 음악 장르에서나 필연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는 과정이 있는데, 바로 대중화 단계에서 따르는 진통입니다. 본질적으로 사람들은 쉬운 걸 좋아합니다. 그리
고 ‘대세’로 소비시키는 과정에는 분명히 거품이 끼게 마련이죠. 힙합을 좋아한다고 모두 저 같은 비평가나 힙합 마니아처럼 본질적인 것부터 향유할 수는 없
겠죠. 결국 가볍게 소비되는 과정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힙합을 테마로 한 광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광고는?
농구스타 엘렌 아이버슨(Ellen Iverson)을 기용해 만든 리복의 광고예요. 광고전반의 내용이 랩으로 구성돼 있는데, 심지어 농구장에서 나는 모든 소리, 공
튀기는 소리, 호각 소리, 신발 끄는 소리가 스크래치로 구성돼 있어요.
(※`참고: http://www.youtube.com/watch?v=0Yk2Dlh2bi4).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저는 창의성, 크리에이티비티라는 것을 ‘샘플링(Sampling)’과 연관 지어 얘기하고 싶어요. 힙합에 있어서의 샘플링이란 우리나라에서 여겨지는 것(카피)과는 다르게 굉장히 창의적인 작법입니다. 원래 있던 것을 기계를 통해 빠르게, 또는 느리게, 또는 컷앤페이스트(Cut & Paste; 잘라서 모자이크·콜라주) 식으로 변화시켜서 만들어내는 건 순수창작과는 또 다른 의미의 창작법입니다. 원곡자에게 샘플링을 통해 변화시킨 곡을 들려줘도 거의 못 맞추는 편이죠.
‘힙합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았다, 하지만 힙합은 모든 것을 재창조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광고 또한 힙합을 ‘광고’로 대체하면 마찬가지이지 않을까요?
결국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는 모방 속에서 나온다’고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힙합 평론가’가 아닌 ‘음악비평가’ 김봉현 씨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끝이 났다. 힙합에 대해, 그리고 음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9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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