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찾아 떠난 700일간의 여행’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개폐회식
전 병 석 | BTL마케팅팀 부장 | bsjun@hsad.co.kr
‘한류’라는 단어 하나로 몇 천 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묻혀버렸지만,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일뿐, 2014년 가을은 아시아와 인천이 함께 즐긴 행복한 시간여행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사람들이 알지 못한, 우리가 준비했던 몇 가지 이야기를, 아시아와 인천이 함께하고자 했던 우리가 만든 이야기들을 나누고자 한다.
후회 없는 한 판
대한민국 메이저 광고회사 3사가 대결하는 최초의 국제 스포츠 이벤트 연출제작 총괄대행 사업이었다. 그동안은 정부에서 연출제작단을 만들고 그 중 일부를 제작대행하는 형식이었으나,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이하 AG) 개폐회식은 기획-제작-실행의 총괄대행사를 뽑는 최초의 입찰이었다. 1년여의 준비기간 동안 대부분은 ‘다른 두 회사 간의 경쟁이며 그 중 한 회사가 수주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길을 묵묵히 준비하는 가운데 발주처인 AG조직위에서 ‘HS애드도 잘 준비하고 있는 게 맞느냐’는 말도 흘러나왔다. 그런 과정 속에 PT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번의 노력과 그간 쌓은 저력에 대한 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모두는 차가 흔들릴 정도로 환호성을 울렸고, 서로 고생했다는 말을 뱉고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2012년 겨울부터 우리는 임권택 총감독을 선장으로, 장진 총연출을 항해사로 아시아를 향한 여행을 떠났다.
다시 처음으로
‘가족’을 컨셉트로 만들어낸 우리의 연출안은 기획력과 실행력이 있는 대행사를 선별하는 도구였을 뿐, 계약서와 함께 조직위 캐비닛으로 들어가 버렸다. 2013년 초에 총감독·총연출·조직위와 함께한 워크숍에서 모든 것은 처음으로 돌아갔고, 한창 공사중인 개폐회식이 열리는 주경기장과 함께 연출안도 하나씩 만들어졌다. 다행스러운 것은 ‘어려운 이야기 하지 말고, 자국 문화를 자랑하지도 말고, 경기장보다는 집에서 시청하는 시청자 중심으로, 아시아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자’는 우리의 이야기에 모두 공감했다는 점이다. 소치동계올림픽의 개폐회식을 보고나서는 아무도 우리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무언가 달라야 한다
이전의 국제 스포츠 이벤트 개폐회식은 모두 ‘영어’를 공식언어로 사용했다. 올림픽도 월드컵도 대륙별 대회도 자국의언어 외에 영어가 공식언어로 사용된 것이다. 그런데 영어권이 아닌 아시아에서는 중동·동남아·동북아·중앙아시아 등에서 모두 29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보고 즐기는 문화공연 외에 선수단이 참가하는 공식행사에서 단 한 명의 선수도 소외당하는 일이 없도록 선수단 입장과 VIP 연설, 선수 및 심판대표 선서 모두를 29개의 언어로 표출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3개월 동안 국내에 있는 참가국의 대사관, 또 대사관이 없는 참가국은 해외에 있는 참가국의 대사관에 직접 전화를 걸고 메일을 보내 공식행사에서 진행하는 모든 내용들을 해당국 언어로 번역했다. 그리고 관람석 난간 2개의 면, 총 360미터의 길이에 LED를 설치하고 모두 똑같은 면적으로 구역을 나누어 참가국의 언어로 송출했다. 이는 국제 스포츠 이벤트 사상 최초로 진행되는 일이었으나, 아쉽게도 기사나 뉴스 그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아시아는 인천을 기억할 것입니다
언제나 비교대상이 되곤 하는 외국 사례들은 엄청난 자본과 물량이 투입되는 것인데, 우리에겐 늘 그들 못지않은 개폐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박이 있었다. 한 예로 소치동계올림픽에 투입된 조명장치의 비용이 이번 AG 개폐회식의 전체 비용보다 많았다고 한다. 이에 장진 감독과 우리는 ‘시민사회가 만들어 내는, 그래서 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도 적은 예산으로 아시아경기대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주자’고 했다. 개폐회식 출연진 대부분을 인천시민으로 구성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VIP 환영인사의 청사초롱은 인천의 AG서포터즈와 인천시민, 그리고 인천연극협회분들이 만들어주었고, 919명의 인천시민합창단은 고은 시인의 시와 김영동 선생의 곡을 조수미 씨와 함께 아름다운 인천의 소리로 만들어 개회식 첫 번째 문화공연으로 장식했다. 예쁜 한복을 입고 청사초롱으로 VIP 입장의 길을 밝힌 어린이들은 주경기장 옆의 서곶초등학교 남녀 학생들로 선발했으며, 88올림픽의 오마주와 같은 굴렁쇠 소년소녀들은 인천 지역 초등학교 체조선수들로 구성했다. 결국 전체 출연진의 70% 이상이 인천시민들이었던, 인천이 준비하고 인천이 만든 개폐회식인 셈이다. 성화 점화의 주인공 역시 이영애 씨가 아닌, 체조와 수영 부문의 인천지역 초등학교 스포츠 꿈나무들이었으나 카메라와 언론은 이영애 씨에게만 포커싱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날 그 시간까지 인천시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흘린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 낸 개폐회식은 참가한 모든 아시아 국가 선수들의 가슴속에 담겨져 있을 것이다. 엄마의 손을 잡고 종종걸음으로 무대 위로 뛰어 들어오던 최연소 인천시민합창단 소년의 얼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700여 일의 여정, 오래 간직될 여운
‘HS애드가 하면 다르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컨테이너박스의 연출제작단 사무실에서 3개월 동안 더위와 싸우며 일하면서도, 행사를 처음해보는 관계자분들과 언쟁을 벌이면서도 폐회식의 마지막 성화가 꺼지는 순간을 생각하며 700여 일을 달려왔다. 연출 행사를 진행하면서 처음으로 안전 매뉴얼도 만들었고, 사람들이 모두 잠든 새벽에 성화 테스트를 하며 꼬박 밤을 새우기도 했다. 우리는 달랐다. 아니 달랐다고 믿었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점검하고 마지막까지 확인해가면서, 획기적이기보다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행사를 준비했다.‘ 또 해도 잘할 것 같으냐’고 누가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또 해보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쉽게 끄덕이지는 못할 듯싶다. 아마도 너무 많은 시간과 열정이 그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함께했던 우리 팀원들과 협력사, 관계자 모두에게 감사를 드린다. 아직도 사무실에서 자원봉사자의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난 아직 2014년 9월의 그 어느날쯤에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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