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올림픽대로
정 현 진 | 브랜드액티베이션2팀 대리 | cristalzzang@hsad.co.kr
숙면을 취한 것도 오래된 일이다. 휴가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잡기 위해, 단 한 장의 여백도 남기지 못한 채, ‘무엇’이라도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일상을 채우다 보니 꿀잠을 자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갈수록 삭막해져 가는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그나마 가지고 있는 이 작은 기득권마저 놓치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숨 막히는 사투를 벌여야 하는 우리의 하루하루는 평범한 일상의 영역이라기보다 차라리 처절한 생존의 영역에 가깝다. 그렇기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시간의 여백을 남겨 둔다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주변의 모두에겐 그저 무의미한 영역의 한 조각일 뿐, 더 이상의 의미를 쟁여둘 수 없다.
답답함을 이길 수 없을 때 우리는 때때로 새로운 도전을 즐기려고 애쓴다. 그러다 문득, 이마저도 강박의 영역이라고 생각이 미치게 될 때면 쳇바퀴처럼 일상의 영역으로 돌아가서 무의미함과 애써 싸우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소크라테스의 삶도, 아인슈타인의 삶도, 공자의삶도, 이순신의 삶도, 우리 인생의 영원한 나침반이 될 수는 없다. 단지 우리 앞에 놓인 두 가지 불변의 명제,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만이 우리의 삶에 놓여 있기 때문에, 어떻게 이 공간을 채울지는 각자가 가진 몫일 뿐이다.
보이지 않는 인생의 길을, 시간의 기차에 몸을 맡기고 무작정 죽음을 향해 떠나야 하는 우리들의 인생,참 막막하지 않은가?
농구코트와 땀방울, 삶의 여백
막막함을 이길 수 없을 때, 나는 때때로 일상의 소소한 변화에 주목하곤 한다. 돈은 없고, 시간도 없는데, 일상의 여백마저 느낄 수 없을 때 나는 간단한 방법으로 이 절박한 마음을 달래곤 한다. 나의 주된 취미는 농구다. 주말에는 언제나 체육관에서 농구공 튀기는 소리를 들으며 내 몸을 맡긴다. 더군다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시합이 있을 때면 시간이 나와 동행하는지도 모른 채 연신 땀을 흘리며 코트 위를 돌아다닌다. 매일 회사에서 숨죽이며 눈치 보는 땀방울들이 이 시간만큼은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내 몸을 감싼다.
시합은 주로 이른 아침에 시작된다. 내 몸과 마음의 갈등은 좀처럼 휴식이 없다.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의견에 각을 세운다. 하지만 언제나 몸은 마음을 이겨낸다. 그리하여 나의 신경계는 이불을 박차고, 운전대로 향하게끔 프로그래밍화되어 있다. 일찍 일어나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불변의 명제를 지닌 나의 여정은 지하주차장에서부터 비롯된다. 아침 햇살에 시린 작디작은 눈을 고급 선글라스로 방어하며 한 손에는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한 손에는 부드러운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된장과 젠장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극도의 흥분을 만끽한다. 나만의 낯선 여행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올림픽대로에는 차가 없고, 탁 트인 한강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잠깐 흘깃 시선을 돌린다 한들, 내 앞에는 나를 방해하는 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브레이크를 밟아야만 한다는 강박이 사라진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는 추억으로 나를 인도한다. 흥얼거리다보면, 어느새 모양이 다른 한강 다리들과 각각 인사
를 한다. 내가 그렇게 미친놈은 아니다. 하지만 된장과 젠장 사이의 엔도르핀이, 가야만 하는 시간의 의식 속에서 잠시 동안 나를 배제시켜준다. 굉장한 사건이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나에게 아침 7시 올림픽대로의 낯선 풍경은 내 일상을 통통하게 한다.삐죽빼죽 솟은 개성 만점 빌딩들과 키재기를 하고, 쿨렁쿨렁 한강 위의 개성 만점 철새들과 먹을거리 사재기를 하다 보면 훅 지나버린 시간과 함께, 목적지에 도착한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죽는다. 인생은, 사는 건 각자의 몫이다. 갑갑할 때나 막막할 때나, 목적지에 도달하면 나와 함께 공을 튀기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과 승패를 가르는 전쟁 같은 치열한 시합을 마치고 나면 젠장으로 시작하는 대화가 된장찌개로 마무리된다. 그들과 함께 하기에 의미가 있는 일상이 되고, 그들과 함께 하기에 농구하러 온길이 행복한 여백이 된다. 땀방울을 자랑하고 나면, 나는 또 다른 여행을 떠난다.
“여보세요? 자기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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