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선생
이 현 종 | 대표 CD - Chief Creative Director | jjongcd@hsad.co.kr
ㄷ선배는 장난기가 많았다. 누가 보면 하얀 얼굴에 수줍은 미소만 흘리고 있어 오해하기 십상이었지만, 살금살금, 짓궂은 짓은 도맡아 했다. 당시 비좁은 고등학교 방송반 스튜디오는 까까머리 머슴아들의 아지트였는데, ㄷ선배는 엔지니어였고 난 아나운서였다. 아나운서라고 해봤자 뭐 대단한 방송을 한 것은 아니고, 고작 점심시간에 음반을 틀어주며 디제이를 보는 게 전부였다.고등학교 등교 첫 날, 운동장 조회에 빠져도 된다는 이야기에 혹해 방송반에 지원하게 됐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신문방송학과에 가게 됐고, 어떻게 보면 지금의 이 직업까지 이어지게 됐으니,사람 일이란 참 모를 일이다. 3년을 방송실에서 보내면서 못된 짓도 많이 했는데, 방송반 지도 선생님인 ㅈ선생님은 그런 우리를 늘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 같다. 하루는 ㄷ선배가 장난삼아 방송실 스튜디오 벽 한 쪽에 ‘해’자를, 반대편 쪽에 ‘골’자를 낙서해놓았는데, 우리는 ㅈ선생님만 방송실에 뜨면 전전긍긍하면서도 웃음을 참느라 무진 애를 써야 했다. 왜냐하면 당시 ㅈ선생님의 별명이 해골이었기 때문이었다(일각에선 화학선생님이었던 ㅈ선생님을 아보가드로라고 불렀던 기억도 있는데, 아무래도 우리에게 이건 별명으로서 너무 고상했다). 다행히도 선생님은 양쪽 면을 다 보는일이 없었다. 물론 본인의 별명을 알고 있었으니, 들키면 혼찌검이 날 일이었다. 가끔 이 일을 회상하면 빙그레 웃음이 돌기도 하고, 사람들의 머리 구조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떻게 그걸 못 발견하지? 그러면서 알고 있는 사람 입장에선 당연히 답이 보이는 것이 인생이지만,모르는 사람 입장에선 영원히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가 이 말도 안 되는 낙서사건을 두고 이런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해’자만 발견하고 도대체 무엇일까 평생을 고민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는
저 ‘해’는 태양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외쳐대며 대단한 발견인양 기자회견을 자청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저‘ 해’자의 필적을 파고들다 마침내‘ 해’자는 매직으로 씌어졌다는 것을 알아냈다며, 노벨상을 기대하기도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그것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었는데 뭐 그리들 난리인지 모르겠다며 요란 떠는 사람들을 무시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나라에선 ‘해’자가 모든이들이 숭배해야 할 이치라고 혹세무민하는 동안, 이웃 나라에선 ‘골’자 외엔 쳐다봐서도 안 될 무가치한 것이라고 치부하며 다른 쪽으론 오줌도 못 누게 할 것이다.
신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들이 이렇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나는 가끔 사람들의 신념을 보면 부럽기보다는 무서울 때가 있다. 그리고 많은 비극들은 그 신념이 상식을 벗어나 폭주할때 발생한다. 요즘 무서운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대체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 혹은 늘 보던 대로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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