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08 : HS애드 30년, 그 역사의 기록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1984년, 시대의 변화는 LG Ad를 원했다
1981년 제5공화국 출범을 전후해 국내 광고시장 및 매체환경이 요동쳤다. 언론통폐합 및 방송공영화 등으로 큰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 특히 한국방송광고공사(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KOBACO)가 설립되어 전파광고 영업 일괄 대행과 함께 전파광고 대행자격 인정 제도가 시행되면서 주요 기업들은 별도의 광고회사 설립을 적극 추진하기 시작했다. 당시 럭키금성(현 LG)의 광고활동을 전담하고 있던 희성산업은 독립된 광고회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전파매체 대행 수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해 종합광고 기능을 수행하는 데 제동이 걸렸다. 기존의 체제로는 독립광고대행사에 비해 여러 모로 불리한 입장에 놓인 것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고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전파광고 대행사로 인정받기 위해 광고사업부를 별도의 종합광고회사로 분리, 발전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에 1984년 5월부터 회사 설립 준비작업을 본격화하고, 회사 명칭을 ‘주식회사 엘·지·애드(LG Ad Inc.)’로 결정함으로써 LG브랜드를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어 5월 25일 발기인 총회를 거쳐 같은 달 30일 창립총회를 가짐으로써 마침내 LG애드가 정식 출범하게 됐다.
초대 사장은 변규칠 럭키금성 기조실 사장이 겸임했으며, 윤좌현 부사장 총괄 아래 3본부 22부 13팀 7과의 조직과 142명의 인원을 갖추었다. LG애드는 조속한 시기에 체제를 정비한다는 목표 아래 최우선 과제로 ①종합광고회사로서의 체제 정비 ②외부 광고주 유치 ③국제화 추진 ④전파광고 대행사 인정 획득 등을 설정했다.LG애드는 최초의 외부 광고주로 태극당 예식부·새로나백화점 등을 영입하고, 전사적으로 꾸준히 영입 노력을 더해 1985년에는 경농·에스콰이아제화·태창·안국약품·노스웨스트항공 등 총 21개 사를 유치하고 25억 원의 외부 광고주 취급실적을 기록했다. 이어 1986년에는 유한양행·도투락·한국나이키 등 20개 사를 추가로 영입해 외부 광고주 취급액 100억 원을 돌파하면서 전파광고 대행자격 요건을 갖추게 되었다. 출범 첫 해 LG애드의 취급액은 전년 실적 265억 원에 비해 51.3% 성장한 401억 원 규모를 기록했다. 이후 1985년 경제침체로 광고산업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기도 했으나 출범 3차년도에는 다시 491억 원이 넘는 취급액을 이뤘다. 아울러 1987년 2월 1일자로 전파광고 대행자격을 획득, 창립 2년 반 만에 숙원사업을 해결하면서 명실상부한 종합광고회사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한편 그 해 연말에는 국제화재보험빌딩에서 서울 마포구 공덕동 소재 럭키금성 마포빌딩으로 사옥을 이전, ‘LG애드 마포시대’를 개막하게 되었다.

 

준비된 광고역량을 기반으로 양적, 질적 빠른 성장

LG애드는 출범 초기부터 광고회사의 핵심가치인 크리에이티브 역량 강화에 집중했다. 희성산업에서부터 실시해온 홍보·광고 경진대회는 6회 대회부터 그 명칭을 ‘LG애드 광고경진대회’로 바꾸어 전통을 이어갔다. 또한 사내의 노력도 활발했다. 회사 창립 시기인 1984년 5월부터 시행돼 현재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CRB’는 광고제작물의 크리에이티브 향상과 광고주 만족도 제고에 크게 기여해왔으며, 1986년에 발족한 LG애드 카피연구회는 매월 1회 정기세미나와 자료집 발간 등으로 광고의 질적 향상을 위한 디딤돌을 놓았다. 한국 광고산업 발전을 위한 노력도 남달랐다. 우수 인재의 수시채용은 물론, 1984년 7월부터 국내 광고회사 최초로 기업 인턴제도를 시행해 광고인을 꿈꾸는 대학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1985년에는 광고이론의 체계화 및 국내외 최신 광고정보의 전달을 통한 광고산업 발전에의 기여를 목적으로 사보 ‘LG Ad’를 창간해 지금까지 발간해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 광고기능을 더욱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역량 강화도 지속됐다. 우선 1980년대 중반부터는 복잡해진 시장상황과 다양해진 광고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마케팅 부문의 강화와 광고의 과학화에 전력을 기울였다. 1987년 2월에는 제작팀 명칭을 크리에이티브팀으로 변경해 자부심을 고취하고 크리에이티브 혁신 의지를 북돋웠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눈부셨다. 1987년 한국방송광고대상 최우수상을 시작으로, 1988년 일화 맥콜, 1989년 금성사 VTR 수퍼메리트, 1990년 럭키 랑데뷰샴푸 광고로 한국방송광고대상에서 3년 연속 대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뉴욕페스티벌·클리오광고제 등 해외 유명 광고제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SP 부문의 발전도 빼놓을 수 없다. 럭키금성의 여러 전시관·기념관 건립 및 다양한 전시회 참가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이 분야에서 다른 경쟁사보다 한발 앞선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한 것이다. 특히 1987년 럭키금성 트윈타워 준공과 함께 개관한 연암사이언스홀(현 LG사이언스홀)의 기획·시공·전시·운영 경험은 매우 의미 있는 성과로 축적되었다. 한편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됐다. 대학생들에게 광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 광고산업에 대한 관심 증진을 위해 1988년에 ‘LG애드 대학생 광고대상’ 공모전을 신설, 산학협동의 장을 마련한 것도 그 하나였다. 종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회사로 도약1990년대, 우리나라 광고시장은 시장 개방으로 인한 국제화의 물결과 광고회사 급증 등 큰 변화를 맞이했다. LG애드는 1989년 창립 5주년을 맞아 이 같은 대외 경영환경 변화에 대처하는 한편, 2000년대를 겨냥한 종합광고회사로서의 장기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기 위해 ‘제2창업운동’을 전개했다. 무엇보다 미래의 경영환경 속에서 최고의 광고회사로 존속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새로운 비전 수립 작업을 진행, 잠정적인 장기경영비전을 ‘최고의 종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회사’로 설정하고 ‘No.1 TMC 2000’을 슬로건으로 정했다.
잠정 비전에는 고품질의 광고 서비스 제공, 외부 광고주 비중 확대, 기존 사업영역 강화 및 신사업·뉴미디어의 확대, 국제광고 활성화, 전문인력 중점 육성 등이 주요 내용으로 담겼다. 1990년 2월, 장기 비전을 구현하기 위한 V추진본부가 사장 직속기구로 신설됐는데, V추진본부는 광고시장의 미래 예측과 사내 기업문화 의식조사, 선진 기업 방문 등 다각도의 검증과 준비를 거쳐 마침내 9월 18일 확정된 비전을 대내외에 발표했다.확정된 비전은 ‘자율경영을 기반으로 4대 매체 중심의 광고회사에서 종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회사로 도약’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광고회사의 핵심 자산인 사람, 즉 인재를 중시하는 정신을 담아 ‘도전하는 창조인’, ‘앞서가는 문화인’, ‘실천하는 협동인’ 등의 인재상을 정립하고 이를 사훈으로 제정했다. 1992년 7월 1일부터는 새로운 C.I를 채택해 사용했는데, 새 C.I는 국제화를 추구하는 기업 위상에 부응해 영문 레터마크로 제작됐다.  제작 부문은 CD제도를 도입하는 등 ‘No.1 크리에이티브’ 운동을 적극 전개했고, 그 성과는 다양하게 나타났다. 1993년 고객시리즈 그룹광고가 ‘제1회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 으뜸상을 수상했고, 광고학회 선정 ‘올해의 광고’로 금성사 Z블랙브라운관 ‘투우’편이 선정됐다. 1995년 뉴욕페스티벌에서는 금성 아트비전 TV광고가 국내광고 최초로 해외 광고제에서 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으며, 이듬해에는 카스맥주 광고캠페인이 뉴욕페스티벌 ‘제1회 AME 부문’에서 국내 첫 은메달을 수상했고, LG전자 싱싱냉장고 지면광고가 은상 수상의 기염을 토했다. LG애드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기 위한 발걸음이 가속되면서 1990년대 초반부터 해외시장 개척도 본격화됐다. 과거부터 유지해오던 일본의 덴츠, 미국의 BBDO 등과의 교류를 지속하는 한편, 1991년 동경지사를 시작으로 1995년 북경지사, 1996년 뉴욕지사 등을 잇따라 설립,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 나섰다.1995년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 있는 해였는데, 무엇보다 럭키금성의 C.I 개정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을 꼽을 수 있다. 당시 럭키금성은 자매사 기업명을 통일해 시너지를 높이고,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이미지 구축을 위한 공통의 글로벌 스탠더드 기업명과 심벌의 제정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보다 강력하고 통합적이며 체계적인 C.I 개발의 과제를 안고, 수개월의 조사와 수정을 거쳐 최종 확정된 것이 바로 ‘LG’라는 기업 브랜드와 ‘미래의 얼굴(The Face of the Future)’ 심벌이었다. LG의 새 얼굴을 알리기 위해 전개한 ‘사랑해요 LG’ TV캠페인도 친근한 로고송과 더불어 큰 호응을 얻어 단기간에 LG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IMF를 이긴 경영혁신, 세계를 이긴 크리에이티브
1997년 말 IMF 구제금융으로 인해 국내 경제 및 사회 모든 분야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광고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광고시장이 마이너스 성장으로 주저앉은 가운데, 기업들의 연쇄 부도 사태와 뒤따른 경기침체는 회사의 단기 경영전략은 물론, 중장기전략의 수정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이러한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책임경영의 정착과 불황극복을 위한 전사적 노력이 펼쳐졌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LG애드의 차별화된 크리에이티브 능력은 더더욱 빛을 발했다. 1998년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에서 LG 019 PCS ‘자장가’편이 전년도 영창피아노 ‘평화의 소리’편에 이어 2년 연속 대상을 수상하고, 연말에는 LG 019 PCS ‘아빠’편이 ‘대한민국광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또 부산에 미래 과학기술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청소년과학관을 개관하는 한편, 민간기업 최초로 대통령 취임식 행사를 맡아 진행함으로써 정부나 지자체들이 독자적으로 수행해오던 행사들을 광고회사 사업영역으로 확대하는 계기로 만들었다.1999년은 연초부터 좋은 소식들이 잇따랐다. 뉴욕페스티벌에서 LG싸이언 지면광고 ‘귀걸이’편이 은상을 수상하고, LG브랜드의 ‘사막’편이 동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 광고제 수상이 이어졌다. ‘사막’편은 ‘소비자가 뽑은 광고상’ 대상을 수상, 3년 연속 대상을 차지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LG애드는 이 해에 회사 경영의 투명성 제고 및 증권시장을 통한 자본 조달을 위해 증권거래소에 신규 상장함으로써 기업공개를 단행했다. 이어 12년 동안의 ‘마포시대’를 마감하고 여의도 LG트윈타워 빌딩으로 이전, ‘여의도 시대’를 열면서 ‘새로운 터전에서의 새로운 도약’을 다짐했다. 2000년 들어 LG애드는 ‘기업가치의 혁신, 사업별 핵심역량 배가, 성과주의 문화의 정착’을 경영방침으로 정하고 실천에 나섰다. 우선 사내 시스템 및 광고 관련 전문 시스템의 체계적 정비와 구축을 통해 광고주 서비스 제고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독자적 브랜드진단시스템인 ‘LG-BreMS’를 구축했으며, 2001년에는 통합적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하는 ‘브랜드전략연구소’를 설립했다. 이어 국내 최초의 네티즌 행동양식 보고서인 ‘NPR’을 발간해 소비자 연구 분야의 새로운 장을 개척했다. 미디어 부문은 더욱 복잡해진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는 미디어 컨설팅 시스템인 ‘M·POPS’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광고주 서비스에 적극 나섰다. 이렇듯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과학적, 체계적 수행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가운데 국가적 대형행사에 대한 LG애드의 역량과 경험은 업계의 독보적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2001년 12월 부산 BEXCO에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의 본선 조 추첨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행사는 기존의 월드컵 조 추첨식과는 뚜렷하게 차별화해 한국의 문화를 포함한 전통과 현대, 과학과 예술이 조화된 다양한 문화행사로 웅장하고 화려하게 진행되어 전세계의 격찬을 받았다. 또한 서울·대구·부산 등의 지하철 역사에 전세계 축구스타 23명의 대형 이미지를 래핑하는 신기법으로 나이키의 테마 스테이션을 연출해 큰 화제를 모았다.
 

HS애드의 시대로!
2002년 연말, LG애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모그룹인 LG가 화학 및 전자·통신 등 핵심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LG애드의 지분을 세계 최대의 광고그룹인 WPP에 매각함으로써 LG그룹을 떠나게 된 것이다. WPP는 LG애드의 발행주식 중 최대주주로부터 28.5%의 지분을 포함한 총 35.8%를 취득하고, 12월 4일 이 내용을 발표했다. WPP의 세계적인 네트워크와 결합해 최대한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 더욱 강력한 경쟁력을 지닌 회사로 거듭나는 계기를 맞은 것이다.
LG애드는 WPP의 일원으로 새 출발하면서 경영 슬로건을 ‘Re-Birth LG Ad’로 정하고, 경영과 제도 등의 외적인 변화뿐 아니라 의식과 생각까지도 변화, 업그레이드할 것을 결의했다. 이어 6월에는 기업경영 철학 및 향후 발전방향과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공유하며 새 출발을 다짐하는 ‘Re-Birth LG Ad’ 행사를 창사 이래 최대 규모로 제주도에서 개최했다. 이 행사에서 LG애드는 고객과 브랜드 사이의 ‘연(緣)’을 찾아내고 승화시키는 것이 회사의 역할이자 사명이라는 내용의 ‘비전 선언문’을 채택했으며, LG 고유의 빨간색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새로움과 차별성을 위해 기존의 원형을 탈피, 사각형을 활용한 새 C.I를 함께 발표했다.  2003년, LG애드는 지난 1998년 민간기업 최초로 대통령 취임식 행사를 진행한 데 이어 제16대 대통령 취임식까지 수행하면서 국가적 대형행사를 광고회사의 사업영역으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LG애드의 광고역량은 대외적으로도 인정받아, 2002 나이키 월드컵 캠페인은 전세계 나이키 광고대행사 가운데 최고의 크리에이티브로 뽑혀 대상을 수상했다. 이어 2003 칸국제광고제 옥외광고 부문에서 아시아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했고, 2004년 뉴욕페스티벌 AME 부문에서도 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LG애드의 크리에이티브 역량이 국내외로부터 인정받는 가운데 경영혁신 노력 또한 멈추지 않았다. 2004년 9월, LG애드는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함으로써 국내 최초의 광고그룹으로 탄생했다. 이는 ‘1사 1업종’을 지켜야 하는 광고회사 구조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그룹 체제를 갖춰 더 많은 광고주를 영입함으로써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에 따라 LG애드는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리했다. 즉, 기존의 LG애드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되 사명을 ‘GIIR’로 변경해 순수지주회사 역할을 담당하고, 영업을 전담하는 사업 자회사를 신설해 기존 ‘LG애드’ 사명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분리한 것이다.
2006년 1월에는 본사를 다시 LG마포빌딩으로 이전하면서, 다양한 네트워크를 조합해 고객맞춤형 종합적 브랜드 솔루션을 제공하는 ‘Brand Solution Company’를 새로운 비전으로 천명했다. 한편 국내 광고회사로는 최초로 R&D 전문조직인 미디어전략연구소를 설립해 2006년 4월부터 운영에 들어갔으며, 12월에는 프로모션전략연구소를 신설해 SP 분야 사업에도 전문적인 연구와 효율성 높은 광고주 서비스 제공에 힘썼다.
그리고 2008년 4월 1일, LG애드는 또 한 번의 변화를 선택했다.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 광고회사로서의 정체성과 사업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사명을 ‘HS애드’로 바꾼 것이다. ‘HS’는 하이브리드 솔루션(Hybrid Solution)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환경변화에 따라 달라진 소비자의 인사이트를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조합해 고객에게 최적의 마케팅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LG로 재편입, 광고 전문 기업집단으로 경쟁력 제고
HS애드로 사명을 변경하고, ‘하이브리드 솔루션’을 제공하는 미래형 광고회사로 도약하기 위해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던 2008년 10월, HS애드를 포함한 GIIR그룹은 원래의 모기업인 LG의 계열사로 재편입되었다. (주)LG가 HS애드의 지주회사인 GIIR을 인수한 것이다. 2002년 WPP에 매각된 지 6년 만의 일이다. (주)LG가 GIIR을 다시 인수한 것은 글로벌 경영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LG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일관성 있게 관리하고 차별화된 광고 마케팅 활동으로 브랜드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GIIR은 광고회사 (주)LBEST를 인수해 계열사로 편입함으로써 LG의 광고 관련 회사는 GIIR을 지주회사로 하는 광고 전문 기업집단으로 일원화되었다. 이 같은 양사 체제는 협업과 시너지 창출 등 경쟁력 높은 광고 마케팅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실제로 양사는 독창적이며 기발한 아이디어와 뛰어난 크리에이티브로 광고주 만족도를 높이면서, 국내외의 주요 광고제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2010년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에서 TV 부문 대상을 받은 (주)LG의 ‘사랑해요 코리아’ 다문화 캠페인은 HS애드와 LBEST가 기획·제작을 함께한 작품으로 GIIR 자회사들의 시너지를 확인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또한 2014년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에서도 HS애드와 LBEST는 LG그룹 ‘젊은 꿈을 키우는 사랑’ 캠페인으로 인쇄 부문 대상 및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미 2008년에는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이 뉴욕페스티벌 Film & Video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역시 2008년부터 시작한 LG의 기업PR 캠페인 ‘명화’ 시리즈는 HS애드의 크리에이티브 역량을 과시한 대표적 광고캠페인 중 하나로 국내외 광고제에서 많은 수상기록을 남겼다.HS애드의 수상행진은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어졌다. ‘2013 대한민국광고대상’에서 LG전자 ‘스타일러 없었으면 짜증 좀 났을거다’ 광고로 3년 연속 인쇄 부문 대상, 대한항공 ‘어디에도 없던 곳 인도양으로’ 캠페인으로 온라인 부문 대상, 2013년 세계 5대 광고제 중 하나인 런던국제광고제 영상 부문에서 니어앤디어 ‘Find the Words’ 광고로 동상 수상 등이 대표적 사례다. HS애드가 자랑하는 인재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2013년 ‘스파익스 아시아(Spikes Asia) 영 스파익스 미디어’ 경쟁 부문에서 HS애드를 대표한 젊은 광고인 2인이 최고상인 ‘Gold Winner’를 수상했다. 해외 광고제 심사위원 위촉도 이어져 황보현 CCO는 2011년 ‘스파익스 아시아’, 2012년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 2013년 ‘아시아태평양 광고제’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글로벌 & 디지털’, 시대의 화두를 선점하다LG로의 재편입 다음 해에 HS애드는 김종립 대표이사가 신임 CEO로 취임했다. 김종립 대표이사는 취임과 함께 LG의 글로벌 브랜드 전략 지원 역량을 강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특히 LG전자의 글로벌 마케팅을 지원하기 위해 해외시장 진출에 적극 나섰다. 우선 2010년 3월 10일, 인도 뉴델리에 ‘GIIR Communications India’를 설립, 인도시장 가전부문 No.1 브랜드인 LG전자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집중 지원하게 됐다. 그 해 8월에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현지법인 ‘GIIR do Brasil LTDA’를, 다음 해 10월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 현지법인 ‘GIIR RUS LLC’를 설립하는 등 글로벌 광고대행 거점을 늘려갔다. 이런 노력의 결과, 1991년 일본 동경사무소 개설을 시작 으로 해외시장에 첫 발을 디딘 HS애드는 현재 세계 19개 지역(10개 법인, 9개 지사)에 거점을 두고, 해외사업 추진방향 공유 및 법인별 비즈니스 성장방안 협의를 위한 글로벌 네트워크 컨퍼런스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HS애드는 LG로의 재편입을 계기로 사업확장에도 탄력을 받았다. 새로운 광고주 영입은 물론, 뛰어난 프로모션 능력을 바탕으로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등 한층 업그레이드된 역량을 과시했다. ‘2010 G20 정상회의’, ‘2012 핵안보정상회의’ 등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국가적 이벤트의 운영을 도맡아 대행하는 활약을 펼쳤다. 특히 2012년 5월 12일 개막한 ‘여수 세계박람회’의 성공적 수행은 대규모 이벤트의 기획·운영에 관한 모범사례로도 꼽히고 있다. HS애드는 이러한 여세를 이어가 올해 9월 열리는 인천아시안게임의 개폐회식 총괄 운영 대행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외로부터 찬사를 받은 크리에이티브 역량에 안주하지 않고,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 부응하는 광고회사로 한 걸음 더 진화하기 위한 조직체제 정비와 신규 비즈니스 개척도 계속됐다. 2011년, 크로스미디어 캠페인 기획을 수행하는 ‘Project xT팀’을 신설했으며, 2013년에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고객사에게 역(逆)으로 제품 및 브랜드를 제안하는 오버더레인보우(Over the Rainbow) 사업부를 출범시켰다. 또한 2013년 10월 28일에는 모바일 콘텐츠 전문업체 ㈜옴니텔과 ‘스마트DMB 광고모델 및 시장개발’에 관한 공동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스마트DMB를 통한 새로운 광고시장 및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으며, 2014년에는 광고업계 최초로 3-Screen(TV·PC·모바일) 싱글 소스 패널(Single Source Panel) 1,000명의 실제 미디어 이용행동을 분석해 광고 캠페인의 통합 광고효과를 측정하는 독자적인 모델, ‘MPM(MultiPlatform Measurement)’을 발표했다.

 

 

 

Advanced 30, Ahead 30

HS애드는 2010년 4월 19일, ‘The Difference’를 새로운 비전으로 선포한 바 있다. ‘The Difference’란 광고회사라는 업의 본질은 ‘남과 다름’에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시장의 판도를 일거에 변화시킬 수 있는 차별화된 광고 캠페인을 전개하고 브랜드 위상을 강화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이를 구현하기 위해 Discovery·Digital·Detail 등 을 ‘3D Way’라는 핵심가치로 정립했다. Discovery는 인사이트의 발견, Digital은 효율적인 온/오프라인 미디어 활용, Detail은 완전을 추구하는 최선의 노력이라는 의미를 지녔다.‘The Difference’라는 비전 선포와 더불어 ‘다름’을 고유의 조직문화로 형성하기 위한 실천적 노력이 다양하게 펼쳐졌다. 회사를 보다 유쾌하고 개성 있는 공간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문화혁신 프로그램인 ‘D(Difference)-Project’를 시작하고 사내 라운지를 전시공간으로 활용해 임직원들의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회사 비전을 가장 잘 이행한 ‘경쟁PT 프로젝트’에 주는 상인 ‘The Difference Awards’의 신설, 우수 광고 캠페인을 공유하고 학습하기 위한 ‘The Difference 스쿨’ 개설, 글로벌 전문가 양성을 위한 미국 일리노이 대학으로의 ‘DDGM 해외연수과정’ 파견 등도 주목할 만하다.최근 들어서는 광고의 영향력을 활용한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광고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도 앞장서고 있다. 2012년 마포구청과 ‘디자인 프로보노 협약’을 체결한 것을 비롯해, 사회복지법인 상록보육원과 홀트아동복지회에도 디자인 기부를 하는 등 다양한 프로보노 활동을 전개 중이다. 올해에는 5월 가정의 달 및 5월 11일 입양의 날을 맞아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와 함께 해외입양에 대한 문제의식 고취 및 미혼모 양육지원을 위한 캠페인 ‘Help her, Help her baby’를 전개했으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어른이날’ 공익광고 제작에도 방송광고 제작 재능기부 행태로 참여했다. 또한 2013년 초부터 청소년 진로 멘토링 프로그램 ‘광고톡톡(廣告TalkTalk)’을 통해 고등학생들에게 광고업계 현장에서의 경험담과 광고인이 갖춰야 할 기본역량에 대한 멘토링을 진행해 큰 호응을 얻는 등 시대에 부응하는 광고와 광고회사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데에도 힘쓰고 있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