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06 : 5 MinuteCafe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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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꼭 100점을 맞아야 해요?

 

김 진 원 | ACD | jwkim@hsad.co.kr

 

큰아들 녀석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두 달 남짓 지났다. 방과후 수업은 물론, 매일 같이 쓰는 일기에 독서기록장에 수학문제집까지, 잠드는 시간 대략 10시까지 빽빽한 스케줄에 묶여 사는 녀석을 보자니 나부터 한숨이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것들을 하지 않고, 다른 여덟 살 삶의 대안을 제시하기엔 내가 아는 것이 너무도 없다.
친구들과 노는 재미에 푹 빠진 녀석은 해야 할 과제들을 가능한 한 뒤로 미루며, 30분만 더 놀고 싶다며 징징거리다 아내에게 혼나기 일쑤다. 이 모든 양육의 과정을 말로만 전해 들으며 아내의 고단함과 녀석의 속상함을 상상만 하면서 야근을 해야 하는 나도 고단하고 속상하긴 매 한가지.

아내의 전화를 받은 그날도 야근 중이었다. 아내는 웃음기를 애써 감추며 아들 녀
석과 있었던 일화를 얘기했다. 지난번 수학시험에서 두 개를 틀렸다고, 아내가 수학문제집을 매일같이 풀라고 시키고 있었단다. 하기 싫지만 수학문제지를 꾸역꾸역 풀어내던 녀석이 아내에게 불쑥 말했단다.“아… 정말 하기 싫어요. 왜 이걸 해야 해요?” 아내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 시험에서 두 문제를 틀렸잖아. 그러니까 이번엔 100
점 맞으면 좋잖아?” 그러자 아들이 말했다. “왜 문제를 틀리면 안 돼요? 왜 꼭100점 맞아야 해요?”

왜 꼭 100점을 맞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허를 찔린 아내, 말문이 막혔다. 이제 여덟 살짜리 녀석을 붙잡고 먼 미래를 얘기할 수도 없고…. 당황한 아내는 이렇게 말했단다. “100점 맞으면 기분 좋지 않겠니? 틀리는 것보다, 그럼 넌 100점 말고 뭘 원하는데?” 아들 녀석이 냉큼 답했다.“ 자유!!!” 아들 녀석은 자유를 포기하고 100점을 받은 걸까요? 아내와 통화하며 빵 터져선 껄껄 재미있다고 웃었지만, 아내가 내게 내준 숙제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더러 100점을 맞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라는 것이다. 녀석이 알아듣기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오 마이 갓!!’ 자유를 갈구하는 녀석에게 자유를 포기하고 100점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는 게 대체 가능한 일인가.
이 불가능한 미션 앞에 머리를 골똘히 싸매고 고민해봤지만 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자유엔 책임이 따른다는 둥,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선 하기 싫은 것도 해야한다는 둥, 별의별 논리와 이유를 찾아봤지만 ‘왜 꼭 100점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차라리 100점을 받으면 네가 좋아하는 레고 닌자고를 선물로 사 줄게’가 더 쉬운 답 아닌가. 결국 난 답을 찾지 못했고, 어설픈 설명을 한 차례 시도했다가 녀석의 확신만 더 강화시켜준 꼴이 되었다.‘ 자유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는….그런데 이 결론이 솔직히 난 맘에 든다. 100점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공부를 잘
해야 하고, 그래야 좋은 학교를 가고 좋은 직장을 가고 원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우리가 익히 아는 오류 투성이의 신화에서 비롯된 믿음이다.

100점을 받아야 원하는 삶을 살게 되던가? 차라리 자유야말로 대체할 수 없는 가치이며, 언제나 추구해야 할 꿈이라는 걸 녀석이 진정으로 안다면 말 그대로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언젠가 찾지 않을까? 혼자서 이런 결론을 내려놓곤 녀석을 바라보며 흐뭇해하고 있는데 아들 녀석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빠, 이번 수학시험엔 100점 받았어요!”“ 와! 진짜? 잘했다!” 박수를 쳐주며, 난 순간 뜨끔하다. 설마 아들 녀석이 자유를 포기하고 100점을 받은 건 아니겠지?

 

Posted by HSAD